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김현경의 책 『사람, 장소, 환대』에서는 인간이라는 자연적 사실을 넘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사회적 성원권을 얻어야 한다고 말한다. 타인의 인정과 환대를 필요로 하는 일종의 자격이라는 것이다.
뮤지컬 〈르 마스크〉는 바로 그 사람이라는 자격을 박탈당했던 두 주인공이, 서로를 통해 사람다움을 회복하는 과정을 그린다.
극은 제1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른 1918년 프랑스 파리, 얼굴이 훼손된 병사들의 가면을 제작해주는 ‘초상가면 스튜디오’를 배경으로 진행된다. 스튜디오의 직원 레오니는 조각에 재능과 열정을 지녔지만, 불편한 다리 때문에 보조 역할만 맡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귀족 출신 부상병 프레데릭의 가면을 직접 제작할 기회를 얻게 된다. 처음으로 주어진 기적 같은 기회인 만큼 레오니는 완벽한 가면을 만들어 내고자 하지만, 삶에 대한 의지를 잃은 프레데릭은 가면 제작에도 회의적이다. 레오니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한편으로 깊은 상처를 지닌 프레데릭을 돕기 위해 그에게 천천히 다가간다.
진심 어린 노력에 프레데릭도 점차 마음을 열고, 그들은 가면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위로한다.
사회적으로 죽은 존재들

레오니와 프레데릭은 모두 사회적으로 죽어 있는 인물들이다.
소아마비로 인해 다리를 저는 레오니는 33세가 되도록 제대로 된 기회를 얻지 못했다. 사회는 그녀에게 “가만히 있어. 너는 할 수 없어.”라고 속삭인다. 그녀가 서있기만 해도 사람들은 수군거리고, 동정의 눈빛을 보내거나 막아선다. 부상병을 위한 가면을 만들고 장애를 가진 레오니를 고용한, 꽤 의롭고 너그러운 성품을 지닌 듯한 마담 래드조차 그녀에게 한 사람의 몫을 다하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레오니는 늘 불완전하고 모자란 존재로 취급된다. 그녀는 사회로부터 하나의 온전한 인격, 온전히 살아있는 사람으로 대우받지 못한다.
삶의 희망을 잃고 죽음을 바라는 프레데릭 또한 마찬가지다. 그는 전쟁터에서부터 사회적 죽음을 경험했다. 전쟁에서 병사는 더 이상 사람이 아니다. 총알이나 포탄과 다름없이 소모되는 물건일 뿐이다. 프레데릭은 수년간 전쟁에 참전하며 소모품으로 강등된 삶을 견뎌야 했다. 심지어 얼굴에 큰 상처를 입고 말았다. 레오니의 경우처럼, 타인의 눈에 띄는 상처나 장애를 지닌 존재는 사회로부터 손쉽게 배제된다.
더구나 얼굴은 타인과 마주할 때 가장 먼저, 또 가장 많이 노출되는 부위다. 그래서 한 사람의 얼굴은 곧 그의 인격이다. 얼굴이 훼손되었다는 것은 그의 인격 또한 사회로부터 상당히 손상되고 부정당할 것이 자명한, 그러므로 이미 사회적으로 죽은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환대를 통한 구원

하지만 우리는 환대를 통해 서로를 사람으로 인정할 수 있다. 레오니와 프레데릭은 상대를 사람으로 인정하고 환대함으로써 서로를 구원한다.
레오니는 프레데릭에게 묻는다. “이름이 뭔가요? 당신의 이름.” 어떤 존재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사회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어야 한다. 그러므로 레오니가 프레데릭의 이름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다시 한번 이름을 묻는 행위는, 그를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는 환대의 제스처다. 이어서 그녀는 그에게 고향은 어디고, 나이는 몇이냐며 프레데릭의 삶에 관심을 보인다. 처음 만난 두 ‘사람’이 서로에게 묻는 안부 인사처럼 편하게 말해보라고 다독이며.
이후 프레데릭은 자신이 받은 환대를 레오니에게 그대로 돌려준다. 스튜디오가 문 닫을 위기에 놓여 절망하는 레오니에게 그는 묻는다. “이름이 뭔가요?” 또다시 기회를 잃고 사회로부터 배제될 위기에 처한 레오니의 이름을 물으며 그녀의 존재를 확인해준다. 동시에 진심 어린 관심을 건넨다. “당신은 어떤가요? 무슨 생각하나요? 당신이 정말 마음 깊은 속에서 털어놓고 싶은 것.” 누군가의 내면을 궁금해하는 것은 그를 온전한 인격체로서 존중하는 따뜻한 우호의 표현이다. 더 나아가 그는 레오니가 사회 안에 자신의 자리를 가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돕는다. 마담 래드의 송별회 당일, 직접 연설을 하여 후원자를 모을 수 있게 도운 것이다.
프레데릭은 레오니가 만들어 준 가면을 쓰고 사람들 앞에 나서고, 고향으로 돌아가 약혼녀 르네의 앞에 서기로 결심한다. 레오니 또한 프레데릭의 제안에 따라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전한다. 결국 그녀는 후원을 받아 스튜디오를 계속 운영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두 사람은 서로의 이름을 묻고, 목소리를 낼 기회를 주며, 사회 안에 설 자리를 마련해준다. 상대의 사람다움을 인정하는 작은 환대의 몸짓으로 마침내 서로를 치유하고 살려낸다.
르 마스크, the person
어쩌면 이 작품은 제목에서부터 사람을 강조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라틴어로 사람을 뜻하는 페르소나(persona)가 원래 가면을 의미하는 단어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르 마스크〉라는 제목을 ‘사람’으로 바꾸어 읽어도 되지 않을까. 사람답지 못한 삶을 살아가던 레오니와 프레데릭이 가면을 통해 서로를 사람으로 만들어가는 이야기라고.
뮤지컬 〈르 마스크〉는 두 인물이 사람다움을 회복해가는 과정을 진솔한 캐릭터와 잔잔하지만 개연성 있는 플롯, 대중적이고 아름다운 멜로디의 넘버로 설득력있게 풀어낸다. 메시지와 더불어 뮤지컬만이 가지고 있는 장르적 재미를 완성도 있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뮤지컬만의 매력과 환대를 통해 서로를 구원하는 서사를 만나고 싶다면, 올가을 뮤지컬 〈르 마스크〉가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뮤지컬 〈르 마스크〉는 11월 9일까지 et theatre 1(이티씨어터 원)에서 공연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