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1028469981_WlT8uEjv_5BED81ACEAB8B0EBB380ED99985Dgrass-3206938_1280.jpg

 

 

“우리 개는 안 물어요”

 

티브이에서나 보던 장면이었다.

 

집 근처에 새로운 공원이 생겼다. 백 평이상은 돼 보이는데 강아지들이 산책하기 딱 좋은 장소다. 동네 사람이면 잘 모를법한 곳이라 한적하고 바닥이 잔디라 스펀지처럼 푹신하다. 우리 집 강아지는 풀숲을 좋아하는데 주변에 나무도 심어져 있다.

 

주말에 데리고 나오면 1시간 정도 산책을 시키는데 공원 산책을 매우 즐거워한다. 그래서 자주 데리고 나온다. 꼬리를 한껏 올린 녀석이 내 그림자를 따라 뽈뽈뽈 뛰어온다. 소심한 녀석이 자신감 가득한 표정으로 산책하면 나도 기분이 좋다.


그 날도 여느 때와 비슷했다. 녀석은 공원 초입길에서 대변을 보려고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멀리서 개 한마리가 달려왔다. 방어할 겨를도 없었다. 대형견이었는데 키를 재면 나 만하지 않을까 싶다. 무방비한 상태로 순식간에 뛰어온 개……등장만으로도 무서웠다. 저 멀리서 남녀 커플이 돗자리를 펴고 피크닉을 즐기고 있었다.

 

동족의 냄새가 나니 본능적으로 튀어온 것 같다. 중요한 건 공원인데 목줄을 하지 않았다. 대형견이 우리 집 강아지의 엉덩이에 코를 갖다 대는데 순간적으로 하네스 줄을 들어 올렸다. 운동신경 없는 나지만 그 순간 무의식적으로 뇌에서 ‘일단 막아야 돼’라고 생각했나 보다.

 

줄을 살짝 들다가 끌어안고 몸으로 막으려 했는데 개가 자꾸 따라온다. 이러다 입질이라도 한번 하면 다칠까 싶어 소리를 질렀다. 강아지와 연결된 하네스가 공중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설명을 덧붙이자면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하네스를 쥔 채 빙빙 돈 것이다. ‘아악, 따라오지 말라고’ 소리를 질렀다. 뱅글뱅글 돌다가 속도가 더 빨라지며 강아지의 엉덩이를 입으로 살짝 ‘앙’하고 물었다. 우리집 강아지가 깨갱 소리를 내며 비명을 질렀다. 나는 더 강하게 소리쳤다. 하지 말라고.

 

저 멀리서 대형견 주인으로 추정되는 남자가 다가왔다. 사냥 본능인 것일까? 관심 표현일까? 그 무엇이 됐건 대형견은 목줄을 하지 않았고, 흥분한 모습이었다. 그냥 킁킁대며 냄새를 맡는 게 아닌 필사적으로 엉덩이 쪽을 어떻게 하려는 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이전에 딸기를 키웠을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산책로 주변 농원을 지나는데 내 키만 한 개 두마리가 우리 강아지 쪽으로 왔다. 그때는 목줄 없는 걸 확인하고 안아서 내 머리보다 높이 들어올렸다. 개 두마리가 두 다리로 섰는데 키가 어찌나 큰지. 나도 무서워 ‘살려주세요’라고 소리를 쳤고, 지나가던 행인이 와서 개를 제지한 기억이 있다.  

농원에 주인도 없었고, 다치지도 않아 하나의 해프닝이라고 생각했는데 십 년이 지난 지금 비슷한 일이 생겼다.

 

어안이 벙벙했다. 주인이 머리를 긁적였다. 나는 울먹이며 소리쳤다.

 

주인은 원래 이런 행동을 할 애가 아니라고 말했다. 놀자고 하는 표시라는 식으로 말하는데 말꼬리를 잘랐다. 어쨌뜬 나는 우리 강아지한테 입질하는 걸 봤고, 이 큰 공원에서 목줄 안한 건 잘못이라고. 상대의 잘못을 읊어주니 계속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제야 우리 강아지가 다친데 는 없는지 물었다. 숨을 색색대고 있었다.

 

엉덩이에 똥이 찔끔 묻어 있었다. 살짝 지린 모양이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연락처를 받고 무서워서 병원에 갔다. 병원에 갔지만 딱히 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육안으로 상처 나 피가 없었다. 정작 놀란건 나였다. 수의사 선생님은 놀란 가슴부터 가라앉히라고 말했다. 그래도 뭐 물린 게 아니라 다행이라고, 정말 작정하고 물었으면 아구힘이 세서 놔주질 않는단다.

 

집에 와서 계속 공원에서의 일이 생각났다. 잊으려고 했는데 더 선명하게 기억이 났다. 물린 한이 있더라도 더 강하게 제지할걸,이라는 생각부터. 신고를 했어야 하나, 경찰을 불렀어야 하나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차라리 내가 물렸으면 상대 견주가 정신을 차렸을까. 그러나 상황은 종료됐고, 일은 벌어졌다. 생각해 보면 상대에 대한 분이 풀리지 않았던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 강아지에게 너무 미안했다. 안 그래도 파양의 아픔이 있는 데다 개를 무서워하는 소심쟁이인데 트라우마를 준건 아닐까 하는 마음일 테지. 아마 내가 진짜 화났던 건 우리 개는 그럴 리 없다는 보호자의 잘못된 확신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개의 행동은 아무도 알 수 없다.

 

나한테는 착한 개가 다른 개를 보고 물 수도 있고, 목줄 없이 따라오던 개가 외부 소리에 놀라 숲속 혹은 도로로 뛰쳐나갈 수도 있다. 모든 개는 물 수 있고 보호자는 지켜야 한다. 언젠가는 나도 “우리 개는 안 물어요”라고 가볍게 말할 수 있게 될까. 함부로 단언해서는 안 될 일이다.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