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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에 지나치게 집착하던 상황에서 가벼운 환기가 필요했다. ‘우리들의 교복시절’은 그렇게 충동적으로 보게 된 영화였다.


시사회는 배우와 연출진의 화기애애한 영화 소개로 시작되었고, 영화를 다 본 후에는 예상보다 더 생각할 거리가 많아 여운이 남았다. 이 영화는 ‘청춘 로맨스’에서 ‘청춘’에 더 방점이 찍혀있는 영화였다. 상영이 끝났음에도 나는 여전히 펑윈아이를 둘러싼 세상을 곱씹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 글을 쓰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여러 가지 주제와 이야기를 하나의 글에 다 담을 수 없어, 최대한 간추려 작성했다. 또한 아래 리뷰에 인용한 극 중 대사는 기억에 의존하여 작성하였기에 정확하지 않음을 미리 알린다.




클리셰와 상징


 

‘우리들의 교복시절’은 성격도, 가족도, 짝사랑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명문 여고 야간반 학생 ‘펑윈아이’가 모든 것이 완벽한 주간반 책상 짝꿍 ‘뤄자민’과 절친이 되면서 비밀스러운 교복 교환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되는 청춘 성장 로맨스이다.

 

우리가 대만 청춘 로맨스 영화에 기대하는 건 뭘까. 간질간질한 설렘이나 아련한 첫사랑의 기억? 청춘 로맨스 장르의 영화는 그 스토리의 흐름을 대강 예측할 수 있으면서도, 그 전형적인 ‘맛’ 때문에 또다시 보게 되는 묘한 매력이 있다.


이 영화 역시 그런 전형성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었다. 루커의 이름으로 ‘이름 점’을 치며 좋은 결과를 바라던 펑윈아이가, 곧이어 비 내리는 거리에서 루커와 함께 달리는 장면은 그 대표적인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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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한 BGM이 흐르며 펼쳐지는 이 장면은, 펑윈아이를 둘러싼 복잡하고 시끄러운 현실 속에서 유일하게 이상적으로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고전적인 연출이 클리셰로 굳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실감했다.


또한 영화에서는 다양한 상징을 통해 펑윈아이의 이상과 현실을 보여준다. 펑윈아이가 짝사랑하는 대상인 루커, 모든 게 완벽한 주간반 친구 뤄자민, 영화 속에서 늘 빛나는 배우 니콜 키드먼은 펑윈아이가 처한 상황과 대비되는 이상적인 대상이었다.


 

"우리가 평등한 순간은 오직 탁구 칠 때뿐이었어."

 

- '우리들의 교복시절', 펑윈아이 대사 中

 

 

그런 상황에서 펑윈아이가 유일하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낼 수 있었던 공간이 바로 ‘탁구장’이었다. 펑윈아이와 루커가 한 팀이 되어 탁구치던 그 순간에만, 둘은 평등한 상태에 있었다. 에너지 넘치는 청춘 영화에 빠질 수 없는 ‘스포츠’라는 소재를, 이 영화는 단순한 활동 이상의 의미로 확장해 상징적으로 풀어냈다.


 

 

어쩌면 위태롭고 불안한


 

‘우리들의 교복시절’은 ‘나의 소녀시대’나 ‘장난스런 키스’와 같은 전형적인 청춘 로맨스와는 다르다. 가장 큰 차이점은 이 영화가 로맨스보다는 성장 서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두 주인공의 감정선보다, 펑윈아이의 내면적 결핍과 그를 둘러싼 사회적 현실에 더 깊이 몰입하게 된다.


영화는 ‘주간반’과 ‘야간반’이라는 학교 시스템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같은 교실과 책상을 공유하지만 교복 자수 색깔 하나로 권력과 계급이 구분되는 이 설정은 청소년기 사회의 구조적 위계를 나타낸다.


펑윈아이는 주간반 친구 뤄자민과 가까워지며, 점점 그들의 세계에 발을 들인다. 뤄자민의 교복을 반복적으로 입고 다니고, 좋아하는 남학생 루커에게 거짓말을 하게 되는 등 자신의 결핍을 감추기 위한 행동들이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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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펑윈아이의 행동을 설명하는 중요한 배경은 가난과 가정환경이다. 비록 펑윈아이의 가족 이야기는 영화 속 한 축에 불과하지만, 나는 그 갈등이 펑윈아이의 모든 선택을 움직이는 근본적 원인처럼 느껴졌다.


 

"도대체 우리가 얼마나 가난한 건데?"

 

- '우리들의 교복시절', 펑윈아이 대사 中

 

 

특히 극 중 펑윈아이와 그의 엄마가 언성을 높이며 싸우는 장면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엄마는 예상치 못한 가난이 주는 불안 때문에, 자녀는 여전히 실감나지 않는 가난 앞에서 서로를 향해 날카로운 말을 내뱉는다. 결국 갈등의 표면적 원인은 학업과 성적처럼 보였지만, 사실 근본적 원인은 가난과 불안 때문이었다는 점을 다시금 느꼈다.


그렇기에 펑윈아이의 모든 행동과 선택은 단순한 성장기의 감정 기복이 아니었다. 이 영화는 겉으로는 사소해 보이는 교복 자수 하나, 점점 커지는 결핍, 그리고 집 안에서의 불안한 분위기를 촘촘하게 배치해, 학생이기에 겪을 수밖에 없는 불안과 갈등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그런 점에서 ‘우리들의 교복시절’은 단순한 청춘 로맨스라기보다 사회적 환경과 개인의 내면이 충돌하는 성장기의 본질을 그려낸 영화였다. 이렇게 우정이나 가족과 같은 보편적 주제에 대해 예상보다도 더 많이 다루고 있어서, 엄마와 함께 봐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나의 교복시절


 

펑윈아이와 나는 국적도, 살던 시대도 다르지만 굉장히 비슷한 청춘을 보냈다. 1990년대 대만의 학생들이 겪은 학창 시절은은 내가 겪은 2000년대 학창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점수와 등급으로 결정되는 위치부터 단 한 번의 시험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붓는 대입 시스템까지 비슷한 요소가 많았다.


나는 2000년대생이고, 야간반도 아니었고, 수업을 자주 빠지는 학생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학창 시절 내게도 루커나 니콜 키드먼 같은 존재가 있었으며, 가려지지 않는 결핍이 있었다.


그때의 나는 어떤 불안을 안고 있었을까. 나는 정의하기 어려웠던, 하지만 타인에게는 너무도 투명하게 보였을 나의 결핍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나 역시도 펑윈아이처럼 뭐든지 잘하는 학생이 되길 바랐었다. 한 가지 다행인 건 영화 속 펑윈아이를 보며 이제는 ‘그땐 그랬지.’라며 기억을 흘려보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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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펑윈아이와 나에게 인생은 '자신이 생각했던 방식으로 빛나지 않을 수 있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라고 이야기한다면 너무 냉정하고 모순적인 어른으로 보이겠다. 나 또한 아직도 나의 ‘빛나지 않음’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인생은 또한 타인과 나의 상황이 다름을 이해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미루어봤을 때, 나만의 새로운 빛을 찾기 위해선 타인과 나의 상황이 다름을 먼저 이해해야 하는 것 같다.


시사회에서 항첩여 배우가 말한 것처럼 이 영화는 분명 앞으로의 삶을 견뎌내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힘’을 담고 있었다. 찬란함과 위태로움이 공존했던 학창 시절을 돌아보며, 새로운 삶의 방향을 찾아가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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