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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엑소포니, 모어(母語)의 바깥으로 나가다


 

언어학 교양에서 인간이 새로운 언어를 배우면 인간의 뇌의 새로운 부분이 발달한다는 내용을 배웠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우리가 말을 하는 이유는 다른 사람에게 말을 전달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사실 혼잣말에도 상대는 있다. 바로, 나 자신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생각할 때의 상태를 가만히 들여다 보면, 우리는 계속해서 생각을 하는 동시에 어떠한 말을 만들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무 말 없이 생각만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나 자신이 말하는 말을 나 자신이 듣고 있는 것이다. 이 상황이 바로 ‘생각’이다.


그래서 우리는 언어 없이는 생각을 할 수 없고, 생각 없이는 언어를 사용할 수 없다. 이는 언어가 곧 생각이고 생각이 곧 언어라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새로운 언어를 사용하면 인간의 뇌는 새로운 부분이 발달되고, 새로운 생각이 열린다. 언어학자 촘스키는 인간이 언어를 배울 수 있는 이유를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언어습득장치’를 가지고 있고, 그 언어습득장치에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언어의 보편 문법이 내장되어 있다고 말한다.


다와다 요코 하면 ‘엑소포니(Exophony)’라는 개념이 함께 언급된다. 이는 ‘모어 바깥으로 나간다’는 의미로, 작가의 글과 언어에 대한 사유를 집약적으로 드러낸다. 이 책에서 쓰인 단어 하나하나의 의도는 분명하고, 의미 또한 분명하다. 작가가 언어에 대한 세심하고 민감하고 다정한 시선을 적합한 단어로 드러내기 위해 고민한 흔적들이 페이지마다 가득하다. 어떠한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형식과 장르의 구분에서 벗어나 글자 사이를 자유로이 다니는 언어를 놓치지 않고 감각하기 위해서 나는 책을 예민하게 읽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작가가 다룬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아직 나는 ‘모어(母語) 바깥으로 나가는’ 경험에 대한 준비가 덜 된 것이 아닐까. 그래도, 이 책을 읽는 동안은 간접적으로나마 모어 바깥으로 나가는 경험을 하는 기묘한 시간이었다.

 

 

영혼 없는 작가.jpeg

 

 

다와다 요코는 일본어와 독일어, 두 언어를 넘나들며 작품 세계를 확장해온 작가다. 그는 일상에서 흔히 지나치는 사물이나 기호를 낯설게 바라보면서, 언어와 세계의 관계를 새롭게 드러낸다. 거의 40년에 가까운 활동 속에서 다와다는 신화적 상상과 치밀한 사유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세계 문학 속에서도 뚜렷한 개성을 쌓아왔다. 이번에 다시 출간된 『영혼 없는 작가』 역시 이런 면모가 잘 담긴 책이다.


이 책은 다와다가 독일어로 쓴 글 가운데 특히 에세이에 가까운 작품들을 모은 것이다. 일본어로 쓴 작품들이 비교적 서사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다면, 독일어 글들은 문화적 차이를 예리하게 포착하는 사유와 관찰의 기록에 가깝다. 독자는 사소한 장면들을 따라가며 문득 예상치 못한 전환이나 새로운 관점을 만나게 된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영혼 없는 작가』에서는 인간의 몸을 여러 개의 방에 비유하고, 이를 번역의 과정에 연결한다. 다와다는 누구나 고유한 원본을 지니고 있다고 보는 대신, 애초에 ‘원본’은 없고 끊임없는 번역만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영혼조차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계속 분리되고 이동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인간의 몸 또한 번역 작업이 행해지는 여러 방을 가지고 있다. 내 추측으로 여기에서는 원본 없는 번역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물론 누구에게나 태어날 때 고유한 원본 텍스트가 주어진다는 기본 생각에서 출발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이 원본 텍스트가 보존되는 장소를 영혼이라고 부른다.”
 

 

특히 흥미로운 대목은 ‘귀’의 역할에 대한 사유다. 이야기가 입에서 흘러나온다고 보지 않고, 오히려 귀 기울여 듣는 과정에서 발생한다고 말한다. 그는 햄릿에서 아버지의 귀에 독을 붓는 장면을 끌어오면서, 인간과 세계를 단절시키는 것은 입이 아니라 귀라는 통찰을 제시한다. 다와다는 자신을 ‘영혼 없는 작가’라고 부르며, 말하는 자라기보다 듣는 자로서 글을 쓰겠다는 태도를 드러낸다.


 
“주의 깊게 듣는 자리에 이야기가 등장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의 깊게 들음으로써 이야기가 생겨났다. 어쩌면 입이 아니고 귀가 이야기하는 기관이 맞는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왜 햄릿 아버지의 입이 아니라 귀에 독을 부었겠는가? 세계로부터 인간을 단절하기 위해서는 입이 아니라 귀부터 파괴해야 한다.”
 

 

 

진짜가 되기 위해 살아가는 것


 

사실, 계속해서 곱씹어도 이해가 가지 않는 문장이 있었다.

 

 
“사람이 죽고 나면 같은 사람일 수 없는 것처럼 태어나기 전과 태어난 후가 같은 사람일 수 없는 것이다. 태어난 아이들은 모두 다 가짜다. 아이는 태어날 때 분실되고 다른 아이가 태어난다. 그게 바로 지금의 나다.”
 

 

사람이 죽고 나면 같은 사람일 수 없는 것처럼 태어나기 전과 태어난 후가 같은 사람일 수 없다, 라는 말. 어째서 다와다 요코는 죽고 나면 같은 사람일 수 없다고 생각했을까. 물론 물질적으로는 같은 사람일 수 없다는 데에 동의한다. 하지만, 나는 사람이 오직 물질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 사람에 대해서 생각하는 사람들, 그 사람에 대한 추억, 기억, 회상 그 모든 관계가 합쳐져 하나의 사람으로 존재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다와다 요코는 태어난 순간부터 ‘가짜’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가짜로 태어나 진짜가 되기 위해 타인의 기억과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 아닐까?


“사람이 죽고 나면 같은 사람일 수 없는 것처럼 태어나기 전과 태어난 후가 같은 사람일 수 없는 것이다. 태어난 아이들은 모두 다 가짜다. 아이는 태어날 때 분실되고 다른 아이가 태어난다. 그게 바로 지금의 나다.”


다와다 요코의 문장을 다시 읽어보니 왜인지 정답이 아니라 질문처럼 다가온다. “과연 우리는 언제, 어떻게 하나의 존재로서 완성되는가?” 『영혼 없는 작가』는 그 질문을 작가의 언어로 물으며 독자 각자의 언어와 사유로 다시 써 내려가길 요구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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