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여행은 늘 그렇게, 첫 번째 키스
무언가를 바꾸기 위해 과거로 돌아간 주인공들은 왜 매번 현실 앞에서 좌절하고 무엇도 바꾸지 못한 채 돌아올까. 우리는 여러 영화와 드라마들을 통해 과거로 시간여행을 한 자들이 무언가를 바꾸려고 할 때, 현재의 일들이 반드시 더 나빠짐을 알고 있다. 변하지 않거나, 더 나빠지거나. 과거를 바꾸어서 현재가 나아지려면 주인공이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는 것 역시 타임슬립물의 법칙 중 하나이다.
<첫 번째 키스> 역시 그렇다. 칸나와 카케루의 15년 결혼생활은 카케루의 열차사고로 인해 사별로 끝이 난다. 원래라면 이혼 서류를 제출하고 헤어져야 했지만, 갑작스럽게 혼자가 된 칸나는 카케루의 영정사진과 방을 여전히 치우지 못한 채로 살아간다. 일에 몰두하며 지내던 칸나는 업무 전화를 받고 다시 출근을 하던 도중 무너지는 터널을 빠져 나오게 되고, 그 터널을 지나자 2009년 8월로 돌아간다. 15년 전 카케루를 처음 만난 날, 처음 만난 장소로 돌아왔다는 것을 알게 된 칸나는 터널을 거슬러 집으로 돌아와 생각한다. 저 터널 반대편에 있는 것이 정말로 2009년 8월의 그 날이라면, 카케루가 죽는 현재를 바꿀 수 있지 않을까.
과거의 행동으로 인해 현재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칸나는 매번 돌아갈 때마다 폴라로이드를 찍으며 카케루를 살리기 위해 과거를 바꾼다. 하지만 수많은 엔딩 속에 카케루가 살아 돌아오는 엔딩은 없다. 아기를 구하기 위해 선로에 뛰어들어 사망한 카케루에게 비상버튼을 누르라고 말하고 기대에 차 집으로 돌아오지만 칸나를 반기는 것은 비상버튼을 눌러서 탈선한 열차 사고로 62명이 사망했다는 뉴스다.
수없이 리플레이를 했지만 원하는대로 바뀌지 않고 더 나빠지기만 하는 현재. 왜 시간여행은 늘 이렇게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는 희망만을 남긴 채 우리가 원하는 대로 돌아가지 않는 걸까. 24년 화제의 드라마였던 <선재업고튀어>에서도 솔이는 사랑하는 선재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지만 선재의 죽음을 막을 수는 없었다. 이렇게 과거로 돌아가 무언가를 바꾼 후에 현재로 돌아온 주인공들 앞에는 더 나빠진 엔딩이 펼쳐진다. 그리고 주인공들은 결심한다. ‘나를 만나지 말게 해야겠다’, ‘나와 모르는 사이로 만들어야겠다.’ ‘우리가 사랑에 빠지지 않게 해야겠다.’
칸나 역시 마찬가지다. 모든 걸 밝힌 카케루에게 자신과 결혼하지 말라고, 그럼 살 수 있다고 말하며 잠시 뒤 이 파티에 올 15년전의 자신과 마주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뻔하게도 카케루는 그럼에도 널 만나겠다는 선택을 한다.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15년간 별볼일 없는 결혼생활을 이혼으로 마치려고 하는 길에 열차사고가 나서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말이다. 그냥 15년을 당신과 함께 행복하게 보내겠다며, 더 사랑하며 살겠다는 다짐을 하고 칸나를 현재로 돌려보낸다. 죽지 말라는 말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죽음이 언제 어떻게 닥치는지를 알게 되고, 나와 결혼하지 않으면 죽지 않을 수 있다고 과거를 바꾸러 현재에서 날아온 여자를 보고도 ‘그럼에도 당신과 결혼해서 15년을 행복하게 살겠다.’ 라고 말하는 건 분명히 사랑의 모습이다. 카케루는 자신과 같은 양말을 신고 있는 15년 후의 칸나를 보며 과거를 바꾸지 않겠다고 말한다. 왜 사람은 알면서도 같은 선택을 할까. 타임슬립물의 주인공들은 늘 이렇다. 기억이 지워지고, 연인의 삶에 내가 남지 않는다고 해도 과거를 바꾸려는 자와, 불행한 미래를 알게 되어도 너를 사랑하겠다는 자. 같은 사람을 선택하고 같은 운명을 받아들이며 카케루는 결국 15년 후에 똑같이 죽음을 맞이한다. 칸나는 결국 정해진 운명을 바꾸지 못한다. 하지만, 모든 사실을 알고 나서도 15년 전의 당신을 만나러 가겠다는 카케루는 칸나와의 15년을 사랑으로 채운다.
엔딩이 바뀌지는 않았지만 엔딩으로 가는 길은 달라질 수 있다.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잠을 자고, 출근 준비를 돕고, 대화를 나누며 칸나와 카케루의 15년은 평범하게 흘러간다. 정해진 운명을 바꿀 수는 없었지만, 그 길에 놓인 칸나와 카케루의 삶은 따뜻한 하루들로 채워진다. 칸나의 시간 여행은 여전히 칸나를 혼자 남겨두지만, 지나간 시간들을 허무하게 만들지 않는다. 과정은 변할 수 있고, 그 과정에는 사랑이 가득하다.
<첫 번째 키스>는 흔한 타임슬립물의 공식을 따라가며 흔한 러브스토리를 이야기한다. 결말을 바꿀 수는 없지만 과정을 바꿀 수는 있기 때문에 현재의 사랑에 집중하는 것. 흔한 멜로드라마다. 이 영화가 아름다운 이유 역시 그 ‘흔함’에 있다. 평범한 사랑은 결국 남은 인생을 바꾼다. 분명히 바꿀 수 없는 것들과 그럼에도 바뀌는 것들 사이에서 시간여행은 늘 그렇게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