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상에서 완전한 존재로 살아가는 데 익숙하다. 걷기에 불편함이 없는 두 다리가 있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마주할 수 있는 두 눈이 있다. 세상에 널리 퍼져 있는 익숙한 얼굴과 모습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불완전한 상태'로 규정하고, 그들에게서 완전한 존재로 살아갈 수 있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적 삶의 권리를 빼앗는다.
사회는 주류에 속한 사람들이 규정한 '완전함'을 중심으로 조각되어 있다. 차별과 편견 속에 소외된 이들은 스스로를 불완전하다고 낙인찍고 인정받기 위해 애쓴다. 혹은 삶의 의지를 잃고, 과거에 꿈꾸던 삶을 그리워하며 상실의 감정 속에 무너져간다.
1918년 말, 1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국인 조각가 '안나 콜먼 레드'는 얼굴이 훼손된 군인들을 위한 '초상 가면 스튜디오'를 운영했다. '주류의 지위에서 누리던 과거의 조각을 찾아주는 행위'가 곧 세상을 치유할 수 있을 거라는 믿는 주류적 시각에서 마련된 공간이었다. 뮤지컬 '르 마스크'는 실제 존재했던 이 공간을 무대 위로 새롭게 불러왔다.
현대적 무대로 재현된 '초상 가면 스튜디오'는 당대 또다른 구조적 폭력이 이루어지던 공간에서 연대의 공간으로 탈바꿈하여 진정한 치유의 공간으로 나아간다.
뮤지컬 '르 마스크' 속 '초상 가면 스튜디오'에서는 소외된 위치에 있는 두 인물이 만난다.
'레오니'는 어린 시절부터 소아마비 때문에 불편한 다리를 가지고 살아간다. 조각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좀처럼 기회가 없었던 그녀에게 '프레데릭'의 가면을 작업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 '레오니'는 '절음발이 레오니'에서 벗어나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가면 작업을 최대한 성공적으로 마치고 싶어 한다.
'프레데릭'은 얼굴에 큰 부상을 입고 전쟁 후유증을 겪고 있는 군인이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약혼자 '르네'에게 건네지 못한 청혼 편지를 품고 희망 없는 하루하루를 보낸다. ‘레오니’는 가면 작업에 대한 열정으로 최선을 다해 ‘프레데릭’이 삶의 의지를 되찾을 수 있도록 돕는다.
그 과정에서 주류에서 소외되고 불완전한 존재로 규정된 둘은 의도치 않은 연대를 형성한다. 불완전하다는 감각을 공유하는 사람들은 더 이상 불완전한 상태를 불편하게 느끼지 않는다. 세상의 편견을 넘어서, 이면에 있는 인간으로서의 완전한 생명을 느낀다.
처음 만난 두 사람의 안부 인사처럼, ‘레오니’는 ‘프레데릭’에게 묻는다. "이름이 뭔가요? 나이는? 좋아하는 장소나 취미는? 좋아하는 책에 대해서 얘기해봐요."(넘버 M5. '편하게 말해봐요')
‘초상 가면 스튜디오’가 닫힐 위기에 처하고, ‘레오니’가 완전한 존재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를 잃었다고 절망할 때, ‘프레드릭’은 ‘레오니’가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되묻는다. "이름이 뭔가요? ‘제인 오스틴’의 책에 대해 얘기해볼까요?"(넘버 M12. '편하게 말해봐요 (Rep.)')
인간은 무엇일까? 삶의 의미는 어디에 있을까? 삶과 죽음이 초단위로 교차하는 전쟁이라는 혼돈의 공간 속에서 중요한 것은 ‘일단은 살아 있다’는 것이다. 이를 깨달았을 때, 삶에 대한 희망과 의지는 꽃처럼 피어난다.
뮤지컬 '르 마스크'는 et theatre 1(구 눈빛극장)에서 오는 11월 19일까지 공연할 예정이다. 극을 이끌어가는 '레오니' 역에는 박란주, 홍지희, 나하나, 이지수 배우가, 전쟁 후유증을 겪는 군인 '프레데릭' 역에는 이창용, 현석준, 임정모, 임진섭 배우가 캐스팅되었다. 실력파 배우들의 합류로 높은 난이도의 넘버와 연기 실력을 요구하는 극임에도 무대 완성도는 기대할 만하다.
넘버의 다이나믹이나 전반적인 디자인도 괜찮은 편이다. 창작진의 고민이 녹아든 서사 구조는 개연성이 있어 창작 초연임에도 완성도가 높다. 다만 전반적으로 지나치게 잔잔하고 희극적인 분위기 탓에 관객들을 사로잡을 요소가 부족하다. 최근 가벼운 마음으로 극장을 찾는 관객층이 늘었다 해도, 다관람 관객층을 형성하기 어려운 이런 '잔잔힐링극'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다소 의문이다.
제작에 참여한 이모셔널 씨어터가 추구하는 극의 방향성은 분명해보인다. 완성도 높은 무대를 꾸준히 선보인다면 충실한 마니아층을 확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레오니와 프레데릭 사이의 러브라인을 만들거나, 프레데릭이 르네에게 외면당하는 장면을 비극적으로 극대화하는 식의 자극적인 장면이 조금은 더해졌다면 어땠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