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INTRO


 

겨울에 눈 내리는 건 정말 싫은데, 미디어에서 내리는 눈은 왜 그렇게 예쁜지 모르겠습니다. 그 안에서 보이는 눈은 너무나 깨끗하고, 분명 차가울 게 뻔함에도 포근함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눈 속에 폭닥하고 잠기고 싶은 맘이 들기도 하고요. 아마 눈이 녹을 때의 시점을 보여주지 않아서 그런 거겠죠?


어쨌든 그런 눈의 이미지 덕분인지, 겨울은 애틋한 느낌이 드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가을은 애틋보다는 조금 멜랑꼴리하고 쓸쓸한 기분이 드는 편이고요. 겨울이 지나면 곧 봄이 올테니 이 앞에, 미래가 기다리고 있어서 그런 가봐요.


그런 겨울의 추위를 따스하게 느끼게 해주는 영화, <윤희에게>입니다.

 

 

sdfj.jpg

 

 

 

STORY


 

 
오랫동안 하지 못한 말. 나도 네 꿈을 꿔.
 

 

윤희의 딸 새봄은, 어느날 집 우편함에 꽂힌 우편물들 사이에서 엄마 이름으로 수신자가 적힌 편지 한 통을 보게 됩니다. 저 멀리 바다 건너 일본에서 온 편지를요.


‘윤희에게’로 시작하는 그 편지 속에는, 발신자의 현재 상황과 엄마 윤희와 함께했던 과거에 대한 추억이 담겨있었어요. 요 근래 아버지 장례를 치뤘다는, 다소 쓸쓸한 내용이었습니다. 편지를 읽으며 새봄은 엄마의 어렸을 적이 담긴 앨범을 뒤적거립니다. 그리고 새봄은 그날 밤, 엄마에게 같이 여행을 가자고 해요. 딸들이 보통 대학 졸업하기 전에 엄마하고 같이 놀러들 간다면서요.


윤희는 한 공장의 식당 도우미로 일하고 있어요. 딸과의 여행을 위해 영양사에게 못 썼던 휴가를 써도 될지 물어보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쓰지 말거나, 나가라 둘 중 하나였습니다. 윤희는 머뭇거리다가 이내 일을 그만두겠다고 선포해버립니다.

 

 

다운로드.jpg

 

 

그렇게 모녀는 겨울에 많은 눈이 내리는 홋카이도의 오타루로 향합니다. 그리고 이 곳에는 윤희에게 편지를 보낸 장본인이 살고 있기도 했고요. 새봄은 엄마 몰래 데리고 온 남자친구 경수와 함께 편지 발신자의 행태를 살피고, 남은 시간에는 엄마와 함께 시간을 보냅니다. 오전 중에는 자유롭게 다니기로 해서, 윤희도 남몰래, 친구 집 앞 까지 가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인기척에 숨어버리지만요.


윤희와 윤희의 오랜 친구를 만나게 해주려는 새봄의 계획은 성공할까요?

 

 

 

COMMENT



다운로드 (1).jpg

 

 

저에게 <윤희에게> 영화는, 과거의 관계를 마주함으로써 현재의 관계에 대한 회복이라고 느껴졌어요.


<윤희에게> 영화는 ‘퀴어’ 영화입니다. 하지만 대놓고 두 사람의 애정행각이 드러나지는 않아요. 그러다 보니, 그저 영화의 여러 설정 중 하나로만 느껴졌어요. 저는 오히려 윤희와 딸 새봄과의 관계가 더 돋보이더라고요.


학창 시절 윤희와 윤희의 친구 쥰은 한국에 함께 살고 있었고, 둘은 사귀었습니다. 하지만 윤희의 부모님에 의해 둘은 헤어지게 되고, 윤희는 정신병원에까지 가게 되죠. 이후에는 오빠가 소개해 준 남자와 빠르게 결혼하고 새봄을 낳습니다. 그 둘 사이에-적어도 한 쪽 만큼은- 사랑은 아마 없었겠죠. 그러다 보니 윤희가 새봄에게 살가운 애정 표현이 딱히 없는 것도 어찌 보면 그럴 수 있겠다 싶습니다.


그래도 딸이 참 잘 컸다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작중에서 새봄은 말투가 조금 틱틱대도, 엄마를 위하고자 하는 마음이 보이거든요. 엄마가 더는 자기 때문에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고, 힘들어 하지 않았으면 해요. 오죽하면 몰래 본 편지 한 통을 위해 이런저런 계획을 설정해 윤희에게 일본 여행까지 가자고 했을까요. 오히려 본인이라는 짐덩이를, 이제는 윤희 본인을 위해 놓기를 바랄 정도였습니다.


그 마음을 윤희도 조금은 느꼈던 걸까요. 윤희는 딸과의 여행을 위해 다니던 직장도 그만 둬버립니다. 아마 본인에게 주어진 휴가도 제때 못 쓰는 현실에 회의감을 느꼈을 것 같아요. 또, 여행지에 오랜 친구이자 옛 사랑이 살고 있었기에 더욱 더 가고 싶은 마음이었을 거고요. 윤희는 아마 아직도 그 시절을 잊지 못 하고 가슴 속에 품고 살고 있었나 봅니다. 이루어질 수 없었으니, 세상이, 삶이 그저 삭막하기만 했을 거고요.

 

 

다운로드 (2).jpg

 

 

새봄의 얼렁뚱땅 계획에 윤희는 결국 쥰과 마주합니다. 둘은 함께 시계탑 거리를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합니다. 아마 20년 간 마주하지 못 했으니,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겠죠. 이후 윤희와 새봄은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고, 새봄이 대학을 서울로 가게 되면서 윤희도 따라 나섭니다. 마지막에 윤희가 이력서를 들고 식당 앞에서 서성거리자, 새봄이 뒤에서 든든하게 지켜주기까지 합니다. 둘의 사이는 영화 초반과 다르다는 게 눈에 확 띌 정도예요. 아마 윤희가 마음 속에 묻혀두었던 과거의 사랑과 아픔을 다시금 마주함으로써 이를 털어내고, 본인 스스로를 가두었던 철장을 드디어 벗어난 걸로 보였어요.

 

<윤희에게> 영화는 추운 겨울이 배경임에도 따뜻함이 느껴졌어요. 아마 영화 내에서 그 누구도 남을 탓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일 거예요. (아, 딱 한 명 있긴 하지만 윤희가 딱 잘라버리니 넘어가도록 하죠.) 쥰이 마음을 정리하고자 쓴 편지를 몰래 윤희에게 보낸 쥰의 고모, 윤희에게 온 편지를 몰래 읽고 둘을 만나게 해준 새봄, 새봄을 따라 일본까지 와서 새봄과의 사랑을 확고히 하게 된 경수, 그런 그들을 결국에는 응원하게 되는 윤희까지.


세상이 이렇게 마음 좋은 사람들만 살았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OUTRO


 

여름은 기대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지만, 겨울은 종종 기대라는 것을 해보곤 합니다. 눈과 함께 왠지 모를 애틋한 추억을 남길 수 있을 것 같은 분위기거든요. 크리스마스가 있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지만요. 올해 겨울도 꽤나 추울 것이라고 예보가 들려오는데, <윤희에게> 영화를 통해 한 번 겨울 하루를 따뜻하게 보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