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것이 곧 힘이다, 이 격언이 갈수록 와닿는 시대다.
많이 아는 그만큼 더 많은 돈을. 더 많은 명성을. 더 많은 힘을 얻을 수 있다. 공학도는 더 많은 공학을 알아야 할 것이고 법학도는 더 많은 법학을, 의학도는 더 많은 의학을 알아야 할 것이다. 더 많은 책을 보며, 더 많은 논문을 보며, 더 많은 기사를 보며 그 힘을 키울 수 있다. 그런데, 단 한 가지. 예술은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예술을 업으로 삼는다면 뜬구름 잡는 소리에 익숙해져야 한다. 실컷 놀아라, 여행을 떠나라, 술을 마셔라, 연애를 해라. 그리고 또 하나, 미술관을 가라. 그 이상의 첨언은 없다. 그냥 가라. 어떠한 이익이 닥쳐올지 모른 채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미술관을 간다.
밑도 끝도 없는 '크리에이티브' 요구가 우리를 매번 난공불락에 놓는다. 우리는 더 많은 책을, 논문을, 기사를, 무언가를 본다고 한들 주어진 과제를 해결할 수 없다. 백색의 워드 앞, 백색의 어도비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뜬구름 잡는 소리 중 가장 생산성 있는 행위. 미술관을 가는 것뿐이다.
미술관을 들어서면 효율을 벗어난 층고와 여백이 눈에 띈다. 왠지 모르게 모든 것이 깔끔하고 여유 넘친다. 주르륵 전시된 작품들을 보며 고뇌의 표정을 지어보지만 내심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저것은 당최 무엇을 형상화하는지, 나도 만들겠다 싶은 저것이 당최 왜 예술 작품인 건지 도슨트의 설명을 듣기 전에는 좀처럼 알아내기 쉽지 않다.
도슨트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과 얼핏 알아들을 법한 말을 교차해 설명한다. 알듯 말듯 아리송한 말은 결국 '일상을 다르게 바라본 예술 작품' 이라는 요들로 합치된다. 납득이 되는 것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것이 있다. 좌우지간 우리가 얻는 이익이란, 타인의 일상을 엿본 것뿐이다. 그 일상을 엿보다 보면, 미술관을 가라던 뜬구름 잡는 소리의 함의를 알 수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크리에이티브'란 대개 일상에서 확장된 크리에이티브를 말한다. 익숙한 듯 새로운 것을 찾고 새로운 듯 익숙한 것을 찾아야 한다. 타인의 일상을 엿본다는 건, 공상이나 잡념으로 끝나지 않고 시각화된 Think Different를 엿본다는 것과 같다.
그것이 설득력이 있고 없고는 그다음 문제. 타인의 일상을 엿봄으로 각자 주어진 난공불락에 이른바 'insight'를 상기시킨다. 종전까지만 해도 하나의 공상에, 하나의 잡념에 갇혀 옴짝달싹 못 하던 머릿속이 차츰 풀려가듯 환기되듯 돌아간다.
미술관은 진부하다. 알 수 없는 이야기를 작품이라며 걸어 놓고, 그 주변을 멀끔한 차림의 남녀가 영문도 모른 채 서성인다. 그래도 이왕 미술관에 온 거, 영문을 좇아 도슨트의 설명을 듣고 타인의 일상을 받아들여 본다. 머릿속에 떠다니던 단 한 가지 이미지가 수십, 수백 장으로 확장된다. 내 머릿속 단 한 가지 일상이 수십, 수백 가지로 확장된다.
그래서 우리는 미술관을 간다. 공고한 지식이 아닌 타인의 일상을 엿보기 위해 미술관을 간다. 나만의 세계가 아닌 타인의 세계를 엿보기 위해 미술관을 간다. 공리가 아닌 insight를 좇기 위해 미술관을 간다. 견문이나 교양, 경험으로 뭉뚱그려지는 앎을 알기 위해 미술관을 간다. 우리에게는 아는 것이 곧 힘이자, 가는 것이 곧 힘이다.
그래서 우리는 미술관을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