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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쇼 로망 삼부작의 마지막 작품인 <유메지>는 이전 작품들과는 다르게 명징한 서사를 가지고 있다.

  

화가인 유메지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여성을 욕망하고, 토모요는 타인의 존재를 받아들이기를 원한다. 와카시는 욕망의 정의를 쾌락에 두고 있는 사람이다. 특히 다이쇼 로망 삼부작 내내 다루었던 삼각관계는 <유메지>에 이르러 욕망을 재정의한다. 이는 이미지의 모호함을 차치하고서라도, 영화가 추구하는 욕망의 정의를 서사 구조 내에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반영성은 극 중의 등장하는 유메지라는 실제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물론 전기 영화를 추구하듯, 유메지 개인의 일화를 기반으로 만든 영화는 아니다. 다만 세이준은 그의 회화를 적극적으로 반영한다. 화면이 정지되는 순간, 유메지의 그림은 단막극처럼 이뤄지는 것은 일종의 투영과도 같다. 유메지라는 인물을 이용하여, 파괴된 욕망을 재구성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세이준은 파괴된 것에서부터, 어떻게 새로운 욕망을 쌓아 올리려 했는가? <유메지>에서는 현실과 몽상의 경계를 명확히 나눈다. 현실은 몽상에 기반이 되지만, 몽상은 그 자체의 현실만이 존재한다. 꿈은 꿈 내부의 현실이지, 외부의 현실에 반영될 수 없다. 다만 영화 내 현실에는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서사 구조 내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만약 꿈이 현실에 영향을 끼치는 경우라면, 이는 서사 구조 내의 복선 활용 방식이라고 정의해야 한다. 예컨대, 선조들이 알려주는 미래시와 같은 역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세이준의 방식은 다르다. 이전 영화에서는 경계를 나누지 않았기 때문에, 이것이 현실인지 몽상인지 알 방법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유메지>에서는 증거를 제시한다. 토모요가 입었던 결혼 예복의 한쪽 팔이 찢어진 이유와 유메지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현실이다. 나아가 와카시가 유메지와 결투를 벌였으며, 이는 곧 극 초반부에서 꾼 꿈이 현실을 예지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호숫가에서 와카시의 시체를 찾는 토모요 앞에 나타난 유메지의 쇼트는 환상처럼 보인다.

 

하지만 토모요의 앞에 나타난 유메지는 사실이다. 이는 세이준이 추구하는 경계 파괴가 아닌, 현실과 몽상의 결합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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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준은 이전 작품에서는 현실과 꿈의 경계를 없앤 다음, 하나의 영화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

 

<지고이네르바이젠>은 나카사고가 죽은 뒤 영화의 후반부는 죽음과 삶의 경계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초현실적인 이미지를 이용한다. <아지랑이좌>는 그 자체가 현실인지, 상상인지조차 구분할 수 없다. 하지만 <유메지>는 현실이 곧 꿈이고, 꿈이 곧 현실이다. 영향을 미치는 꿈은 그 자체로 현실이다. 유메지가 그리고 싶은 ‘뒤돌아 있는 여성’은 상상 속에 존재하지만, 현실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와 연결된다. 다르게 말하면 유메지가 가지고 있는 미적 욕망의 상징이다.

 

극의 후반부에서 토모요를 그림으로 담는 장면에서 ‘뒤돌아 있는 여성’의 표상이 연결된다. 다르게 말하면 추구하고자 하는 욕망이 꿈에 투영되고, 현실에 있는 여성과 연결되어 활용되었다는 것이다. 이전 작품과는 다르게 욕망에 대해 솔직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욕망이란 무엇인가? 유메지에게 여성은 탐구하고자 하는 신체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그 자체로 소유적 욕망과 연결된다. 영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여성은 유메지가 그렸거나, 그리기를 거부한다. 그리기를 거부한 이유도 타인에 의해, 육체가 맞춰졌기 때문이다. 삼각관계의 목적은 소유로부터 이뤄지게 된다. 와카시는 자신의 죽음을 가장하여, 쾌락을 추구하고자 한다. 하지만 그의 아내인 토모요에게 돌아왔을 때, 자신의 이름을 잃어버린다. 타자에 의해 정의된 자아가 상실된 것이다. 이 상실은 오히려 유메지의 욕망을 이루기 위한 방해물이었다가, 이루게끔 만든 이유가 되어버린다. 나아가 미적 욕망을 이룬 유메지는 뒤돌아 있는 여성의 얼굴을 그릴 수 있게 된다.

 

또한 서사 구조 내에는 세이준이 이루고자 하는 예술적 성취에 대한 욕망이 잠식되어 있다. 회화는 그 자체로 이미지다. 영화와 회화의 표현 방식은 매우 비슷하지만, 영화의 폭이 더욱 넓다. 물론 회화만이 영화와 비슷한 예술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세이준은 다른 장르의 예술을 모티브로 삼아, 비슷한 유형의 욕망을 투영하였다. 예컨대 <지고이네르바이젠>에서는 음악, <아지랑이좌>는 연극을 통해서 영화가 추구하는 예술적 성취를 결합한 바 있다. 다만 회화만큼 영화의 자극과 비슷한 장르는 아니었다.

 

시각적 충격을 기반한 예술. 유메지의 절망은 곧 세이준의 절망이며, 유메지가 마침내 그린 미인도는 세이준이 마침내 만든 역작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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