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사진미술관의 본관이 삼청동으로 이전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언젠가는 꼭 가봐야겠다는 마음이 있었다. 국내 최초의 사진 전문 미술관이자 개관 20주년을 맞아 새롭게 문을 연 ‘뮤지엄 한미’. 그 이름부터 어딘가 단단하고 차분한 느낌이 들어 처음 가보는 날엔 괜히 설레기까지 했다. 익숙한 삼청동의 골목을 지나 언덕 끝에 다다랐을 때, 도심과는 살짝 분리된 듯한 조용한 공기와 절제된 건축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바깥의 소란과는 다른 밀도의 시간이 이곳에서 흐르고 있다는 예감이 들었다.

‘포토북 속의 매그넘 1943–2025’는 뮤지엄 한미 삼청본관의 현재를 가장 잘 드러내는 전시였다. 단지 ‘사진을 보여주는’ 전시가 아닌, 사진이 어떻게 역사가 되고, 어떻게 한 권의 책이 되어 시각적 서사로 확장되는지를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짜인 구성은 인상적이었다. 매그넘 포토스는 1947년 로버트 카파,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데이비드 사이무어, 조지 로저가 파리에서 창립한 사진가 협동조합이다. 그들의 사진은 세계 곳곳의 현실을 포착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과 질문을 담아왔다. 이번 전시는 그들이 약 80년간 만들어온 포토북 150권을 중심으로, ‘사진이 책이 되는 순간’에 담긴 철학과 태도를 꿰뚫는다.
전시 초입부에 마련된 리딩룸은 이 전시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를 단박에 보여주는 공간이다. 관람객은 포토북을 직접 펼쳐볼 수 있는데, 그것이 단지 사진을 모아둔 인쇄물이 아니라, 작가의 사유가 시각 언어로 엮인 일종의 전시장이자 문서라는 것을 체감하게 된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새로운 장소, 다른 시선, 익숙하지 않은 감정들이 등장한다. 스튜어트 프랭클린의 ‘Hotel Afrique’는 특히 인상 깊었다. 아프리카를 ‘빈곤’과 ‘분쟁’이라는 단어로만 바라보는 통념을 깨는 이 포토북은, 고급 호텔이라는 공간을 통해 아프리카의 근대성과 국제적 생동감을 담담하게 비춘다. 낯설지 않은 현대적 이미지 속에서 낡은 인식을 깨뜨리는 그의 시선은, 사진이 사회적 인식을 어떻게 전복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Part 2 ‘시대 속의 매그넘’에서는 전쟁과 재난, 혁명과 테러처럼 시대를 가른 사건들이 등장한다. 베르너 비쇼프가 찍은 한국전쟁 당시의 사진은 그 장면들을 그냥 스쳐지나갈 수 없게 만든다. 대피하는 사람들의 뒷모습, 서로의 손을 씻겨주는 아이들의 모습, 그 모든 이미지에 기록자를 넘어선 인간으로서의 애정이 느껴졌다. 한 장의 사진이 교과서의 연표보다 더 큰 울림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하는 장면이었다.
이어 등장한 9.11 테러의 사진은 침묵을 유도한다. 연기에 휩싸인 도시의 실루엣은 설명보다 강했고, 세계무역센터의 자취마저 사라진 공허한 프레임은 그날의 충격을 다시 꺼내어놓았다. 이런 장면 앞에서 ‘사진이 왜 필요한가’라는 질문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사진은 존재의 증거이며, 우리가 잊지 않도록 붙잡아두는 기억의 형식이었다.
그동안 사진에 대해 애매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일상을 쉽게 기록하고 공유할 수 있는 시대에 살다 보니, ‘사진이 예술일 수 있는가?’라는 회의가 늘 있었다. 그러나 전시의 후반부, 마틴 파를 포함한 작가들이 만든 2000년 이후의 포토북을 접하면서 그 회의는 자연스럽게 해소되었다. 포토북은 작가의 시선, 리듬, 감정, 사유가 응축된 예술 형식이다. 누구나 사진을 찍을 수 있지만, 모두가 그 장면을 ‘엮어내는’ 것은 아니다. 포토북은 하나의 태도이며, 이미지의 문법을 글이 아닌 구조로 설명하는 방식이다.

이탈리아의 사람들을 담은 브뤼노 바르베의 ‘Les Italiens’, 일본의 전통과 현대를 나란히 놓은 쿠보타 히로지의 ‘Japan’도 눈길을 끌었다. 특히 쿠보타의 사진 중, 어린 아들의 하카마 매무새를 정돈해주는 아버지의 모습은 국경과 문화를 넘어 가족의 정서라는 것을 강하게 느끼게 했다. 포토북은 그렇게 한 장면의 힘을 천천히 누적시킨다. 마지막으로 치엔치 창의 ‘The Chain’은 전시 내내 가장 충격적인 체험이었다. 30년을 사슬에 묶인 채 살아온 남성의 삶과, 그가 어머니에게 쓴 편지를 읽는 순간 그 침착한 문장 너머의 울분과 애틋함은 결국 모든 관람의 정점을 이뤘다.
‘포토북 속의 매그넘’은 단순한 사진전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진이 가진 기록성과 예술성, 그리고 인간성의 깊이를 차분하게 증명한 전시였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세계가 펼쳐졌고, 전혀 알지 못했던 누군가의 삶이 도착했다. 사진이란 그저 피사체의 외형을 담는 게 아니라, 세계를 바라보는 작가의 감각과 윤리를 포착하는 일이라는 걸, 이번 전시는 명확히 보여줬다.
오는 9월 14일까지 계속되는 이 전시는, 사진과 책을 사랑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사진이라는 장르에 대해 어떤 거리감이나 의심을 가지고 있던 이들에게도 꼭 권하고 싶은 자리다. 우리가 잊지 않아야 할 풍경과 사람들, 목소리 없는 기록자들의 목소리가 그 안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