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불완전한 존재들의 서사다. 그것은 언제나 결핍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2003)은 불완전한 사랑의 세계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바다를 꿈꾸는 장애인 조제와 그녀에게 잠시나마 닿았던 츠네오의 이야기는, 현실의 물리적 거리보다 마음의 깊이를 측정하려는 시도처럼 느리게, 그러나 명확하게 가라앉는다.
“눈 감아 봐. 뭐가 보여? … 그곳이, 옛날에 내가 있던 곳이야. 깊고 깊은 바다의 밑바닥. 난 그곳에서 헤엄쳐 올라온 거야.”
조제의 세계는 하나의 수조 같다. 오래된 서적과 나무 냄새가 배어 있는 공간이다. 다리를 쓸 수 없는 그녀는 작은 방 안에서 책을 읽고 요리를 하고, 바깥의 바람 대신 상상 속의 세계에서 여행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속 인물들이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서 서성이는 것처럼 조제는 집 안에서 실재하지 않는 바다를 상상하며 살아간다. 그녀의 세계는 작았다. 그러나 모든 색을 담고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걸 보고 싶었어. 좋아하는 남자가 생겼을 때, 안길 수 있으니까… 그런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평생 진짜 호랑이를 볼 수 없다고 생각했어.”
조제에게 호랑이는 두려움의 세계였다. 궁금하지만 다가갈 수 없는 욕망의 상징이다. 그렇기에 츠네오는 조제의 세계를 열어주는 자로 등장한다. 우연히 조제의 집에 들어와 함께 밥을 먹고, 시간을 보내며 그녀의 세상에 바람을 불어 넣는다. 호기심과 약간의 동정심에서 시작된 관계는 설렘과 동시에 불안을 동반한다.
“헤어져도 친구로 남는 여자도 있지만 조제는 아니다. 조제를 만날 일은 다시는 없을 것이다.”
츠네오는 동정을 부정했다. 그는 자신으로 인해 변화하는 조제를 보며 자신이 구원자가 될 수 있다고 자만했다. 걷지 못하는 그녀의 속도에 맞춰 걸었고, 그녀를 안아 들고 여행을 떠난다. 이해받지 못한 세계를 향한 감정으로, 츠네오는 타인의 시간을 배우며 진심으로 임했다.
모든 감정의 시작은 한쪽이 변화를 일으키고, 다른 한쪽이 그 변화를 감당하는 일이다. 감정의 무게는 결코 같지 않다. 오히려 변화를 일으킨 쪽이 먼저 떠나고 또 무너진다.
누군가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내주었던 자신의 일상 조각은 오랜 균열로 남는다. 츠네오는 조제와의 이별 이후 ‘밥 뭐 먹을래’ 한 마디에 무너진다. 그는 수많은 이별의 이유를 나열하고 생각하지만, 결국 그가 내린 답은 하나였다.
“담백한 이별이었다. 이별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사실은 하나다. 내가 도망쳤다.”
영화는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2002)처럼 장애인과의 사랑을 다루지만, 사회적 시선 속에서 비극으로 머물지 않는다. 그보다는 애도의 온도에 가깝다. 어느 연인보다 자연스럽게, 흐르는 물처럼 지나가야만 존재할 수 있는 감정처럼 흐르는 듯한 느낌이다. 밥을 먹고, 데이트를 하고, 좋아하는 책을 함께 읽고, 여행을 간다. 그들의 사랑이 그렇게 대단해 보이지도 않는다.
원래 사랑은 바다에 몸을 내던지는 일 같은 것이다. 때로는 시원하고, 차갑고, 아름답다. 그러나 움직이지 않는 순간 숨 막힐 듯한 불안을 동반한다. 조제는 줄곧 츠네오가 떠날까 두려워했고, 츠네오는 자신의 사랑이 동정으로 오해받을까 두려워했다.
츠네오가 떠난 후, 조제는 다시 자신의 바다로 돌아간다. 휠체어를 타고 스스로 장을 보고, 요리를 하는 일상이 반복된다. 그녀는 세상을 모르는 사람이 아닌 세계를 아는 여자가 된다. 여전히 의자에서 바닥으로 쿵-, 하고 떨어져 바닥을 기고 무덤덤하고도 평온한 표정으로 자신만의 길을 간다.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는 시간은 결국 성장과 퇴행이 교차하는 진자 운동이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결국 떠남의 영화이다. 츠네오가 조제를 떠나고, 조제가 자신의 환상으로부터 떠나간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노스탤지아>(1983)의 마지막 장면처럼 조제 역시 타인의 구원이 아닌 스스로의 신념으로 삶을 이어간다. 기도가 믿음의 고독한 수행이었지만, 조제의 자립은 존재의 확신이다. 그렇기에 조제의 미소는 오랜 여운을 남긴다. 그 순간, 사랑은 구원이 아니라 인식이 된다. 서로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해도 잠시 손을 맞잡았던 시간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다.
사랑은 물처럼, 잡을 수 없기에 아름답다. 바다에 발을 담갔던 사람은, 발끝에 닿았던 파도의 온도를 평생 기억한다. 조제의 사랑도 그러할 것이다. 그것은 세상의 모든 ‘물고기들’처럼, 다시 돌아오지 않지만, 그 존재의 흔적만으로도 생을 견디게 하는 잔광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