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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테아트룸 문디(theatrum mundi)’. ‘세상은 연극 무대’라는 뜻의 라틴어다. 연극에서 자신이 맡은 역할을 연기하는 배우를 생각해 보자. 그 누구보다도 자신감 있는 태도로 대사를 읊고, 시선 처리를 하지 않을까. 이탈리아 국립 카포디몬테 미술관 19세기 컬렉션 展에서 접했던 19세기 나폴리의 여성들은 모두 훌륭한 배우들이었다.


카포디몬테 미술관은 이탈리아 남부 최대 규모의 국립 미술관이다. 나폴리 시내와 해안을 조망할 수 있는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으며, 1957년 정식 개관 이후 르네상스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이탈리아 및 유럽 미술의 흐름을 포괄하는 소장품을 바탕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카포디몬테 미술관이 소장한 19세기 회화 컬렉션을 아시아권 최초로 공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19세기 회화에서 여성은 어떻게 묘사되었을까. 18세기 회화 속 여성이 귀족과 평민으로 구분되어 묘사되었던 것과는 달리, 변화한 여성의 모습이 다양하게 조명됐다. 귀족, 평민, 그리고 중산층 여성의 자신감 넘치고 당당한 모습이 그려졌다. 당시 이탈리아 사회는 군주제에서 이탈리아 통일(1861)로 이어지는 역사 전환기, 산업화와 도시화의 물결을 맞이하고 있었다. 이때 ‘중산층 사회’가 등장하며 회화 속 여성의 사회적 모습을 등장시켰다. 이들은 새로운 사회 규범과 이상적 여성상을 제시했고, 이탈리아 화가들은 중산층 여성을 그림에 담아냈다. 아르만도 스파디니의 <소녀와 고양이>, 안토니오 만치니가 그린 <부채를 든 여인의 초상>이 그 예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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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세페 나바라, <마리아 크리스티나 디 사보이아의 초상>, 1835, 캔버스에 유채, 78x65cm

 

 

전시는 귀족 여성들의 초상화로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주세페 나바라의 <마리아 크리스티나 디 사보이아의 초상>은 당시 양시칠리아 왕국의 왕비를 묘사한 작품으로, 눈빛에서 드러나는 차분한 품격과 당당한 시선이 돋보였다. 작품 설명문에 따르면 다이아몬드 왕관, 레이스 베일, 섬세한 세공의 장신구는 1830년대 귀족 복식의 특징을 보여준다고 한다. 조반니 볼디니가 그린 <마르시코노보 공작부인의 초상> 또한 상당히 귀족적이다. 하이넥 블라우스와 단정하게 틀어 올린 머리에서 절제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당당함’은 귀족만의 소유가 아니었다. 좋은 소재의 드레스나 고가의 장신구는 입는 사람의 품격을 더하지만, 품격은 옷차림으로만 완성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사람의 아우라가 완성한다. 이 아우라는 계층을 가리지 않는다. 제인 벤함 헤이의 <농민 여성>에서 작품 속 여성은 짙은 눈썹과 강인한 눈빛이 기억에 남았다. 흑갈색 곱슬머리를 감싼 머릿수건, 크로셰(손뜨개질로 만든 니트) 소재 블라우스 등은 귀족 여성들의 화려한 옷차림과는 달랐지만, 왕비의 초상만큼이나 품위가 있었다. 필리포<목초지의 목동 소녀>는 서민들의 일상을 담았다. 소녀가 염소 옆에 서서 한 손에는 낫을, 다른 한 손에는 풀 무더기를 들고 서 있다. 발그레한 두 볼과 살짝 올라간 입꼬리는 평화로움을 주는 듯하다. 소녀가 입은 붉은색 치마와 초록색 풀의 색상 대조는 감각적이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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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만도 스파디니, <소녀와 고양이>, 1910-1925, 캔버스에 유채, 60x45cm

 

 

중산층 여성들의 생활상도 인상적이다. <소녀와 고양이>는 중산층의 이상적인 일상을 포착한 작품으로, 하늘색 드레스를 입은 소녀가 고양이를 안고 조용히 앉아 있는 모습이 평화롭다. 소녀의 품에 안긴 고양이는 가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신흥 사회’ 구성원들이 추구하던 삶의 모습을 짐작해 볼 수 있었다. 반려동물과의 교감, 화목한 삶, 그리고 경제적 여유. 조반니 볼디니의 <공원 산책>에서도 강아지들을 산책시키는 여인이 등장한다. 모피 케이프를 걸치고 어디론가 걸어가는 모습이 우아하다. 초겨울 찬바람에 흩날리는 갈색 드레스와 낙엽이 계절 특유의 분위기를 보여주는 듯했다.

 

하지만 중산층 여성들의 모습이 꼭 평온하게만 그려지지는 않았다. 도메니코 인두노의 <편지>에서 한 여인이 편지를 손에 쥔 채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한눈에 보더라도 비극적인 일임을 알 수 있을 정도로 표정이 굳어 있다. 작품 설명에 따르면, 이탈리아 통일 과정에 참여했던 중산층은 가정의 삶과 가치를 희생했다고 한다. 당시 예술가들은 이들이 희생했던 가치를 회복하고자 했고, 인두노 또한 <편지>에서 그러한 인식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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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첸초 카프릴레, <해변에서>, 19~20세기, 캔버스에 유채, 48x66cm

 

 

세상이 연극 무대라면, 19세기 그녀들이 거닐었던 나폴리 또한 아름다운 삶의 무대다. 밝은 색채와 관찰에 기반한 사실적인 표현, 빠르고 생동감 있는 붓놀림으로 표현된 나폴리는 유난히 찬란했다. 빈첸초 카프릴레의 <해변에서>는 어느 여름날의 해변을 만끽하는 사람들을 묘사하고 있는데, 이들을 보고서 나폴리 해변으로 놀러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에서 느껴지는 생기와 따사로움에 작품을 오랫동안 쳐다봤다. 빈첸초 밀리아로의 <야외 트라토리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882년 콜레라 이후 도시 재개발로 급변하던 나폴리의 민중과 골목, 시장, 광장의 풍경을 담아냈다. 당시 공동체적 삶의 따뜻함이 드러나는 듯했다.


이번 전시를 보고 온 소감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벨라 피구라”(bella figura)다. 이탈리아어로 ‘아름다운 모습’이라는 뜻으로, 각계각층 여성들이 지닌 아름다움과 나폴리의 자연환경이 정교한 화풍으로 묘사되었기 때문이다. 전시에서 마주한 인물과 풍경, 남쪽 햇살 아래 반짝이는 바다는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그리움을 자아냈고, 그리움은 실제로도 낯설지는 않은 정서였다. 풍경은 달라도 이탈리아와 한국은 미의식을 삶에서 추구하는 태도, 공동체적 삶의 정서 등 비슷한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전시는 11월 30일까지 마이아트뮤지엄에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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