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루에 기본적으로 커피 한 잔을 꼭 마시곤 한다. 심한 감기에 걸리지 않은 이상, 한겨울에도 특히 아이스 카페 라떼를 마신다. 그런데 이때 커피에 가하는 나만의 의식(?)이 있다. 그것은 바로 설탕 시럽 한 펌프를 커피에 넣는 것이다. 이때 시럽을 넣는 이 행위가 결코 달달한 커피를 마시기 위함은 아니라는 점을 미리 밝혀두고자 한다. 누군가는 두 펌프도 아니고 한 펌프를 커피에 넣어 마시는 것은 단맛도 쓴맛도 느낄 수 없는 애매모호한 맛만 느껴질 뿐이라고 지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시럽 한 펌프를 넣었을 때 단맛과 쓴맛이 중화되는 것을 오히려 즐긴다.
현대인에게, 그것도 한국의 현대인에게 모두 해당되는 말일 수도 있겠으나, 점심을 먹고 커피를 사러 갈때면 주위 사람들에게 내가 우스갯소리로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나는 한국에 커피가 수입되기 전에, 그리고 얼음이 대중들에게 보급되기 이전 시대에 태어났다면 정말 불행했을 거야. 어쩌면 커피를 대체할 식품을 개발하고 있었을지도?"
오늘 다루는 책에서는 전 세계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아온 설탕이 생산 및 보급되어 온 역사 전반을 다룬다. 그러나 설탕 산업의 역사는 후추나 커피 같은 향신료 혹은 기호 식품의 생산 및 보급의 역사와도 궤를 같이 한다. 따라서 사탕수수에서 추출 해낸 것인 설탕이 생산되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어온 이러한 역사는 단지 지리적 조건만을 다룬다고 해서 전부 설명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오히려 서양 열강의 식민적 욕망이 좇아온 궤적과 깊게 연관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그렇다면 설탕 산업은 그와 관련하여 어떠한 궤적을 그리며 발전되었는가? 이에 대해 저자 최광용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즉, 설탕 산업은 비서양권 나라에 식민지 정책을 통해 그것을 대규모로 재배하여 수익을 내려는 서양 열강의 욕망에서 비롯되어 확장되었다는 것이다.
현재 세계 최대의 설탕 생산국은 브라질이다. 설탕은 사탕수수라는 작물을 재배하여 가공을 거친 후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이때 사탕수수는 과연 브라질에서 자생하는 품종일까? 그렇지 않다. 저자에 따르면, 사탕수수 경작이 최초로 시작된 곳은 기원전 8000년경 태평양의 뉴기니섬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여기서 저자가 방점을 찍는 것은 '최초의 경작 시기'에 있기 보다, 오히려 설탕이 하나의 거대한 생산 시스템에 의해 본격적으로 생산된 계기가 무엇인지에 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대답한다. 즉, 15세기 무렵 대항해시대(라고 부르고 식민지 개척의 시대라 일컬어지는)의 문을 연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정확히는 콜럼버스와 바스쿠 다 가마가 대서양 신대륙에서 재배되고 있는 사탕수수 품종을 가져와 각자 히스파니올라섬과 마데이라제도에서 사탕수수를 대거 재배한 것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먼저 히스파니올라섬에 대해서 말하자면, 이곳은 콜럼버스가 식민지라 선포하면서 처음으로 사탕수수를 심었던 곳이다. 그렇기에 이곳은 본래 스페인령이었다. 그러나 스페인 세력이 점차 약화되자, 프랑스가 서쪽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땅을 '생도맹그'라 명하면서 점령하게 된다. 프랑스령이었던 생도맹그는 지금의 아이티 공화국이 되었고, 스페인령이었던 나머지 땅이 지금의 도미니카 공화국이 되었다. 그러나 당시 스페인은 생도맹그 땅을 이용해 농업을 본격적으로 발전시켰던 프랑스와 달리, 자신들이 점령한 식민지 땅에 금, 은이 있는지를 찾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었기에, 사탕수수 산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지는 않았다.
한편 이슬람 세력이 이미 지중해 여러 섬에서 사탕수수를 재배하여 사업의 큰 수익을 내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포르투갈은 그 작물을 사들여 마데이라섬에 심었고, 그 작업은 큰 성공을 거둔다. 그런데 이때, 사탕수수 산업의 흥망성쇠를 정하는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노동력'이었다. 따라서 포르투갈 자본가들은 아프리카로부터 노예를 값싼 가격에 수입함으로써 이윤을 낼 방안을 찾게 된다.
노예를 들여와 인력을 마련하고 사업에 계속 착수하던 포르투갈은 반세기가 지난 어느 날, 페드루 알바레스 카브랄의 지휘 아래 브라질이라는 영토를 발견하여 그곳에 총독부를 설치해 식민 통치를 하기 시작했다. 이미 경험이 있었던 포르투갈 자본가들은 광활한 영토를 가진 브라질로 눈을 돌려 그곳에 본격적으로 사탕수수 재배를 위한 자금을 댔다. 여기다 스페인과 연합해 브라질에서 금광을 찾던 포르투갈이 마침내 금광을 발견하게 되면서, 브라질 내에서의 여러 제반 사업들도 모두 성행하고 이에 따르는 유입 인구 역시 급격하게 늘게 된다. 그러자 더 이상 흑인 노예를 들여와서 노동력을 확보하는 것에도 한계가 생기게 되는데, 이에 포르투갈 정부는 브라질 내륙의 원주민들까지도 노동력으로 확보하기도 했다.
다른 한편, 시간이 흐르면서 설탕 생산의 중심지는 쿠바로 이동하게 된다. 그런데 쿠바는 1511년부터 1898년까지 무려 380여 년에 걸쳐 스페인에게 지배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스페인은 금광만을 찾았기에, 이 섬을 관리 및 중계하는 거점으로만 활용하고 있었다. 그러다 1791년 프랑스령의 생도맹그에서 흑인 노예 반란이 일어나면서, 프랑스의 플랜테이션 농장주들이 북미의 프랑스령 루이지애나와 쿠바로 도피하게 된다. 이때 비단 농장주뿐만 아니라 생산장비, 아프리카 노예 인력, 기술자들 역시 함께 이동되었다. 더군다나 쿠바의 땅은 비옥하면서도 적절한 강우량으로 인해 사탕수수를 생산하는 데 최적의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따라 쿠바에서의 설탕 산업은 급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세월이 또 지나 쿠바 내에서도 독립을 향한 열망이 커지게 되는 시점에 다다랐을 때, 미국의 선박 메인호가 스페인령의 아바나항에서 폭발해 미국인이 300여 명 가까이 사망한 사건으로 인해 미국과 스페인 간의 미서전쟁이 일어나게 된다. 이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둔 미국은 스페인령의 영토를 모두 차지함으로써 단숨에 세계 최강국의 자리에 오른다. 이에 따라 원래 미국 땅이 아니었던 북아메리가 남부 일대가 하나둘씩 미국령으로 편입되면서, 이제는 미국이 주요 설탕 생산국으로 위치하고야 만다.
이 기나긴 역사를 접한 후, 설탕 플랜테이션의 주요 생산지가 변화되어온 궤적과 세계사에서 비서양권 나라들을 식민 지배했던 서양 열강 나라가 변화되어온 궤적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설탕 생산이 지닌 변화의 궤적과 15세기부터 시작된 제국주의를 향한 서양 열강이 지녔던 식민적 욕망의 궤적이 비슷한 모양으로 변화되어 온 것 같다고 말이다. 그런데 마지막 챕터에서, 저자는 이 지난한 설탕 산업 역사의 궤적에 한국 역시 관련이 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이 책을 마친다.
그렇다면 설탕 산업의 궤적과 한국과는 어떠한 관련이 있는가? 한국은 바로 미국 사람이 설탕 생산 회사를 창립한 하와이에 인력으로 투입된 역사와 관련이 있다. 당시는 서양 대부분의 나라에서 노예 제도가 폐지되었기에, 더 이상 흑인 노예를 인력으로 쓸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하와이 농장주들은 더 값싼 노동력 조달을 위해 아시아로 눈을 돌렸다. 한국인도 고종 당시에 동원되었는데, 노예제가 폐지되었음에도 한인 노동자들은 인권을 무시 받은 채 혹독한 노동에 시달렸다고 한다.
설탕에 얽힌 이 지난한 지배와 식민의 역사를 알게 된 이후로, 커피와 설탕 시럽을 손쉽게 먹을 수 있는 지금 시대의 모습에서 혹독한 노동에 시달린 아프리카 노예와 브라질 원주민들 그리고 이후의 아시아 노동자들의 고됨이 고스란히 느껴져 숙연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필자가 이 책에 대해 설명한 부분은 지극히 압축된 내용에 불과하므로, 여기서 다루지 않은 흑인 노예 공동체 마룬(Maroons)과 그러한 수탈의 역사에도 아메리카에 세워진 최초의 흑인 공화국인 아이티 공화국의 건국 역사를 들여다보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 보기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