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삶은 언제나 두 겹으로 겹쳐 있는 듯하다. 눈에 보이는 현실의 나와, 보이지 않지만 어딘가에서 나를 따라다니는 또 다른 나.

 

우리는 그것을 그림자라고 부른다. 빛이 있는 한 그림자는 사라지지 않듯, 내가 살아 있는 한 그림자 또한 나와 함께 존재한다. 그 둘은 분리될 수 없으면서도, 결코 하나로 합쳐지지 않는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은 바로 그 불가해한 틈새, 자아와 그림자가 마주 서는 경계의 풍경을 이야기한다.

 

 

“가끔은 내가 무언가의, 누군가의 그림자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

 

너는 중요한 비밀을 털어놓듯 말한다.

 

“여기 있는 나한테 실체 같은 게 없고, 내 실체는 다른 어딘가에 있어. 지금 여기 있는 나는 언뜻 나처럼 보여도 실은 바닥이나 벽에 비친 그림자일 뿐 (…)   그런 생각을 지울 수 없어.

 

1부 p.111

 

 

도시는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도시의 세계는 시간도 그림자도 무의미하게 느껴지고, 문지기는 험악하게 도시에 들어오려는 자들의 그림자를 떼어낸다.

 

그러나 그 벽은 돌이나 시멘트처럼 단단하게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불확실하고 모호하기에 손을 뻗게 된다. 하루키가 그려낸 도시를 둘러싼 벽은 결국 현실과 비현실, 주체와 그림자를 갈라놓으면서 동시에 이어준다. 마치 우리가 살아가며 내 안의 불편한 조각들을 지우려 하지만, 결국 그것 없이는 온전한 나로 설 수 없는 것처럼.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과거의 자신과 서로 마주 앉아 완성한 장편소설이다. 소설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 ‘도시 속의 나’와 ‘외부의 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특히 1부는 『세상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와 구조를 동일하게 가져간다.

 

그러나 이후의 전개는 시간선을 넘는 대화를 통해 존재의 균열을 부드럽게 풀어낸다. 미지의 도시와 그 밖에서 흔들리는 자아. 하루키는 이 단순한 구도를 통해 현실과 그림자의 대화를 그려낸다.

 

 

“우선 첫째. 원래 세계로 돌아가는 의미를 도저히 찾을 수 없어. 나는 그 세계에서 더더욱 고독해질 테니. (…) 하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괜찮아. 이곳에서 적어도 나는 고독하진 않아. 이 도시에서 내가 당장 무엇을 하면 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걸 알고 있으니까.”

 

1부 p.215

 

 

소설의 진행은 독자를 벽 앞에 불러세운다. 현실의 나와 그림자가 서로를 의식하며 마주 보고, 고립되었다고 생각하고, 궁금증에 손을 내밀게 만든다. 주인공의 삶이 흔들리며 오히려 존재의 깊이를 만들어내는 풍경을 그려낸다. ‘고독하지 않은 곳’은 모순을 품은 채 흔들리는 장소일 것이다.

 

우리가 믿는 ‘주체로서의 나’는 사실 불완전하고 불안정하다. 삶은 언제나 흘러가지만, 그 흐름은 내 손에 온전히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불확실한 벽 앞에서 두려워하는 동시에 도약하고자 하는 충동을 느낀다.

 

이러한 충동은 아마도 나의 그림자와 다시 만나려고 하는 내적 소망일지도 모른다.


 

“많은 이들이 ‘영혼’이라는 말을 흔히 쓰지요. (…) 제 생각에 우리가 무엇보다 실제로 의지할 수 있는 건 의식과 기억입니다.”

 

2부 p.348

 

 

우리를 지탱하는 건 초월적 실체도, 조각된 나를 사는 그림자도 아니다.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나와 다르다’라는 개인적인 좌우명을 깊게 새겨 넣는다. 우리를 지탱하는 것은 순간의 의식과 기억이다. 그것은 융이 말한 ‘그림자’처럼, 우리가 억눌려온 또 다른 자아의 편린과 결합하며 우리를 형성한다. 삶은 고정되지 않아서, 수많은 경험과 흔적이 모자이크를 만들어 낸다. 그래서 영혼은 불변의 실체에서 순간의 자취가 엮어 이루어진 ‘흐름’에 가깝다.

 

나의 일부는 내가 결코 도달하지 못할 가능성이자, 오래 외면해 온 진실이다. 나의 삶이 누군가의 그림자가 될 수 있어도, ‘나’에게는 우위가 없다. 인간은 그림자를 통해 서로를 증명하고, 불확실한 벽을 사이에 둔 채 끝없이 대화를 이어간다.

 

삶을 확실하게 붙잡고자 하는 욕망은 좌절되기 마련이다. 우리는 언젠가 도래할 ‘끝’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이데거가 말했듯, 인간은 죽음을 향해 던져진 존재이며, 바로 그 불안 속에서 현재의 삶은 더욱 선명해진다. 그래서 하루키의 소설은 불확실성을 제거하려 하지 않는다. 우연히, 불현듯, 불행하게 맞이할 수 있는 죽음에서 살아가는 힘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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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으며, 나는 나의 그림자를 들여다본다. 그 존재는 나를 대신 살아가는 또 다른 주체이자, 내가 잃어버린 조각들을 간직한 얼굴이다. 언젠가 그 그림자와 마주 앉고, 그림자가 나의 일부가 되면 지금보다 더 깊은 나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보인다.

 

 

“이제 알겠어? 우리는 둘 다 누군가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아.”

 

2부 p.696

 

 

벽 너머에 살아가는 또 다른 네가, 언젠가 너를 기다리고 있다. 간절히 원한다면, 우리는 서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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