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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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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소설이나 당대 에세이를 읽다 보면 그들이 분명 살아있는 사람이었음을 종종 잊어왔다는 생각이 든다. 마냥 진지하고 딱딱하지 않으며 웃길 줄 아는 인간인데, 어쩌면 그들을 과소평가(혹은 과대평가)하는지도 모른다. 특히 윌리엄 해즐릿의 에세이는 그 중에서도 사람을 피식피식 웃길 수 있는 힘을 가졌다. 그는 진지함 속에서도 아이러니를 놓지 않는 작가였고, 시대를 비판하면서도 인간의 약함을 이해했던 문장가였다.

 

이번에 출간된 『영원히 살 것 같은 느낌에 관하여』는 해즐릿의 세 번째 국내 번역 에세이집으로, ‘영문학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에세이스트’라는 명성이 전혀 과장이 아님을 증명한다. 해즐릿은 독자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독자를 흔들기 위해 글을 썼다. 그의 글에서는 본인의 글이 미칠 영향보다 자신의 글이 스스로 와닿는지 수없이 고민하고 타협하지 않은 고집이 느껴진다.

 

표제작 「영원히 살 것 같은 느낌에 관하여」는 그가 얼마나 인간의 감정을 세밀하게 관찰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해즐릿은 젊음이란 ‘자신이 결코 죽지 않을 것 같은 착각 속에서 사는 시기’라고 말한다. 그는 청춘의 영원성에 대한 환상을 비웃지는 않는다. 대신 그 착각이야말로 삶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본다. 젊음의 확신은 환상이지만, 그 환상이 사라질 때 우리는 비로소 인간의 유한함을 이해한다. 해즐릿의 통찰은 철학자의 관념보다 훨씬 가까운 지점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청춘은 인생의 신혼기다. 모든 것이 처음이고, 모든 것이 찬란하다. 하지만 그들은 모른다. 언젠가 경쟁에서 뒤처지고, 노쇠해지며, 결국 무덤에 던져질 날이 온다는 것을. 청춘은 그 미래를 상상하지 않는다. 아니, 상상할 수 없다. 청춘은 영원의 예감 속에 살며, 이 예감이야말로 그들을 살아 있게 하는 불꽃이기 때문이다. 청춘은 불사신이다. 적어도 우리는 그렇게 믿는다. 그리고 그 시절 그 믿음이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자체를 결정한다.


 

이 책에는 「돈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종교의 가면」, 「인격을 안다는 것은」 등 총 여덟 편의 에세이가 실려 있다. 각 편은 인간의 본성과 사회의 구조, 그리고 도덕과 허위 사이의 긴장을 파고든다. 「돈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에서 해즐릿은 가난이 단순한 결핍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을 갉아먹는 체험임을 드러낸다. 그에게 가난은 단지 물질의 부족이 아니라, 세상이 개인의 존재를 어떻게 평가하는가에 대한 문제다.

 

「종교의 가면」에서는 신앙이 인간의 자기기만으로 변질될 때의 위선을 비판한다. 그는 신앙이 권력의 언어가 될 때 얼마나 위험한지 경고한다. 흥미로운 것은, 그의 비판이 결코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진부한 비평가에 관하여」에서 그는 세상을 피상적인 언어로 재단하는 비평가들을 풍자하는데, 그 기저에는 독자의 마음을 흔들겠다는 다짐이 느껴진다.

 

  

진부한 비평가는 어떤 주제든 늘 할 말이 있다. 하지만 그가 하는 말은 대개 틀렸거나, 뻔하거나, 무의미하다. 그는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다. 남의 생각을 빌려 와 대본처럼 되풀이할 뿐이다. 우리의 의견에 반대한다면 우리가 틀려서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고 짐작하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멈추면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그는 우리의 말을 끝까지 듣기도 전에 우리의 견해를 왜곡하고, 심지어 우리가 주장하지도 않은 의견을 지레 '수정'하려 든다.


 

독자를 우리라고 끼워주어서 다행이라 느껴질 정도로 그의 문체는 단단하다. 버지니아 울프가 그를 최고의 문장가라며 찬사한 데에는 이 강하고 솔직한 어조의 매료되지 않았을까. 그는 온전히 경험을 기반으로 글을 썼기에 그가 비판하는 비평가의 '어느 주제든 늘 할 말이 있다.'는 것은 그가 경계하는 태도다. 정말로 할 말이 있을 때 하는 그 태도가 명백한 확신과 굳은 어조를 만들어낸다.

 

해즐릿에게 글쓰기는 단순한 사유의 기록이 아니라 저항의 행위였다. 그의 에세이에는 계몽주의의 이성과 낭만주의의 감성이 공존한다. 이성적으로는 명료하고, 감성적으로는 뜨겁다. 그는 인간의 허위와 위선을 날카롭게 비판하면서도, 그 속에서 자기가 말하는 인간다움을 발견하려 애쓴다. 오늘날 해즐릿의 글이 여전히 읽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시대의 문제를 다루지만, 그 방식은 꽤나 개인적이다.

 

그가 자신의 생각을 독자에게 강요했다면 결코 그의 문장들은 존경받지 못했을 것이다. 다만 그 대쪽같음이, 과거에 머무르지 않는 통찰이 와닿을 뿐이다. 윌리엄 해즐릿과 책 모두 ‘생각하는 인간’으로 살기 위한 최소한의 자세를 다루고 보여주려 노력한다. 타인의 눈에 보이는 성공이나 명예가 아닌,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유의 윤리를 글을 통해 끊임없이 묻는 작가에게 자극받지 않을 수가 없다. 그의 질문은 19세기에도, 2025년의 지금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영원히 살 것 같은 느낌에 관하여』는 고전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오래된 텍스트가 아니라, 지금의 우리를 비추는 거울로서의 고전. 해즐릿은 200년 전의 언어로 오늘의 삶을 꿰뚫는다. 그의 글을 읽고 있으면, 고전이 결코 먼 시대의 유물이나 박제된 지식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결국 해즐릿이 말하는 ‘영원히 살 것 같은 느낌’은 죽음의 부정이 아니라, 살아 있다는 감각 그 자체다. 그것은 자신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알고도 여전히 사유하려는 인간의 본능이다. 시대가 지나도 절대 퇴색되지 않는 그 본능과 의지가 왠지 마음 한 켠을 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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