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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 표지.jpg

 

 

지난 9일에 클래식 공연을 보고 왔다. 푸르지오 아트홀에서 열린 작곡가이자 음악감독인 안성균의 < IMMERSION 몰입 >이다. 클래식 공연을 직접 보러 간 것은 몇 되지 않아 어색했는데, 신비롭게 생긴 우주복 그림의 포스터가 나의 관심을 끌어 가게 되었다.

 

< IMMERSION 몰입 >은 보통 클래식 공연이 아니다. 클래식 트리오(피아노·바이올린·첼로)에 신디사이저가 더해진,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조합의 공연이다. 신디사이저라는 악기를 이번 공연을 통해 처음 알았다. 인터넷에 신디사이저를 검색하면 디지털 피아노처럼 생긴 것의 사진이 나온다. 사전에 따르면 '소리를 전자적으로 발생시키고 변경시키는 전자악기. 전기적 장치를 이용하여 리듬과 음색을 자유로이 조절할 수 있다. 작곡과 연주에 두루 쓰인다.'고 한다. 얼핏 보면 디지털 피아노 같기도 한데, 신디사이저는 새로운 음을 내고 무한한 음을 구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신디사이저는 작곡에 더욱 용이한 피아노다. 이러한 특징은 공연에서 보여준 곡에서 여실히 체감할 수 있었다.

 

공연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 3중주 1번(Piano Trio No.1 in c minor, Op. 8)’을 연주하며 시작을 알렸다. 피아노 3중주라는 이름대로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로써 무대를 구성했다. 피아노 3중주라고 한다면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멘델스존 등 유명한 작곡가의 작품이 많지만 그들 중 쇼스타코비치의 곡을 선택한 것은 안성균이 쇼스타코비치를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 3중주 1번은 부드럽고 아름답게 시작하지만 귀여운 멜로디를 지나 분위기가 급변한다. 피아노는 강하게 건반을 누르고, 바이올린이 활을 움직이는 속도는 현란해지고, 첼로는 활이 아닌 손으로 연주하며 튕기는 듯한 소리를 낸다. 극적으로 진행되는 연주에 청중은 정신을 빼앗겨 일제히 무대에 집중했다.

 

 

 

 

쇼스타코비치 곡 연주 후에는 안성균이 작곡한 곡들이 신디사이저와 함께 어우러져 연주되었다. ‘Piano Trio No.1 in c minor, Op. 7’과 ‘IMMERSION 몰입’. 두 가지 다 이번 무대가 초연이다.

 

 

 

지나간 시절을 돌아보며


 

‘Piano Trio No.1 in c minor, Op. 7’은 8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곡 하나하나에 안성균만의 서사를 담았다.


 

Piano Trio No. 1 in c minor, Op. 7 _with Synthesizer


Ⅰ. Non Allegro - 프롤로그


Ⅱ. Pesante - 섬 집 아기


Ⅲ. Allegro Assai - 아리랑은 사라졌다


Ⅳ. Rubato ad libitum - 할머니와 여섯 살 아이


Ⅴ. Tranquillamente - 일출과 일몰은 다르다


Ⅵ. Allegro - 피아노공기놀이


Ⅶ. Straziantemente - 바다의 지휘자


Ⅷ. Silence - 기억의 지배자

 

 

1악장에는 '어딘가 도전에 대한 어둡고 두려운 시작점, 인생의 무대를 열어젖힌다', 2악장에는 '아이가 기억하는 어머니의 부재와 그리움', 3악장에는 '전통과 현실 사이에서 느껴지는 상실과 혼란' 등과 같은 스토리가 담겨 있다. 곡 모두가 그 제목에 어울리게 작곡되어 있고, 신디사이저와의 조합이 새로워서 감상하기 좋았다. 다른 악장도 모두 스토리가 있는데, 이는 안성균의 어렸을 때 경험을 바탕으로 했다.

 

4악장 할머니와 여섯 살 아이는 이름처럼 잔잔하고 포근했다. 다른 음악 중에 강렬한 것이 있는 것과는 차이가 있는 악장이었다. 무대 배경은 조명을 통해 노랗게 만들었는데, 이는 악장 주제와 어우러져 곡을 더 감각적으로 감상할 수 있게 해 주었다.

 

8악정 기억의 지배자는 다른 악장에 비해 짧다는 느낌이 들었다. (각 악장마다 시간을 체크한 것이 아니라 정확한 것은 아니다.) 마지막 악장이니만큼 개인적으로 들었던 아쉬움일 수도, 실제로 빠르게 끝낸 것일 수도 있을 듯하다. 8악장 끝에서 피아노가 건반을 길고 느리게 누른 것은 괜한 아쉬움이 남기며 여운을 형성했다. 연주하는 곡마다 작곡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그림이 그려지는 게 신기했다.

 

8악장까지 무대를 선보인 이후에는 작곡가가 연주자들을 소개하고 공연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을 잠시 가졌다. 이 8악장의 작품은 'AI가 음악을 작곡하고, 클래식의 심장조차 알고리즘으로 재현되는 시대에 '한 사람의 이야기는 어디에 존재할 수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물으며 시작'되었다고 한다. 사람이 하던 일들을 AI가 대체하고, 사람만이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예술적이고 감성적인 부분까지 해내는 AI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한 것으로 보인다. 안성균이 작곡한 ‘Piano Trio No.1 in c minor, Op. 7’은 그의 고민처럼 한 사람의 이야기는 어디에 존재할 수 있는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은 어떻게 사람다워질 수 있는가, 사람의 이야기는 어떻게 지속될 수 있는가로 이어질 가능성 또한 보여준다.

 

 

 

IMMERSION 몰입


 

'IMMERSION 몰입'은 몰입하는 상태에 대해 이야기하며 설명되었다. 오직 그 순간에만 존재하게 되는 깊은 집중의 상태. 좋아하는 책을 읽을 때, 게임에 몰두할 때, 혹은 음악을 들을 때 시간이 흐르는 것도 잊은 채 빼져드는 그 감각의 상태. 안성균은 그 심리적 현상을 소리로 구현했다고 했다. ‘Piano Trio No.1 in c minor, Op. 7’과는 비교도 안 되게 웅장하고 거셌는데, 몰입한 상태에서 무엇인가에 자극받은 뇌의 모습을 소리로 표현하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었다. 청각적인 감상으로 끝나지 않고, 그것은 관객에게 가서 각자의 이미지로 재창조되었다. 청각에 국한되지 않는 감각적인 경험이었다.

 

안성균은 모스 부호에서 착안해 이 곡을 만들었다고 한다. 모스 부호 또한 몰입해야만 상대가 전하는 메시지를 올바르게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연결성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곡 속에도 모스 부호 신호를 보내는 듯 두드리는 소리, 길게 누른 소리 등이 연이어 들렸다. 모스 부호를 아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었을까? 혹은 안성균은 곡 속 모스 부호에도 어떤 단어나 문장을 담았을까? 이스터에그처럼 완전히 상관없는 것일 수도, 주제에 맞게 '몰입'이라는 단어일 수도, 아무 의미 없이 형식미에 초점을 두었을지도 모른다. 다시 들을 수 있다면 좀 더 귀 기울이면서 적어 보고 싶다.

 

‘Piano Trio No.1 in c minor, Op. 7’과 'IMMERSION 몰입'에서 사용된 신디사이저는 참 신기했다. 악기로 구현하기 어려운 소리와 효과음을 내면서 무대를 장식했으며, 삐뽀삐뽀 소리나 노크하는 듯한 소리 따위는 악기로 낼 수 없었을 텐데 신디사이저로는 모두 가능했다. 덕분에 무대는 더욱 풍성하고 거대해졌다.

 

안성균의 이번 공연은 앞으로 클래식과 신디사이저가 어떻게 결합하고 어떤 조화를 이룰지 기대하게 만든다. 딱딱하고 교양 있는 사람들이 즐길 거라는 클래식의 편견을 깨고 보다 모던하고 친근한 색감을 더한 클래식의 무궁한 발전이 나를 즐겁게 한다. 전통적이고 보다 규칙을 따른 정통 클래식도 매력 있지만 이런 변화 또한 더 아름다운 곡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한 외국 작곡가는 신디사이저와 오케스트라를 조합한 공연을 이미 하고 있다고 한다. 신디사이저의 활용은 일반 악기 소리를 구현하면서 악기로 내지 못하는 소리까지 내는데, 오케스트라 안에서는 어떻게 사용될지 또한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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