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이 열리는 2002년, 시장 한곳에서 ‘진아국수’를 운영하고 있는 ‘오화자’에게는 꿈이 한 가지 있다. 20년 전 화자가 낳았던 딸, 강제로 미국으로 입양 보내져 다시 만나지 못한 딸 진아를 찾는 것이다. 화자는 특유의 발랄하고 씩씩한 매력을 TV 화면 속에서 뽐내며, 딸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부디 연락 달라고 얘기한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 걸까.
방송이 나가고 얼마 후, 어느 때처럼 국수를 말고 있는 화자의 곁으로 한 금발 머리 소녀가 다가온다. 떨리는 목소리로 화자를 꼭 껴안으며 ‘마마’라고 부르는 아이.
그렇게, 딸을 찾게 된 엄마 오화자와 엄마를 찾게 된 딸 스칼렛이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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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의 줄거리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년만에 가족을 찾은 기쁨은 무엇과도 비견할 수 없을 것이다. 화자와 스칼렛은 조금씩 서로에 대해 알아가며, 즐거운 나날을 보낸다. 두 손을 꼭 잡고 꽃 구경을 하러 가기도 하고, 화자의 국숫가게 일을 함께 하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함께 잠에 든다. 봉숭아를 물들이며 첫눈을 함께 기다리자는 약속을 하는 사이가 된다.
“첫눈오기 전에 봉숭아 꽃물이 남아있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어.
우리 매년 여름마다 봉숭아 물들이고 같이 첫눈 기다리자.“
모녀는 서로가 가지고 있던 상처, 엄마와 딸을 잃어버렸던 상처를 덮어 준다. 화자가 딸을 잃어버리는 꿈을 꾸어 울 때, 스칼렛은 조용히 영어로 된 자장가를 불러주고, 스칼렛이 시장에서 고초를 겪을 때, 화자는 딸을 위해 악다구니를 쓰고 머리채를 잡는다.
두 사람이 서로의 존재만으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순간. 한쪽에서는 형사들의 살인 사건 조사가 한창 이루어지고 있다. 살해된 사람은 두 명, 그들과 함께 있던 사람도 두 명. 그 중 한 명은 금발 머리의 여자아이. 스칼렛을 닮은 몽타주가 거리를 떠돌기 시작한다.
딸, 스칼렛에게는 무슨 일이 있던 걸까?

10월, Tving의 단편 드라마 시리즈로 방송된 <화자와 스칼렛>은 모녀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단막극 드라마다. 20년 만에 잃어버렸던 엄마와 딸을 각각 찾게 된 등장인물들은, 함께하지 못한 시간을 전부 채우기라도 할 듯 서로를 아끼고 돌봐준다.
여기까지만 읽으면, 이 드라마가 정말 단순하게 애틋한 모녀를 그린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드라마 속에는 한 가지 숨겨진 비밀이 존재한다. 개연성도, 2002년 올림픽이라는 시대 배경의 설정 이유도 아쉽게 느껴졌던 작품이지만 이 비밀이 드라마를 끝까지 시청하게 이끄는 힘을 가지고 있다.
경찰들은 스칼렛을 붙잡아 클럽에서 일어났던 살인 사건의 전말을 묻는다. 피해자 중 하나인 엘라는 스칼렛과 함께 ”엄마를 만나러 가자“고 약속한 사이였지만, 엘라와 스칼렛을 향한 마담의 지속적인 학대로 인해 이는 결국 무산된다. 엘라는 죽고, 스칼렛은 홀로 엄마를 찾아 떠난다. 엘라가 말해주었던 대로 ”우리를 사랑해줄 엄마“를.
스칼렛은 화자의 친딸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화자와 스칼렛에게, 그런 건 그들의 사이를 규정하는 것에 중요하지 않았다. 엄마와 딸이라는 게, 꼭 친딸, 친엄마여야만 유효한 건 아니다. 친엄마여도 딸을 학대할 수 있고, 친딸이어도 엄마의 가슴에 대못을 박을 수 있다.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껴주는 마음만 존재한다면 그 관계를 ‘엄마와 딸’이라고 불러도 되었다. 엘라가 스칼렛의 엄마와 다름없었고, 화자가 스칼렛의 엄마가 틀림없는 것이 그런 이유다.
드라마 <화자와 스칼렛>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부모 자식 관계를 만드는 것은 핏줄도 아니고, 의무도 아니고, ‘사랑’ 한 단어. 한 단어만이 필요했을 뿐이라는 게 아닐까.
스칼렛이 화자를 만났을 시점에는 이미 암이 온몸에 퍼져 돌이킬 수 없는 상태였다. 스칼렛은 화자와 약속했던, 함께 첫눈을 보며 사랑을 굳게 하자는 약속은 지키지 못했지만, 화자의 마음속에 사랑을 남기고 떠났다.
마지막 순간, 스칼렛은 화자에게 묻는다.
”엄마, 나 사랑해도 돼요?“
화자는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그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