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젋은 모색 2025: 지금, 여기》
국립현대미술관 《젋은 모색 2025: 지금, 여기》는 2025년 4월 24일부터 10월 12일까지 과천관에서 열린다. '젊은 모색'은 1981년 '청년 작가전'으로 시작해, 올해로 22회를 맞이하는 가장 오래된 신진 작가 지원 프로그램이다. 이번 전시에 신진 작가가 참여하여 회화, 조각, 영상, 사운드, 게임,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실험적인 신작을 선보인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은 동시대 한국 작가들이 작품을 제작하고 발표할 수 있는 장을 넓히는 데 기여해왔다. 그중에서도 정기적으로 열리는 «젊은 모색»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신진 작가 지원 프로그램으로, 매번 새로운 세대의 시각과 감각을 드러내는 장이 되어왔다.
«젊은 모색 2025: 지금, 여기»는 개인으로서, 동시에 동시대 청년으로서 마주한 시대의 감각과 고민을 나누며, ‘나’에서 출발해 ‘우리’로 뻗어가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작품을 통해 선보인다. 이는 예술이 현실에 응답하는 언어이자 실천으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주며, 동시에 새로운 세대의 사유가 그 중심에 작동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한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은 1986년 개관 이후 곧 40년을 맞이하는 오래된 미술관으로, 도심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자리한다. 지하철역에서 내려 구불구불한 산길을 셔틀버스로 올라가는 진입로는 때로는 현실과 미술을 분리하는 장벽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동시에 일상으로부터 빠져나오는 여정의 설렘을 선사한다. 현시대와 동시에 박동하는 미술을 한 발자국 떨어진 시선으로 바라보다가, 전시장 안에서는 오히려 더 가까이 끌어안는 경험을 하게 된다.
«젊은 모색 2025: 지금, 여기»
«젊은 모색 2025: 지금, 여기»는 총 다섯 개 섹션으로 구성되어 참여 작가들의 첨예한 질문을 축적해 간다. <기술 너머>, <관계 맺기>는 인간을 둘러싼 다양한 비인간 주체를 재해석하고 성찰하는 사유를 전하며, <타자로서 타자에게>, <함께 하기>는 세계의 다양한 타자들과의 공존 가능성을 탐색한다. 중앙홀에는 참여 작가의 아카이브 공간인 <젊은 혹은 모색>이 별도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 <관계 맺기> 섹션은 예측할 수 없는 미래 속에서도 공존을 지향하는 세계를 상상하며, 인간과 비인간 주체 사이의 새로운 관계를 제안한다. 근대적 서사, 이성과 합리, 진보와 발전의 이름 아래 구축된 위계와 배제의 틀은 인간과 인간, 인간과 동물, 인간과 자연 간의 관계를 이분법적으로 조직해 왔다.
오늘날은 수직적 관계의 해체와 재편이 시도되고 있다. 연대와 공진화를 통해 인간과 비인간 존재 간의 공동체를 상상하며, 지속가능한 실천으로 이어진다. 참여 작가들은 인간과 동물의 역사적 관계를 추적하거나, 인체 내부의 구조를 탐구하고, 욕망과 자본이 낳은 인공물의 화석을 수집하는 방식으로 이분법적 사고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유도한다.
권동현, 권세정 <러브 데스 도그&에필로그>
권동현 권세정 작가 전시 전경, 사진: CJY ART STUDIO_조준용
이전 작품 <러브 데스 도그 시티>(2022)에서 1950년대 이후 도시화 과정 속 개의 공간이 마당, 골목에서 실내로 옮겨진 변화를 주목하며 인간과 개의 도시적 관계를 이해하는 작업을 했다면, 이번 신작 <러브 데스 도그&에필로그>는 시선을 근대화 이전 식민지 시기 한국으로 옮겨서 근대화가 인간과 개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핀다.
영상의 한복과 양복 차림의 인물이 함께 찍힌 흑백 사진은 근대 과도기의 정황을 짐작하게 한다. 1909년 본래 궁궐 터에 설치된 동물원의 풍경과, 같은 시기 만국박람회 속 철장 안에 갇힌 조선인의 모습이 교차한다. 이는 외세에 의해 강요된 한국의 근대화를 보여주는 동시에, 인간과 비인간 존재가 겪는 위계적 위치의 반복을 드러낸다. 서양을 우월하게 인식하고, 동양을 개량하려고 한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은 철장 안을 나온 존재와 여전히 철장 안에 갇힌 존재 사이의 시선으로 확장된다.
전시장에는 조각 오브제가 함께 배치되어 있는데, 이는 긴 영상 서사에서 누락되기 쉬운 감각과 물성을 조각을 통해 보완하고, 영상에서 비인간 동물의 목소리를 직접 담기 어려운 상황에서 조각을 통해 인간이 동물을 바라보는 태도와 시선을 손끝으로 따라가려는 시도이다.
작가는 인간과 동물이 긴밀히 얽혀 있던 서사를 다루면서 이 시대에 도시에서 개와 맺고 있는 관계는 짧은 임의적 형성임을 드러낸다. 이를 통해 선형적인 서사보다는 인간과 동물이라는 두 관계가 덧붙여져 가는 열린 서사를 지향한다.
조한나 <무제>
조한나, <무제>(2025) 캔버스에 아크릴릭 물감, 180x150cm
사람은 성별, 국적, 등 누구나 고유한 특수성을 지니는데, 개인들은 이러한 요소들로 구별되는 동시에 사회적 차별의 갈등에 놓이게 된다. 겉모습의 차이를 벗겨내면 모두가 인간이라는 공통된 존재라는 것을 사회는 잊은 듯이 보일 때가 있다. 외적으로 구별되는 정체성보다 인간의 내면으로 시선을 돌리는 작가는 인간 존재라면 누구나 공통으로 가지는 생물학적 구조로 향한다.
세포, 신경, 핏줄은 언제나 우리의 일부로 함께하지만, 해부학적 구조로 시각화했을 때 낯선 존재로 다가온다. 작가는 자연의 나뭇가지와 핏줄, 뿌리와 신경의 닮은꼴을 통해 새로운 내적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시각적 유사성뿐만 아니라, 인간의 사고와 감정이 지속적으로 순환하는 과정과 자연에서 끊임없이 순환하는 토양의 생명력과 유사함을 발견하고, 이를 통해 조금 낯선 인간의 해부학적 형상을 자연과 조화를 통해 내면의 부드러움과 따뜻함을 전한다.
온도는 따뜻한 감정을 전달하는 동시에, 인간이 지닌 공통된 본질인 체온에 있다. 열을 활용한 인두작업을 통해 남겨진 흔적과 물성의 변화는 감정의 응축과 발산을 닮았으며, 캠퍼스 위에 반복적으로 덧칠하고 닦아내는 행위는 내면의 정체성이 형성되는 과정을 은유한다. 이 시각적 층위는 명확한 형체는 아니지만, 흐릿한 질감과 색감 속에서 다양한 존재들로 표현된다.
열에 의해 불규칙하게 드러나는 작업의 물성은 우리의 불완전성을 어루만진다. 다양한 층위를 깊이 있게 따라가면 흐릿한 형체 속에서 자신과 연결된 명확한 무언가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외적 정체성을 벗고 광학 기계를 통해 들여다본 세계에는 자연을 닮은 듯한 이미지들이 사회적, 문화적 기준을 넘어서며 누구나 동등한 세계로 초대한다. 인간과 비인간 존재, 나와 타자의 경계를 허무는 이미지들은 그 모두가 연결된 존재임을 드러낸다. 이 여정은 우리 모두가 따뜻한 온기를 공유하는 존재임을 발견하게 한다.
장한나
뉴 락(New Rock)
작품에 등장하는 암석들은 얼핏 해변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자연석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모두 인간의 손을 한 차례 거친 물질들이다. 이들은 석유 산업에서 생산된 플라스틱이 소각장과 매립장 등 인간의 시스템을 이탈하여 자연 속에서 새로운 관계를 맺으며 새롭게 풍화되고 변모한 것들로, 작가는 이를 ‘뉴 락(New Rock)’이라 명명한다.
인공의 산물이 자연의 과정을 거치며 다시 태어날 때, 그것은 인공물도, 자연의 산물도 아닌, 경계 너머의 새로운 돌이 된다. 작가에게 뉴 락은 단순한 부산물이 아니라 새로운 땅을 형성하는 존재로, 인간과 자연의 경계를 부유하는 매개다.
장한나 작가 전시 전경, 사진 CJY ART STUDIO_ 조준용
설치 작품
작가가 직접 해변에서 수집한 뉴 락들은 자연은 어떠한 판단이나 구분도 없이, 인공마저 품어낸다는 점을 전한다. 따라서 이 풍경은 인간의 폐기물을 배제하거나 지워버리는 방식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마저 수용하는 자연의 능동성과 생명력에 감탄하게 한다.
전시장에 펼쳐진 이 세계는 마치 은하 속 행성들이 부유하는 우주의 풍경처럼 보인다. 인간의 오염마저도 거대한 순환 속에 흡수하는 자연의 태도는, 인간 중심의 사고에 대한 반성적 시선을 요구하는 동시에, 우리가 속한 세계가 얼마나 유연하고 열린 세계인지를 체감하게 한다.
관계의 상상
먼 우주의 행성 같은 낯선 존재에게 말을 거는 일은 두렵지 않다. 이질적인 타자에게 말을 건넬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이미 배척과 혐오가 아닌 포용과 공존의 가능성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타자는 결코 외부에만 머무르지 않고, 우리의 내밀한 감각과 기억 속에도 스며들며 예측 불가능한 풍경으로 변화시킨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연대의 온기를 체험하고, 공감의 감각을 확장한다.
관계는 우연적이고, 일시적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단절로만 끝나지 않는다. 철장처럼 단단히 닫힌 경계도 결국 열릴 수 있으며, 끊임없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관계 속에서 우리는 구분 없는 포용과 긍정의 태도를 가꾸어 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