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킹은 함께하기 좋은 취미다. 지켜야하는 공정이 있다보니 수십개를 만드는 노력과 열개 남짓을 만드는 노력에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러니 자연스레 손은 커진다. 건강을 생각해서라도 다 먹지 못한 디저트는 주변 사람의 몫이 된다.
간단히 포장해서 나누면 좋아해주는 사람도 많고 가볍게 이야기를 틀 수 있는 좋은 핑계거리가 된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함께 만들어보는 것도 꽤 즐겁다. 직업 제빵사나 파티시에에게는 이른 새벽부터 시작하는 고된 노동이지만 가끔 체험하기엔 이만한 취미가 없다.
명확한 결과물이 나온다는 점에서 뿌듯하고 정해진 레시피를 따라가다보면 복잡한 잡생각도 사라진다. 제빵 반죽이 부푸는 시간만큼 기대감은 부풀고 제과 반죽에 들어가는 설탕의 양 만큼 기분 좋은 달콤함이 더해진다.
필자는 몇해 전 제과기능사와 제빵기능사 자격증을 땄다. 우연한 기회였다. 지금도 친구를 만날 일이 있을때마다 휘낭시에나 마들렌, 치즈케이크, 다쿠아즈 등등을 만든다. 선물을 주는 시간 만큼이나 누군가를 떠올리며 반죽을 하는 시간은 스스로에게 기쁨이 된다.
즐거운 취미가 하나 늘었을 뿐 전문가라고 하기엔 민망하다. 친한 친구가 놀러오면 같이 먹고싶은 걸 만들어볼 정도다. 그럼에도 이런 이야기로 글을 여는 것은, 필자가 함께하는 베이킹의 즐거움을 이해하고 있다는 말을 하고싶어서다.
이 책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오늘 소개할 도서는 문현준 작가의 ‘이제 오븐을 켤게요‘다. 책을 지은 문현준 작가는 동호회 어플리케이션 문토에서 100회가 넘게 베이킹 일정을 진행했다. 책의 제목은 그의 이런 이력에서 비롯됐다.
을지로를 거점으로 모임을 꾸려가고 있는 그는 그간의 경험을 이번 책에 녹였다. 빵에 대한 이야기, 사람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세운상가와 청계청을 중심으로 한 을지로 동네에 대한 이야기가 열거돼있다.
이 책은 사람들과 빵을 만들고, 함께 굽는 시간 속에서 일상의 의미를 발견한 문현준 작가의 베이킹 에세이다.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으로 오븐을 켜왔던 그의 마음이 다정한 문체에 모두 녹아있다.
"저 사람이 하니까 나도 할 수 있겠다"의 '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그의 인사에는 그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지가 묻어난다.
그는 이번 책에서 전문가적인 시선보다는 우리 주변에 늘 있는 한 명의 시민이자 친구로서 다가온다. 두려음을 인정하고 새로음을 향해 도전하는 그의 마음들이 이 책으로 독자들을 이끈다.
그래, 인생은 원래 무서운 것이 많으니까. 하고 싶은 것을 모두 할 수도 없고, 어떤 마지막이 있을지도 알 수 없으니까.
그래서 나는 빵과 쿠키를 만든다. 별 생각 없이 만든 것들을 사람들에게 주곤 한다. 그렇게 건넨 무언가가 그 사람들을 기쁘게 하리라 믿으면서, 그 믿음이 내 마음 속 무서움을 조금 덜어낸다고 생각하면서.
분명,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나 뿐만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다들 빵과 쿠키를 열심히 굽고 또 주위에 나눠주는 것이겠지. 그런 사람들이 있어서. 내 생각에 공감해 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이 책을 쓸 수 있었다.
전문 셰프가 아닌 그가 베이킹 모임을 운영해온 건 독특한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의 매력은 이 지점에서 피어오른다. 레시피에 집중하거나 전업 작가의 입장에서 글을 써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그 중간 어딘가에서 균형잡힌 시각을 보여준다.
빵을 만드는 단순한 취미를 넘어 사람들과 연결되고 서로의 일상에 스며드는 일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그 의미가 크다. 베이킹을 좋아하고 디저트를 매개로 사람들과 함께하는 걸 좋아하는 나는 이 책이 그래서 더 반갑게 느껴졌다.
책을 뒤적거리다보면 그가 베이킹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느낄 수 있다. 그의 이야기는 디저트로 시작한다. 에크타르트, 소금빵, 르뱅쿠키, 과일 타르트, 밤 티라미수, 바스크 치즈케이크, 사브레 등등. 갓 구운 소금빵을 나눠먹으면서 감탄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는 즐거움, 어디든 나눠주기에 좋은 맛이라는 르뱅쿠키, 원하는 방식으로 꾸며나갈 수 있다는 부쉬 드 노엘의 이야기가 우리를 반긴다.
단단한 버터를 쪼개고 반죽이 녹지 않게 힘으로 눌러 가면서 작업하며 중간중간 냉장고에 넣었다 빼야 하는 과정은 번거롭고 귀찮더라도, 갓 구운 에그타르트를 한 김 식혀 먹을 때 입 안에서 사라지는 필링처럼 그 귀찮음 또한 사라진다. 내가 기억하는 포트투갈에서의 에그타르트를 다시 떠올리게 하는 그 맛. 함께하는 사람들도 느꼈으면 한다. - 책 속에서
이어지는 이야기는 그가 그동안 만난 사람들과 동네에 대한 이야기다. 소금빵 반죽을 잘못해서 실패한 결과물을 들고 가도록 해야했던 경험과 당황스러웠던 참여자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그가 터전으로 삼은 을지로 한쪽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재미나다.
난 개인적으로 그가 자주 직장인을 구경한다는 '스타벅스 을지로타워점'을 자주 방문하는 한 명의 직장인이기도 하다. 생활 반경이 겹치다보니 반가운 마음이 가득이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낯설지 않은 이유다.
탐탁지 않은 인간관계와 하루하루 버텨가는 직장생활 사이에서 달콤한 디저트를 찾을 수밖에 없는 우리네 삶의 애환이 녹아있다.
저자 문현준
1991년에 태어났다.
2009년 집에서 베이킹을 시작하고,
2022년부터 사람들과 함께 베이킹을 하며,
2023년 을지로에 공방을 꾸몄다.
“저 사람이 하니까 나도 할 수 있겠다”의 ‘저 사람’이 되고 싶다.
기회가 된다면 함께 만든 반죽을 오븐에 넣어두고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고싶다. 부푸는 반죽만큼 기대감은 커질 것이다. 여유로운 주말 오후, 그가 빵을 굽고있을 을지로 어딘가에 방문하는 상상을 한다.
함께 디저트를 나눠먹고 청계천을 걷는다면 기분이 좋을 것 같다. 오븐의 열기가 전해지는 듯 마음 한 켠이 따스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