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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를 보러가기 전, 매그넘 포토스를 처음 검색했을 때 생각보다 이 단체의 이름이 훨씬 묵직한 이름이라는 걸 알게 됐다. ‘세계 최고의 보도사진가 그룹’, ‘작가의 자율성과 저작권을 보장하기 위해 뭉친 협동조합’, ‘포토저널리즘의 역사 자체’라는 수식어들. 단지 유명 사진가들의 모임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던 매그넘이 전속 계약의 틀을 벗어나 자신의 시선과 목소리를 고수하려 했던 사진가들의 공동체였다는 걸 알게 되니, 그들의 작업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매그넘의 또 다른 얼굴을 《포토북 속의 매그넘 1943–2025》에서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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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는 1947년 창립된 매그넘 포토스 사진가들이 지난 80여 년간 제작해온 약 150권의 포토북을 통해, 사진을 어떻게 엮고 배열하며 시각적 서사를 구축해왔는지를 보여준다. 사진 그 자체보다는 사진을 엮어내는 방식을 담은 포토북에 무게를 둔 것이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커다란 사진 대신 테이블 위에 놓인 수백 권의 포토북들이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다. 처음엔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 포토북들은 단순히 사진을 모아둔 책이 아니라 사진가가 의도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하나의 작품이었다.

 

그동안 나는 포토북을 그냥 사진을 모아두는 아카이브 결과물이나 기록물 정도로 생각해왔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전시를 보고 나니 그건 너무 얕은 생각이었단 걸 알게 됐다. 매그넘 작가들의 포토북은 단순히 사진을 넘겨보는 게 아니라, 하나의 이야기를 '읽는' 작업에 더 가깝다. 누가 어떤 순간을 어떤 시선으로 보고 있었는지, 왜 그런 흐름으로 보여주려 했는지를 따라가는 일. 페이지를 넘길수록, 사진가의 생각 안으로 조금씩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포토북은 그저 사진을 담는 틀이 아니라, 하나의 서사와 구조를 가진 작품이었다.

 

여러 포토북 중 기억에 남았던 것은 팬데믹 시기에 발행된 '매그넘의 사진가들(Magnum Photographers)'이다. 매그넘 회원들의 공동 프로젝트로 탄생한 이 책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격변하는 2020년의 세계를 담았다. 각자의 방식으로 기록된 ‘고립된 일상’에는 도시의 텅 빈 거리, 창문 너머를 바라보는 사람들, 방호복 너머로 겨우 보이는 인간의 표정들이 담겨있었다.  그 이미지들은 세계 곳곳에서 개별적으로 촬영되었지만 같은 시기를 통과한 전 세계의 시선들을 한데 모은 기록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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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크리스티나 데 미델의 Afronauts는 전혀 다른 결의 충격이었다. 이 포토북은 1960년대 잠비아에서 실제로 추진되었던 ‘우주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한다. 독립을 막 이룬 한 나라가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 아프리카 최초의 우주인을 달에 보내겠다고 선언했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데 미델이 이 이야기를 기록하는 방식은 더더욱 놀라웠다.

 

그녀는 실제 역사의 잔해 위에, 오직 사진 속에서만 가능한 상상을 덧입혔다. 장비라기엔 엉성한 헬멧, 수풀 속 훈련소, 어디론가 떠날 준비를 하는 인물들.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경계를 절묘하게 넘나들며, 존재하지 않은 미래를 그려냈다. 이건 실현되지 못한 꿈에 대한 시각적 재구성이자, ‘무엇이 가능했을 수도 있었는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현실을 기반으로 하되, 그보다 더 현실적인 상상을 펼쳐 보인 작업. 사진은 원래 ‘있는 그대로’를 담는다고 믿기 쉬운데, 이 포토북은 오히려 ‘있을 수도 있었던’ 세계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그 초현실적이고도 구체적인 이미지들 앞에서 나는 상상이 기록보다 더 강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현실의 조각 위에 불가능한 꿈을 쌓아올린 기록. 오직 사진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었던 우주 프로그램의 재현. 크리스티나 데 미델의 사진은 단지 상상력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상상조차 쉽지 않았던 시대와 장소에 ‘가능성’까지 입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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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을 나서기 전, 리딩룸에 잠깐 머물며 몇 권의 포토북을 더 펼쳐봤다. 천천히 책장을 넘기며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를 지나갈 때, 그 사이의 정적마저 하나의 과정처럼 느껴졌다. 어떤 장면에서는 숨이 잠시 멎고, 어떤 페이지에서는 다음 장을 넘기기가 망설여졌다. 그렇게 한 권의 책 안에서, 한 사람의 시선과 호흡을 따라가는 경험을 통해 포토북이 단순한 기록물이 아니라는 걸 다시 느꼈다.


《포토북 속의 매그넘 1943–2025》은 결국 사진이 어디까지 말을 걸 수 있는지를 묻는 전시다. 카메라가 붙잡은 현실의 조각과, 그 현실을 넘어서는 상상의 장면들. 그 사이 어딘가에 포토북이라는 서사의 형식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 전시는 매그넘이라는 이름이 가진 저널리즘적 무게와, 동시에 그 안에서 꿈꾸고 상상해온 시선들을 함께 보여준다. 전시를 보고 난 지금, 나는 포토북을 더 이상 '사진을 담은 책'으로는 읽을 수 없을 것 같다. 그것은 분명,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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