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개미이자 베짱이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을 명명한 채 타인에게 인정받고자 한다. 앞선 소개는 에디터가 스스로를 소개할 때 자주 사용하는 문구다. 성실한 개미이자 예술을 즐길 줄 아는 베짱이라니. 그런 인생은 누구나 살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말뿐인 명명과 행동으로 옮기는 삶은 다르다. 저자 패트릭 브링리는 말한 대로 살아간다. 인류의 위대한 걸작들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삶과 죽음, 인생과 예술에 대해 차분하게 이야기한다.
그런 의미에서 스스로를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라고 소개하는 사람을 보며 가장 아름다운 곳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 역시 그런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책장을 펼쳤다. 패트릭 브링리가 남겨둔 위로는 지구 저편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있는 예술품을 넘어선다. 주어진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에게 최선을 다해 살아갈 힘과 곁을 내어준다.
패트릭 브링리는 《뉴요커》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고 있었지만, 친형인 톰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서 무기력과 우울감에 빠졌다. “세상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애를 쓰고, 꾸역꾸역 긁고, 밀치고, 매달려야 하는 일은 할 수 없었다. 나는 누군가를 잃었다. 거기서 더 앞으로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75p)고 말하는 그를 보면 상실을 겪은 많은 독자가 공감할 수 있으리라.
이후 가장 아름다운 곳에서 가장 단순한 일을 하면서 스스로를 잠시 놓아두기로 했다. 하여 도착한 곳이 2008년 가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경비원인 것이다. 이곳에는 경비원뿐만 아니라 보존 연구가, 운반 전문가, 페인트공 등 2천여 명의 직원이 상주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300만 점의 작품을 지키기 위해 하나가 되어 움직인다.
2023년 초판이 출간된 이후 2025년 개정판이 나오기까지 많은 독자가 그의 글을, 인생을 읽고 위로받았다. 심지어 이번 개정판에는 저자가 경비원으로 일하면서 본 각 작품이 고해상도 이미지로 작품 설명과 함께 QR코드로 삽입되었다. 세계 3대 미술관이라 불리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당장 갈 수 없다면 있는 힘껏 상상이라도 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부터 소용돌이처럼 휘몰아치는 인생에서 고요를 즐기는 법을 해설하는 큐레이터와도 같은 그를 따라 미술관 관람을 시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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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어머니는 미술사를 공부하면서 저자에게 미술에 대한 틀을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언제나 자신의 재능은 그 자체가 아니라 즐거움에서 비롯한 부지런함이라고”(33p) 말하면서 그에게 예술을 즐기는 법을 알려주었다. 이에 저자는 “예술가란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33p)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맞는 말이다. 예술가는 획을 잘못 긋는 것을, 음정이 어긋나는 것을, 글자가 삐뚤어지는 것을 두려워하면 안 된다. 세계의 거장들이 그랬던 것처럼.
저자는 미술관에서 10년간 일하면서 친숙한 환경 그 자체에 장대함과 성스러움을 종종 느낀다. 아침에 첫 관람객이 들어오는 순간, 베르나르도 다디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보는 순간, 이집트 유물을 보며 진짜냐고 되묻는 관람객을 보며 설명하는 순간, 위대한 그림이 거대한 바위처럼 보이는 순간들까지.
책에서는 이러한 저자의 심리를 느낄 수 있는 요소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우선 저자가 쓴 감사의 말에서 알 수 있듯 일러스트레이션을 담당해준 마야 맥마흔은 그림들은 실제 예술품을 가벼운 스케치로 옮겨낸다. 그리고 QR코드로 본 작품은 화면 너머임에도 선명한 색감과 분위기, 큐레이터가 직접 말해주는 해설 역시 이 책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요소임이 분명하다.
이 외에도 저자가 풀어주는 미술관 도난 사건들과 수천 명의 관람객 중에서 전형적인 인물을 골라내 분류하는 방법처럼 예술품 설명이 아닌 다른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풀어내며 독자로 하여금 어디에서도 들어볼 수 없는 ‘경비원 토크’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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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는 지켜야 할 규칙, 즉 관람 예절이 있다. 타인의 감상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 살금살금 걷거나 휴대폰은 진동 모드로 바꿔야 한다. 작품을 손상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손 대신 눈으로만 봐야 하며 플래시 터트리는 행위를 자제해야 한다.
이처럼 에세이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를 읽을 때도 지켜야 할 독서 규칙이 있다. 첫 번째로 QR코드를 무시하고 넘어가지 않는다. 두 번째로 책을 읽으며 떠오른 상실과 애도의 기억을 부정하지 않는다. 마지막 세 번째로 저자가 소개한 예술 작품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을 골라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갔을 때 반드시 보고 온다.
물론 이는 에디터가 정한 규칙이니 독자 여러분만의 새로운 규칙을 세워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에디터는 프레더릭 에드윈 처치의 〈안데스의 오지〉와 토마스 콜의 〈강의 곡류〉를, 그리고 패트릭 브링리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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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처럼 예술가들도 메트에서는 길을 잃을 것이다. 이는 예술가는 자신이 전공하는 분야의 예술에는 능통할 수 있어도 다른 분야의 예술 시대는 잘 모른다는 말로 사람이 모든 분야에서 전문가일 수는 없다는 말과 동일하다. 누군가는 수학을 잘하고 누군가는 음악을 잘한다. 둘 모두를 잘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만, 커피를 내리거나 책을 정리하고 방을 청소하며 길 찾기까지 모두 다 잘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서로 돕고 도움을 받아야 한다. 모순적이면서도 불완전한 존재다. 하지만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슬픔을 공유하고 서로 애도하고 완벽하지 않아도 완성할 수 있는 삶의 리듬이 있다.
그리고 이는 예술을 통해 가능하다. 각기 다른 사연을 가진 이들을 하나의 동일한 감정을 느끼게끔 묶어내는 글, 그림, 음악이 있기 때문에 예술은 위대하고 하나하나가 의미를 가진다. 위대한 예술은 “경외감, 사랑, 그리고 고통 같은 잠들어 있던 감정을 불러일으키”(262p)니까 말이다.
결국 불완전한 인간임에도 예술로 하나가 되는 것처럼 서로의 아픔과 바람을 함께 품을 수 있는 마음이야말로 우리를 진정으로 완성시키는 것이 아닐까.
우리 모두는 아마추어니까, 소원을 위한 동전 던지기에서도 아마추어인 우리가 함께 힘을 합쳐야 한다. “하나는 네 소원을 위해서, 다른 하나는 네 소원만큼 간절한 다른 누군가의 소원을 위해서”(149p) 동전 두 닢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