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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운 좋게도 십삽년 지기 친구 하나가 있다.

 

불과 십삽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서로 친구가 될 거라 생각지도 못한 사이였다. 갈등은 사소한 계기에서 발생되었다. 흔한 여중생들 사이의, 당시로서는 꽤나 심각한 연락 문제였는데 자신과 나눴던 메신저 대화를 캡쳐해 다른 친구에게 전달했다는 것이 다툼의 주된 원인이었다. 어릴 적부터 사회생활을 하는 성인이 되기까지 나는 항상 ‘조심성 부족’이슈로 주변 사람과의 관계를 망치곤 했다.

 

나와 그 친구가 이토록 오래 친구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건, 그 친구의 배려심과 유쾌함과 적극성, 사교성. 그리고 나의 습관적인 자아 성찰과 반성하는 태도, 차분함, 성실함, 학업에 집중하는 모습 등이 조화롭게 맞물린 것도 있지만 (이렇게 보니 무슨 연인 관계 같다.) 서로 같은 년도에 태어났고, 같은 동네에 태어났고, 같은 중고등학교를 나왔고, 고등학교 시절 3년 내내 같은 반을 했고, 한 때 각자 친구관계를 통해 겪은 아픔과 깨달음이 있고, 카카오톡으로 매일 연락을 할 수 있는 시대를 살아왔고, 둘 다 불의의 사망사고 피해자가 되지 않았음에 있다.

 

4년 내내 대학을 다니며 모든 교수님들로부터 들었던 말들 중 손꼽히게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내가 이루고자 하는 일의 단계가 1부터 7까지 총 일곱 가지의 단계가 있다면 그 모든 단계가 ‘운’으로 통과되는 경우는 있어도, ‘노력’만으로 통과되는 경우는 없다.’ 바로 ‘운의 비중’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는 생각보다도 꽤나 큰 벽이자 동시의 기회의 문이었다.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때때로 나 자신보다도 외부적 요인들이 오히려 더 ‘나’를 만들어간다는 것을. 나의 책임과 능력도 중요하다. 그러나 다 내 책임이 아니고 내 능력이 아니다. 꽤나 상투적으로 들릴법한 이야기가 이상하게도 졸업 직전 4학년인 나에게는 신선한 위로와 울림을 주어 지금까지 마음에 남아있다. 관계가 틀어지는 것도, 다시 회복되는 것도 모든 것이 ‘나’로 인해 발생되는 일은 결코, 절대, 네버 아니다.

 

이제는 유행이 다 지났지만 근래 들어 임상춘 작가의 넷플릭스 시리즈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를 감명 깊게 반복 재생하고 있다. 그러면서 진실된 인연과 사랑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 때 뛰지 않았더라면’, ‘그 때 실직하지 않았더라면’, ‘그 때 IMF가 아니었더라면’ 등과 같은 애순과 금명이의 표현을 보다 더 주목하게 되었다. 과거의 나였다면 바다 한복판에 뛰어들었던 관식이, 매일 같이 극장에 찾아가고 죽을 힘을 다해 버스로 냅다 뛰었던 충섭이에게 더 집중했을 것이다. 그런 행동만이 사랑의 전부라 믿던 때도 있었다.

 

인연의 신비는 동시간대를 살아가는 두 남녀 사이, 서로를 향한 극적인 사랑 뿐 아니라 IMF로 인한 대량 실직 현상, 아르바이트 경험, 지혜롭고 따뜻한 부모님, 중요한 정보를 귀띔해주는 매표소 사장님, 지난 실패와 실연, 잘못된 선택을 통해 얻은 깨달음 등도 함께 필수적인 부재료로 사용되어야 하는 것이다. 나의 뜻과 세상의 울림의 합이 맞아야 두 사람은 이어진다.

 

아직도 사람을, 사랑을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다. 이는 무책임하고 무신경한, 방관적인 태도라기보다 실제로 내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인연의 신비와 힌트는 내 경험, 머릿 속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어떤 불의의 양면성을 띈 사건을 통해, 영화나 드라마, 음악을 통해 느끼는 갑작스러운 직감을 통해, 새로운 직장이나 과제를 통해, 난생 처음 보는 사람의 엉뚱한 행동을 통해 인연의 신비를 경험하게 될 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정말 아무도 모른다. 그 사람이 내가 알던 그 사람일지는.

 

우리 모두 각자가 모르는 부분에 대해 두려워하기 보다는 마음을 열고 기대를 하는 어른이 되었으면 한다. 예상치 못했던 인물을 기꺼이 친구로 받아들이는 어른이 되었으면 한다. 우리는 종종 ‘어른스럽다’는 표현 아래 어설픈 지식과 경험과 두려움으로 가득 찬 사람이 되어 가기도 하는 것 같다. 나도 정말 몰랐다. 카카오스토리에 그렇게나 친구를 물로 본다고 내 욕을 정성스레 해대던 애가 십삽년 지기 친구가 될 줄은. 털 복숭이 예술가가 안정적인 미술학원 강사가 되어 훤칠한 금명이 남편이 될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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