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피곤하지 않아도 시간이 늦었으니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는 걸 언제쯤 어른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내 컨디션을 관리하기 위해, 그렇게 관리한 컨디션으로 다음 날의 일정과 숱한 책임들을 무리 없이 소화해내기 위해... 합당한 이유야 많지만 영 마음에 와닿지가 않는다.
몇 가지 단위로 뚝뚝 끊긴 시간에 나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몸의 반응과 해의 움직임 따위에 따라 생활하고 싶다는 소망을 언제나 마음 한구석에 품고 있다. 소박하지만 참 게으른 바람이다. 뜬구름 잡는 소리 그만하라는 타박이나 듣기 쉽다는 걸 알고 있지만 딱 떨어지는 개념들이 안겨주는 효율보다 압박감이 더욱 강하게 느껴지는 날들이 있다.
억지로 침대에 누워 잠에 들기 직전까지, 그 무료한 시간 동안 몰려드는 생각만큼 고통스러운 것이 있을까? 온갖 잡념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과 그럼에도 이어지는 삶의 끈질김에 대한 원초적 공포. 그리고 이런 쓸데없는 생각 때문에 잠에 드는 시간이 늦어질수록, 내일의 나만 고통스러울 뿐이라는 경험적 불안.
이 때문에 밤을 꼴딱 새울 만큼 예민 떠는 성격은 또 아니어서, 한두 시간 정도 스스로를 고문하다 보면 어느덧 해가 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런 불유쾌한 경험이 쌓일수록 기운이 덜 빠진 채로 눕는 일을 꺼리게 된다. 몸이 피곤을 못 이길 때까지 도파민에 뇌를 절이고, 기절하듯 잠에 들어야 한다는 약간의 강박도 생겼다(사실 꽤 예전부터다).
그 강박이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지는 못한다. 소설을 읽거나, 드라마 시리즈 같은 걸 보면서 잠드는 날은 그나마 양반이다. 더 이상 그 어떤 자극도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지만, 몸은 아직 지치지 않았을 때 할 수 있는 건 대부분 말 그대로 '킬링 타임' 뿐이다. 과일 모양 유리를 자르는 영상을 무의미하게 들여다보거나, 수백 번도 더 들어서 거의 척수반사 수준으로 반응하는 노래만 듣거나, 하는 식이다. 물론 그 중 최악은 이마저도 할 수 없어서 몰려오는 생각에 무력하게 휩쓸리는 것이다.
이런 잡념들을 껴안고 살 만큼의 여유가 남아 있어서다, 아직 고생을 덜해서 그렇다는 말도 가끔 듣는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일부러 뇌를 잡다한 컨텐츠에 절여놓을 필요도 없이, 플러그 뽑듯 잠들 정도로 열심히 무언가를 한 날은 확실히 생각이 둔하다. 일단 일차적인 욕구 충족이 긴급해져서인지, 성취감이 잡념을 지긋이 눌러주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둘 다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분주히 지내다가도 한번씩 숨을 돌릴 수 있는 날이 오면 그동안 미뤄왔던 생각이 어김없이 밀려온다. 이럴 땐 약간의 허탈감까지 덧붙는다. 내가 나인 이상, 어떻게 해도 이런 생각이나 감정들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는 사실이 선명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가끔은 억울하기도 하다. 내가 좀 더 무던했다면, 삶의 과업에 대해 조금 더 의미를 느끼고 의욕적일 수 있었다면, 하는 숱한 가정을 떠올리곤 한다.
소풍날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기대감에 가득찬 매일을 바라진 않는다. 그런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물론이고, 내가 품은 굴곡이 언젠가 나의 깊이가 될 수 있으려면 약간의 그늘진 날도 필요하다는 걸 이제는 안다. 그저 조금 덜 억지스럽게 생활하고, 내일의 해를 조금 더 기꺼이 맞이할 수 있었으면 할 뿐이다. 그게 왜 이렇게 어려운 건지.
내가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 바꿔서 좋아질 수 있는 것과 그럼에도 여전할 수밖에 없는 것. 이 모든 것들 사이에서 고민하던 밤들이 저 바람을 실현하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을까. 막연히 바라며 당장의 한 걸음을 걷는 것만이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