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의 스타트업에서 배아를 검사하고 비공개로 지능 관련 선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인간의 유전자를 설계하고 조작할 수 있는 가능성, 그리고 ‘완벽한’ 유전자를 지닌 인간이 사회에서 갖게 될 특권과 한계는 오래전부터 SF 작품에서 탐구되어 온 주제다. 영화 《가타카》는 바로 이러한 상상을 바탕으로 유전자가 계층이 되는 디스토피아를 보여준다.
《가타카》는 가까운 미래에 유전자 편집으로 질병이나 결함을 제거하고 ‘완벽한’ 유전자를 가진 사람만이 인정받는 사회를 그린다. 주인공 빈센트는 유전자 조작 없이 자연분만으로 태어나 근시와 심장 질환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유전적 결함을 가진 빈센트는 사회에서 ‘부적격자’로 취급되며 우성 유전자를 가진 동생 안톤과 끊임없이 비교당한다.
빈센트는 ‘가타카’라는 우주항공 회사의 비행사가 되어 우주로 나가고 싶어 하지만 부적격자이기에 청소부로 일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브로커를 통해 우성으로서 가타카에 적격판정을 받을 수 있는 유전적 조건을 가진 제롬 모로우를 소개받는다. 제롬은 엘리트 유전자를 가지고 있으며 과거에는 대회에서 2등을 하는 수영선수였지만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었다.
빈센트는 제롬의 신분을 갖기 위해 그와 키가 비슷해지는 수술까지 강행하고 그 노력을 본 제롬은 자신의 혈액과 소변 샘플을 제공한다. 빈센트는 가타카에서 진짜 제롬처럼 살아가며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아 탐사를 떠날 기회를 얻는다.
그러나 출발 일주일 전, 회사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나면서 위기가 찾아온다. 범인을 찾기 위해 수사가 이루어지고 빈센트는 정체가 발각되지 않도록 고군분투하는 과정에서 경찰이 된 안톤에게 쫓기기도 하고 엘리트 회사 직원인 아이린과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영화는 이러한 극한 상황 속에서 빈센트가 한계를 넘어 꿈을 이루고 우주로 떠나가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세련된 영상미와 미장센
영화는 1997년에 제작되었지만 지금 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고 세련된 느낌을 준다. 그 이유는 바로 영상미와 미장센에 있다. 영화 전반에 걸쳐 차가운 색조와 푸른 톤을 주로 사용하여 유전자 편집 사회의 냉혹하고 구조화된 분위기를 강조한다. 특히 익숙하지 않은 파란색과 초록색 조명이 곳곳에 배치되어 디스토피아적이고 비현실적인 세계를 보여준다.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한 영화 속 사회가 현실과는 너무 달라 푸른 조명처럼 이질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엘리트만 들어갈 수 있는 회사인 ‘가타카’의 내부 인테리어는 차갑고 엄격하다. 미니멀하고 회색톤의 공간은 우주와 어울리며 간결함 속에서 더 큰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Less is More”의 미학을 보여준다. 그러나 빈센트가 항상 꿈꿔오던 이 아름다운 공간은 언제든 빈센트의 정체가 발각될 수 있는 살 떨리는 장소이기도 하다. 사무실, 복도, 우주선 실험 장비 등 작은 소품까지 철저하게 정렬되어 있어 숨막히는 질서와 규율이 공간 전체에 스며들어 있다. 또한, 화면 속 대칭적인 구조와 무표정한 직원들의 모습은 이 사회의 경직된 구조를 강조하며 관객에게 압박감과 긴장감을 동시에 전달한다. 특히 빗, 운동 기구 등 메탈 소재의 차가운 소품들은 부적격자에게 사회가 보이는 날카로움을 보여주며 빈센트가 느끼는 제한된 자유와 사회적 억압을 극대화한다.
결국 영화 《가타카》의 영상미와 미장센은 빈센트가 느끼는 사회의 압박과 한계를 시각적으로 전달하며 디스토피아 속 개인의 고립과 갈망을 관객이 체감하도록 만든다.
"운명을 결정하는 인자는 없다"
열성 유전자를 지닌 빈센트는 어린 시절부터 우성 인자를 가진 동생 안톤과 비교당하며 살아간다. 수영 대결에서 연거푸 패하며 열등감을 느끼던 그는 17살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안톤을 이기고 변화와 독립을 꿈꾸며 집을 떠난다. 이후 제롬 모로우의 신분으로 살아가던 빈센트는 경찰이 된 안톤에게 쫓기고 두 사람은 다시 한번 수영 시합을 벌인다.
안톤: 대체 어떻게 한 거야? 이 모든 걸 어떻게 해낸 거냐고? 되돌아가야 해.
빈센트: 그러기엔 너무 늦었어. 반대편으로 가는 쪽이 빨라.
안톤: 반대편이라니? 우리 둘 다 빠뜨려 죽일 셈이야?
빈센트: 내가 무슨 수로 이겼는지 알고 싶어? 난 돌아갈 힘을 남겨두지 않아, 안톤. 그래서 널 이기는 거야.
수영을 통해 제한된 공간을 벗어나고, 결국 우주로 나아가려는 빈센트의 도전은 ‘땅’과 사회적 제약으로부터의 해방을 상징한다. 열성 유전자를 잔뜩 물려받아 불리한 출발선에서 시작한 빈센트가 불굴의 의지로 유전자 조작을 통해 '완벽한' 인자를 갖고 태어난 안톤을 이긴 것이다. 운명을 결정하는 인자는 없으며 인간의 가치는 타고난 조건보다 마음가짐과 노력으로 가꿔냄을 역설하는 영화의 절정 부분이다. 빈센트에게는 포기할 수 있는 마음가짐 자체가 사치이다. 실패할 약간의 가능성조차 염두에 두지 않고 한계를 부수기 위해 도전하는 빈센트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경외심을 느끼게 한다.
우리는 빈센트처럼 '부적격자'이기에 수많은 한계에 부딪친다. 체력적 약점, 주변의 시선, 그리고 사회적 잣대가 끊임없이 그를 제약했듯 우리 역시 어려운 일 앞에서 쉽게 포기하거나 실패의 이유를 찾으며 머뭇거리기 쉽다. 그러나 안톤과의 수영 시합에서 이기고, 완벽한 유전자를 가진 아이린과 사랑을 나누며, 우주비행사가 되기까지 빈센트에게도 불가능해 보이는 도전이 많았다. 그럼에도 한계 없는 비행을 이룬 그의 모습을 보며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현재 가진 것뿐 아니라 부족한 부분마저 잠시 잊고 전력을 다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완벽함의 함정과 “인간다움”의 질문
영화 속 사회는 유전적 완벽성을 기준으로 인간을 평가한다. 열성 vs 우성이라는 유전적 차이는 신체적 특성을 넘어 사회적 계급과 기회 불평등으로 이어진다. 사회는 빈센트를 ‘부적격자’로 정의하며 그에게 기회조차 주지 않았지만 그는 자신의 유전자로 가타카의 우주비행사가 된다. 그렇다면 그의 유전자 판정은 과연 의미가 있기는 한 것일까?
가까운 미래 사회에서는 장애나 질병만이 아니라 돈과 권력을 통해 맞춤 유전자를 제조할 수 있는 사실상의 인조인간이 등장할 수 있다. 모두가 유전적으로 결함이 없는 세상은 과연 진정한 행복을 보장할까? 만약 ‘다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개개인은 어떻게 자신만의 차별점을 갖고 의미 있는 삶을 만들어갈 수 있을까? 완벽한 유전자는 모두를 개성 없는 클론으로 만들 것이다. 모두가 이상적인 유전자를 가지게 된다면 비슷한 외모, 키, 그리고 성격을 가지며 아무도 이상적이지 못한 모순에 빠진다. 결국 인간다움의 본질은 불완전성에서 나온다. 우리는 각기 다르며 그 다름에서 비롯되는 다양성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
이 영화는 내가 담고 있는 내용보다 훨씬 철학적이다. 완벽한 유전자를 가진 제롬의 죽음, 빈센트가 부적격자임을 알고 있음에도 사랑에 빠진 아이린, 그리고 빈센트가 우주로 떠날 수 있도록 항상 그의 신분을 눈감아주고 있었던 심사관 등 풀어내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개봉 당시에는 흥행하지는 못했지만 지금은 숨은 명작이라고 불리는, ‘유전자 조작’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낭만적이고 섬세하게 풀어낸 나의 인생 영화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