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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영화 <퍼펙트 블루>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아이돌, 우리의 우상
젊은 세대를 타겟층으로 하는 댄스 가수를 지칭하는 말인 ‘아이돌(idol)’은 본래 ‘우상’이란 의미를 갖는다. 보다 오래된 어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이 제시한 ‘이데아(idea)’가 있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세계가 ‘현상계’와 ‘이데아계’라는 두 차원으로 이루어져있다고 주장한다. 현상계란 우리가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현실 세계를 가리키며, 이데아계는 고정불변하고 참된 진리의 세계를 말한다. 감각으로 파악할 수 있는 현상계와는 달리, 이데아계는 인간의 이성을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완벽한 세계다. 플라톤은 현상계가 이데아계의 그림자에 불과하며 모든 사람이 각자의 이데아에 맞게 진리를 추구하는 사회를 국가의 이상향이라고 보았다.
모두에게 각자의 이데아가 있고 그것을 실현하는 일이 현상계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의무라면, 우리가 태어난 의미는 뭘까? 이데아계의 영혼과 현상계의 육체가 결합한 것이 우리이고 죽으면 다시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어 이데아계로 돌아갈 수 있다면, 굳이 왜 결합하는가? 플라톤을 공부하면서 들었던 생각이다. 이데아에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이성인 까닭은 완벽이란 개념 자체가 관념 속에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땅에 발붙이고 사는 이유가 단지 하늘의 그림자를 좇기 위해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라는, 나의 투박한 문장에 담긴 사유를 놀랍도록 아름답고 충격적으로 그려낸 작품이 있다.
영화 <퍼펙트 블루>의 주인공 미마는 3인조 여성 아이돌 그룹 ‘챰(CHARM)’의 일원에서 ‘키리고에 미마’라는 한 명의 신인 배우로서 홀로서기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그 과정이 여간 심란한 게 아니다. 아이돌 출신 배우에 대한 사회적 편견 속에서 겨우 따낸 단역으로 출연한 드라마 <더블 바인드>역시 혹평이 가득하다. 기획사 사장 타도고로는 대중의 시선을 끌기 위해 미마에게 선정적인 연기를 강요하고 누드 화보집까지 찍게 한다. 카메라 앞에서 초라하게 헐벗은 자기 자신을 바라보며, 미마는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기 시작한다.
현실과 환상의 숨 막히는 경계에서
팬들의 사랑을 받는 완벽한 아이돌로서의 환상과 에로틱한 이미지로 더럽혀진 배우로서의 현실. 아이돌 의상을 입은 미마의 환영은 배우가 된 미마의 현실 앞에 자꾸만 나타나 자신이 ‘진짜 미마’라며 그녀의 자리를 위협한다. 정체불명의 괴한으로부터 스토킹당하고 있다는 불안과 함께 이러한 혼란은 가속화되고, 설상가상으로 타도고로, <더블 바인드>의 각본가 요쿠, 사진작가 무라노가 차례로 습격당한다. 미마는 살해당한 무라노의 피 묻은 옷을 자신의 방에서 발견한 뒤 이러한 사건들의 범인이 자신의 스토커인지 그녀 자신인지조차 헷갈리는 지경에 이른다.
대표작 <파프리카> 등에서와 같이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곤 사토시 특유의 연출은 <퍼펙트 블루>에서 특히 빛을 발한다. 이는 극중극과 현실의 병치를 통해 효과적으로 구현되는데, 촬영장 안에서의 이야기와 그것을 연기하는 배우 미마의 상황은 <더블 바인드>라는 제목처럼 두 층위에서 서사적 접점을 가진다. 미마가 연기한 인물 요코는 스트립바에서 강간당한 충격으로 다중인격 살인마가 된 모델로, 자신이 배우이며 강간을 당한 것도 드라마 속 내용일 뿐이라 착각한다. 이러한 <더블 바인드> 속 장면과 혼란에 빠진 미마의 모습이 비슷한 구도를 통해 반복적으로 교차하며 관객은 미마가 인식하는 것이 현실이 맞는지, 아니라면 어디부터가 실제이고 어디까지가 환상인지 미궁 속에 빠지게 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제로 유명한 데카르트는 플라톤의 맥을 잇는 근대 철학자라 할 수 있다. 데카르트는 인간의 이성이 세상을 인식하고 진리를 파악하는 근원이며 감각은 불완전하고 믿을 수 없기에 진정한 지식을 제공하지 못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데카르트를 비롯해 인간이 지닌 이성의 힘을 찬양한 근대 철학의 흐름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며 붕괴하고 만다. 전쟁이라는 최악의 부조리 속에서 기존의 가치 체계가 흔들리며 ‘생각하는 존재로서의 합리적 인간’에 대한 회의가 눈을 뜬 것이다. 이와 함께 인간의 무의식과 본능에 주목한 정신분석, 구체적인 실존으로서의 인간을 강조한 실존주의, 꿈 속 세계와 같은 환상적 풍경을 묘사한 초현실주의 화풍 등이 유행하게 된다.
이러한 움직임은 인간의 이성이 완전한 진리를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불신과 더불어 기존에 뿌리 깊게 자리 잡았던 ‘이상/현실’의 이원론적 구분법을 뒤흔드는 것이기도 하다. 인간은 결코 세계를 온전히 인식할 수 없으며, 고정불변하는 절대적 실체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은 세상의 모든 가치를 부정하는 허무주의와는 분명히 다르다. 오히려 극도의 혼란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인 것이다.
어쩌면 일본 내 아이돌 침체기이자 세기말에 제작된 <퍼펙트 블루> 역시 기존의 체제가 붕괴하면서 발생하는 충격과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동시에 반영된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내가 알던 나, 완전한 아이돌로서의 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환영처럼 남아 지금의 타락한 현실을 위협하며 어지럽게 뒤섞인다. 이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와 같은 데카르트의 철학 원칙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나는 ‘생각’하고 있지만 그것이 온전한지 알 수 없고, 무엇이 진짜 ‘존재’하는지도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당신, 누구예요?
감독은 이처럼 절망적인 상황의 돌파구를 제시하기에 앞서 먼저 질문을 던진다. 영화의 초입부터 미마의 목소리를 통해 반복해서 등장한 대사다. “당신, 누구예요?” 이는 모델 요코가 정신과 의사 아사미야에게 묻는 질문이자, 미마가 자신의 스토커에게 묻는 질문이자, 미마가 또 다른 자기 자신에게 묻는 질문이자, 감독이 관객에게 묻는 질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말이지, 누구란 말인가?
간단해 보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문제다. 누군가 나에게 그러한 질문을 던졌을 때, ‘나는 이지선입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내 이름을 묻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나 다름없다. 그러면 ‘나는 아트인사이트 에디터입니다’라고 답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또한 내가 하는 일에 대한 대답과 같다. 또 아무개의 가족이라든지, 친구라든지, 연인이라는 대답 역시 인간관계에 대한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자기소개’를 한 마디로 완성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남에게 들려주기 위한 대답만이 정답일까? 감독은 루미라는 인물을 마지막 카드로 꺼내 든다. 루미는 과거에 가수로 활동했지만 현재는 미마의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이는 아이돌에서 배우로 전향하며 수모를 겪는 미마의 상황에 괴로움을 느끼며 범행에 나서게 된 배경과 관련을 갖는 듯 보인다. 미마의 일상이 소름끼치도록 사실적으로 기록된 웹페이지 ‘미마의 방’을 업데이트하는 것도, 미마의 스토커 ‘미마니아’에게 요쿠의 살해를 사주한 것도, 무라노를 살해한 것도 전부 루미의 소행이었다.
과거 강간 장면을 연기했던 세트장에서 미마니아에게 강간당할 뻔한 위기에서 겨우 벗어난 미마는 루미와 함께 ‘미마의 방’으로 향한다. 그러나 그곳은 진짜 미마의 방이 아니라 비슷하게 꾸며진 루미의 방이었다. 미마의 아이돌 시절과 같은 복장을 하고 모습을 드러낸 루미는 ‘미마는 둘일 필요 없다’며 미마를 위협한다. 이때 붉은 미니 드레스를 입고 섬뜩한 미소를 짓는 미마의 환영과 같은 옷을 입은 뚱뚱한 체격의 루미가 땀을 뻘뻘 흘리는 모습이 대조적으로 교차하는 연출은 그로테스크한 공포를 자아낸다.
추하고도 아름다운, 있는 그대로
그러나 루미는 벗겨진 가발을 주우려다 거울 조각에 복부를 찔리고 만다. 이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실제 모습을 마주한 충격에 의한 것이다. 부상을 입고 차에 치일 위험에 처한 루미를 미마가 몸을 던져 구하면서 상황은 일단락되고, 루미는 <더블 바인드> 속 요코처럼 정신병원에 갇힌다. 의사는 ‘루미’로서의 자아와 ‘미마’로서의 자아가 번갈아 나타난다고 진술한다. 즉, 그녀는 자신의 불만족스러운 현실을 견디지 못한 나머지 미마, 즉 아이돌이라는 환상적 자아를 만들어내 그것에 안주하는 것이다.
반면 병원에 찾아온 미마의 모습은 어딘가 예전과는 달라 보인다. 그녀가 걸어 나오자, 주위 사람들은 ‘진짜 미마가 이런 곳에 올 리 없다’며 수근댄다. 하지만 그녀는 빨간색 자동차의 운전석에 앉아 룸미러를 응시하며 선글라스를 벗는다. 그리고 말한다. “나는 진짜야.” 곧바로 이어지는 엔딩 크레딧과 함께 흘러나오는 경쾌한 OST는 갑작스러우면서도 뭉클한 감동을 선사하는 매력이 있다. 정황상 미마는 배우로서의 성공을 거머쥔 것으로 보인다. 늘 다른 사람이 운전하는 차나 대중교통을 이용했던 과거와는 달리 차도 직접 모는 것 같다.
이 모든 것이 ‘나’이고 ‘진짜’라는 선언에는 그녀만의 자기소개가 담겨있다. 아이돌로 활동하던 시절에도, 배우로 전향하기 시작했을 때도, 선정적인 촬영으로 괴로워할 때도, 현실과 환상 사이에서 혼란에 빠질 때도, 미마니아와 루미에게 목숨을 위협받던 그 순간에도 미마는 미마였다. 미마는 결국 루미와는 정반대의 길을 걷기로 한 것이다. 자신의 선택과 그것에서 비롯된 모든 순간을 받아들이기로. 이는 그 자체로 완벽한 이상보다는 비록 불완전할지언정 현실에 손을 들어주는 태도이자 그 선택이 절대적 기준이나 외부가 아닌 스스로에게서 탄생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대중 앞에 서는 직업을 가지고 늘 타인의 시선에 시달리던 미마는 타인이 아닌 자신에게 자기소개를 들려줌으로써 정체성의 혼란을 극복한 것이다.
한편 ‘blue’라는 말에는 ‘파란색’이라는 뜻뿐만 아니라 ‘우울’이라는 의미도 있다. 대중은 연예인에게 완벽에 가까운 이미지를 요구하지만 기실 그것은 허상일 수밖에 없다. 닿은 수 없는 완벽을 향한 갈망은 결핍을 낳고, 결핍은 우울을 낳는다. 루미와 미마의 상반된 결말은 이 우울과의 올바른 대화법이 불완전함에 대한 태도에 달려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생각난 김에 한번 거울 앞에서 말을 걸어보는 건 어떨까.
안녕, 나는 진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