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가족의 죽음, 특히 일촌의 죽음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감히 상상만으로도 심장이 저릿해진다. 나 역시 그 상상을 해본 적이 있다. 죽음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촌까지는 아니더라도, 뉴질랜드에서 1년을 살던 동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여기 있는 동안 너무 사랑하는 우리 외할머니가 편찮으시거나 위독해지시면 어떡하지?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할머니가 건강하신 편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캘리포니아 출신을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문학계의 거물인 조앤 디디온은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딸의 죽음을 <상실>이라는 책에 담담히 풀어놓았다. 자신의 감정과 그 과정을 솔직하고도 구체적으로 나열해 나간다. 나는 책을 읽으며 자꾸 숨을 참게 되었고, 가슴으로 울음을 삼키는 기분이 들었다.
책 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어는 ‘비애’다. ‘슬플 비(悲)’와 ‘슬플 애(哀)’. 단어 자체가 슬픔으로 이루어져 있다. ‘헤어질 결심’은 연인 사이에 어울리는 말이고, 가족과의 헤어짐은 '용기', '받아드림' 정도가 어울릴 거같다. 시간이 흘러 물리적으로는 헤어지더라도, 마음은 겨우겨우 용기를 내어 헤어짐을 시도하고, 겨우 받아들이는 과정에 머무를 뿐이다.
요즘 나는 <상연과 은중>이라는 드라마를 보고 있다. 오빠의 죽음, 주인공의 죽음이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공개 전 예고편에서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다. 병으로 곧 죽게 되어 안락사를 앞둔 주인공이 옛 친구에게 “안락사하러 스위스로 함께 가주면 좋겠다”고 부탁하는 대화였다. 그 장면 하나만으로도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나의 8년지기 친구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우리는 죽음으로 가는 과정이야. 그러니 마음 가는 대로 살아야지. 우리가 언제부터 서울에 오고 싶어 했고, 언제부터 직장인이 되고 싶어 했는데.” 그 말이 가슴에 깊이 꽂혔다. 평생 내 꿈이 사업가였고, 서울에서 일하고 싶고 살고 싶다고 취업하기전에는 단 한번도 말해본적도 생각해본 적도 없는 나인 것을 잘 아는 친구였기에, “맞아”라는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사람이 없는 낯선 곳이 필요했던 주간에, 힘겨운 평일을 끝내고 토요일이 아침이 되자마자 <상실> 책을 들고 파주에 가 하루 만에 다 읽었다. 그리고 한 가족이 떠올랐다. 나 역시 20살 초반에 사촌(가족)의 죽음을 경험한 적이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것과는 다른, 죽음에 대한 슬픔. 나보다 두살 많은 그의 장례식장에 들어서자마자 신발장에서 쓰러지듯 엉엉 울었던 기억이 있다. 그 사촌의 가족들은 1년 동안 어떤 시간을 견뎌냈을까. 사촌오빠가 죽기 5-6년 전이였나, 사촌오빠의 엄마가 먼저 돌아가셨으니 큰아빠는 조앤디디온과 매우 유사한 상황이다. 그리고 나는 남아있는 사촌들을 나의 친언니, 친동생이라 생각하며 살고 있다. 암으로 돌아가신 그들의 엄마가 나와 우리오빠한테 너무 잘해주셨으니까. 남아있는 가족들한테 보답하는건 당연하다. 그들이 지금까지 살아내고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가슴이 먹먹해진다. 사촌오빠와 큰엄마가 한 곳(납골당의 한 공간)에 있는 것을 매해 보는 가족들은 어떤 마음이고 그들의 심장은 어떤 상태일까, 그 날의 감정은 얼마나 지속될까. 디디온이 <상실>에 기록한 상실과 비애, 그리고 끝없는 슬픔과 관련한 단어들이 그들에게도 가슴 깊숙한 곳까지 고통스럽게 닿아 있었을까. 그 당시에는 어려서 알지 못했지만, 이제야 감히 짐작해보려 했다.
상실.
사실 이 책을 찾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나의 경험 때문이었다. 오래 함께한 연인과의 이별. 그로 인한 상실감과 공허함, 가슴이 뻥 뚫려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는 듯한 기분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싶었다. 이성적인 성격 탓에 감정적인 나날 속에서도 억지로 버티며 담담하려 애썼다.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그래서, 상실을 1년 동안 어떻게 풀어내는지 궁금해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책을 읽는 내내 죽음이라는 단어와 마주했고, 꾸역꾸역 눈물을 참아내며 페이지를 넘겼다. 그리고 깨달았다. 연인과의 이별로 인한 상실은, 죽음을 앞에 두었을 때는 아무것도 아닌 듯 작아진다는 것을.
그러나 동시에, 그 역시 내가 감당해야 할 하나의 상실이라는 것도.
삶은 빠르게 변한다.
삶은 순간에 변한다.
저녁을 먹으러 자리에 앉는 순간, 내가 알던 삶이 끝난다.
자기 연민이라는 문제.
다섯 길 물 속에 아버지가 누웠으니
아버지의 두 눈은 진주가 되었네*
* 셰익스피어의 [폭풍]에 나오는 구절이다.
존이 돌아올 수 있으려면, 나 혼자 있어야 했다.
그렇게 나의 마술적 사고의 한 해가 시작되었다.
“하루 더 사는 것보다 더” 존이 속삭였다. 이것도 우리 식구끼리만 통하는 말이었다.
이 말은 리처드 레스터의 영화 <로빈과 마리안>에 나오는 대사다.
“하루 더 사는 것보다 더 당신을 사랑해요”
- <상실> 조앤 디디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