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새끼 남겨두고 대감댁에 가봤더니
일은 커녕 날 가두고 몰매 맞아 종놈 됐네
사랑하던 우리 님은 얼굴이 반반하여
야밤에 김 대감 댁 마누라로 잡혀갔네
당연하게 우린 살아가네
당연하게 그래도 살아가네
- 뮤지컬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 中 넘버 '정녕 당연한 일인가'
뮤지컬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이 6월 20일부터 8월 31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서울예술대학교 졸업 작품으로 시작한 이 작품은 제5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작품상·안무상·남우신인상 등을 수상하며 화제를 모았고, 지난해 런던에서 첫 해외 쇼케이스 무대를 성공적으로 올렸다.
이 뮤지컬의 배경은 '시조의 나라', 즉 시조가 국가 이념으로 통용되는 가상의 조선이다. 백성들에게 시조는 “태산 같은 일들이 어깨를 짓누르고 희망조차 갖지 못할 때” 마음을 붙들어주는 버팀목이다. 그러나 15년 전, 평민 출신 시조대판서가 시조로 역모를 꾀했다는 누명을 쓰면서 시조는 전면 금지된다. 이후에도 가면을 쓰고 시조를 읊는 자들이 있었으니, 사람들은 그들을 ‘골빈당’이라 불렀다.
"이리 오거라!" 하는 외침과 함께 백성들이 좌판을 접고 엎드린다. 뒤이어 호탕한 웃음소리가 따라 나온다. 고아 천민 출신이면서 양반을 흉내 내는 '단'이다. 마을 사람들은 단을 ‘천하의 후레자식’이라 칭하며 걷어찬다. 그런 그 앞에 고운 한복을 입은 ‘진’이 나타난다. 마을 사람들은 진을 환호하며 맞고, 단은 양반의 시조 놀음이 뭐가 재밌겠냐며 비웃는다. 그러자 진이 시조 결투를 신청하고 두 사람은 넘버 <놀아보세>로 맞붙는다.
[진] 어설픈 양반 흉내 잡혀가진 않을는지
허송세월 보내다 굶어 죽진 않으실지
아무래도 걱정되니 음식이나 싸가시지
진의 시조는 정형적인 시조 형식을 따른다. 3장 6구(초장–중장–종장)의 구조와 4음보의 리듬, 당시의 시조 율격을 충실히 구현했다. 단의 시조는 달랐다.
[단] 후레자식 그게 나 오늘도 양반걸음
너네 자식들은 계속 퍼 나르겠지 거름
너네들이 일할 땐 난 놀음
전통적인 음수율, 음보율이 아닌 발음의 유사성에 집중한 단의 시조는 오늘날의 랩을 떠올리게 한다. 백성들은 “볼품없는 시조”라고 비난하지만, 진은 “처음 보는 운율”이라며 감탄하고 단에게 골빈당에 합류하라 권한다.
한편, 진의 아버지이자 시조대판서인 홍국은 골빈당과 단을 노리고 있다. 그는 왕을 현혹해 시조 금지를 주도한 인물이다. 그가 인용하는 시조는 이방원의 <하여가>와 정몽주의 <단심가>다.
[홍국]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역사는 오로지 승리자만 기억하겠지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죽어
시간은 흘러서 나의 뜻은 세워지리
태종 이방원은 자신과 뿌리가 다른 이들도 하나로 묶어 강한 조선을 만들자고 했고, 정몽주는 일백 번 죽어도 그런 조선은 안 된다고 거절했다. 두 시조는 각자 이상으로 삼는 조선을 위해 헌신하는 자세를 담고 있다. 하지만 홍국은 달랐다. 겉으론 ‘위대한 조선’을 말하지만, 실상은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 백성의 입을 틀어막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단은 마침내 골빈당에 합류하고, 15년 만에 다시 열리는 시조대회에 참여하게 된다. 골빈당은 이 기회를 이용해 임금에게 진실을 알릴 계획을 세운다. 진 또한 백성의 한이 담긴 종이를 하나하나 모으지만, 아버지에게 들켜 절망한다. 지금까지 "아버지의 한마디"를 "부정할 수 없었"던 진은 마침내 시조대판서의 딸이라는 정체성을 벗고 골빈당의 옷을 입는다. 이때 진이 부르는 <나의 길>은 <놀아보세>와는 전혀 다른 형식을 보인다.
[진] 나의 길은 내가 선택해
내 운명을 거부하겠어
정해진 길은 없어 내가 가는 곳에서
어디든 당당히 외칠 거야
<놀아보세>에서 진은 3장 6구, 4음보의 시조 형식을 따랐지만 <나의 길>에선 그 형식을 벗어던진다. 하지만 홍국의 압박은 계속되고, 진은 결국 감금된다. 과연 골빈당과 백성들은 다시 시조를 "외칠" 수 있을까?
금지곡의 역사부터 가상의 조선까지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의 배경은 ‘시조가 국가 이념이 된 가상의 조선’이다. 이는 시조의 금지와 부활이라는 극적 장치를 위해 설정된 상상으로, 조선시대에 시조가 금지된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이 설정이 어색하지 않게 다가오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우리에겐 ‘금지곡’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책 <한국 금지곡의 사회사>의 저자는 한국에서 노래가 통제된 과정을 짚으며 독일 철학자 한스 마그누스 엔젠스베르거의 ‘의식산업’ 개념을 인용한다. 지배 체제는 음악을 통해 규범과 가치를 대중에게 흘려보내고, 이를 거스르는 음악은 검열당하거나 금지된다. 금지곡으로 낙인찍히지 않으려면 지배 집단의 규범을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통제되는 문화산업을 의식산업이라고 한다.
일제강점기엔 이 의식산업이 더욱 노골적이었다. 1908년 학부령 제16호 <교과용도서검정규정>으로 음악 교과서가 검열되었고, 국민개창운동, 가요정화운동 등을 통해 일제 찬양 가사로 노래를 바꾸기도 했다. 노래책 출판 금지, 음반 판매 금지, 심지어 가창 금지 조치도 내려졌다. 금지 이유는 치안, 풍속, 민심 교란이었다. 기준은 분명했다. 민족 정서를 담은 노래, 항일과 독립 의지를 담은 노래, 노동자들의 현실을 담은 노래는 모두 검열 대상이었다.
누군가의 현실을 고스란히 담아낸 노래는, 지배 계급에게는 도전으로 비쳤다. 시조도 마찬가지였다. 백성들이 자신의 삶을 담아 읊은 시조가 전국으로 퍼지자 지배 계급은 이를 ‘풍속을 해치는 일’이라며 억눌렀다.
왜 그들은 노래를 금지해야만 했을까? 음악이 갖는 ‘결집력’ 때문이다. 배묘정(2020)에 따르면 음악은 "민족주의의 스펙터클을 확장하는 데 유용한 도구"로 인식됐다. 함께 노래 부르는 경험은 공동체적 친밀감을 형성하고, 이는 곧 저항의 씨앗이 된다.
그들은 어떻게든 씨앗을 짓밟지만, 억압은 저항을 더 강하게 만들 뿐이다. 박영신(2005)은 “탄압의 의미를 갖게 되는 순간, 그것은 곧바로 저항 지향성을 나타내는 더욱 선명한 운동 노래로 거듭난다”고 말했다. 막으면 막을수록, 노래는 더 큰 힘을 얻는다.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에서 시조를 금지하자, 오히려 그것이 저항의 상징이 되어 홍국을 무너뜨린 것처럼.
공연장을 나오며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지금 우리의 ‘시조’는 무엇일까.
누군가는 목숨을 걸고라도 지켜내려 하고, 누군가는 퍼져나갈까 두려워 막으려 하는 노래. 노랫말 속에 사람들의 현실이 들어 있고, 부르기만 해도 가슴이 트이는 노래.
쉽게 떠올리기 어려웠다. 하루에도 노래가 수십 곡 쏟아지지만, 현실을 그대로 담아내거나 부르는 것만으로 숨이 트이는 노래는 드물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노래 마저 담지 못한 현실은 얼마나 더 많을까.
오늘날 한국의 ‘시조’는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이 작품이 던진 질문에 우리는 어떤 대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참고문헌
문옥배. (2004). 한국 금지곡의 사회사. 예솔.
박영신. (2005). '운동 문화'의 사회학. 사회이론,(27), 57-92.
배묘정. (2020). 노래 부르기의 정치학:<임을 위한 행진곡>의 제창・합창 논란에 대한 수행적 관점의 분석. 서강인문논총, 59, 205-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