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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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으로 올릴 대본을 어떻게든 완성해야 하는 시즌이었다. 처음 써보는 대본에 무슨 대사를 써도 어색하게 느껴지는 탓에 잠시 글쓰기를 멈췄다.

 

머리를 식히려고 책을 집히는 대로 읽던 중에 학교 도서관 근로를 함께 하는 친구의 책 추천을 받았다. 사실 누군가에게 책 추천을 받아도 태생이 조금 게으른 탓에 잘 읽지 않는 편이다. 읽어도 금방 손에서 놓곤 했다. 이번에도 큰 기대는 없었다. 그저 에세이치고 꽤 파격적인 제목이라고 생각하며 책의 표지를 넘겼다.

 

어느새 도서관 이용자가 오는 줄도 모르게 책에 집중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세상을 감각하는 작가의 시선에 집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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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을 다독이기 위해 태어난 책


 

조승리 작가는 자신의 시력이 사라져간다는 것을 깨닫고, 도서관에서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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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눈으로만 읽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무지함에서 나온 다급함이 조승리 작가의 시선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는 주저앉아 하루하루를 절망으로 보내거나 누군가를 탓하는 대신 책을 읽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사유와 통찰은 작가의 세계를 만들어주었고, 세상이 작가의 세계를 잡아먹지 못하게 도와주었다. 어머니에게 장애가 창피했다는 말을 들어도, 정수리에 대바늘이 꽂힌 채 피를 흘려도, 여행을 가서 앞도 못 보는데 여길 힘들게 뭐 하러 왔냐는 말을 들어도 조승리 작가는 무너지지 않았다. 설령 무너져도, 다시 일어났다.

 

작가는 열다섯부터 서서히 시력을 잃어가다가 스무 살에 완전히 시력을 잃었고, 마사지사로 20년간 근무하다 최근에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온몸으로 감각한 세상을 유쾌하고도 생생하게 풀어냈으며, 나는 그 진실성에 자연스럽게 울고 웃으며 작가의 시선을 즐겼다. 그리고, 그 시선을 즐기다가도 이렇게 담담하고 유쾌하게 자신의 인생을 풀어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있었을지 생각했다.

 

작가는 말한다.

 

["원고를 쓰기 시작한 것은 내가 쓴 글을 낭독하다 울컥 눈물을 쏟은 한 사람을 위해서였습니다. 어느새 나는 신이 나 스스로 책상에 앉아 원고를 쓰고 있습니다. 글은 결국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닌 나를 위해 쓴다는 사실을 알고 조금 놀랐습니다. 이 책은 내 마음을 다독이기 위해, 시간의 점들을 모아 쓴 과거와 현재의 기록입니다."]


맞다. 글은 결국 누군가가 아닌, 내 마음을 다독이기 위해, 자신을 위해 쓰는 것이다.

 

조승리 작가가 그랬고, 필자 또한 그렇고, 글을 쓰고 있을 다른 누군가 또한 그럴 것이다.

 

 

 

사람을 감각한 이야기의 매력


 

사유와 통찰로 형성된 작가의 시선은 단지 세상을 보는 방식에 머무르지 않았다. 조승리 작가는 시각장애인 마사지사로 일하며 손님들의 몸을 만졌고, 그 몸에 담긴 이야기를 감각했다. 눈으로 볼 수는 없어도, 손끝과 귀로 사람을 읽어내며 그들을 섬세하게 대했다. 그는 자신의 업무에 관해 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감각한 이야기"를 쓰며, 그 감각이 스쳐 지나가는 사람 중 하나에 머무를 수도 있었던 손님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준다.

 

특히 필자에게 인상 깊게 다가온 손님들은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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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버 파이브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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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 손님

 

 

매번 샤넬 넘버 5 향수를 코가 마비될 것처럼 강하게 뿌리고 오는 '넘버 파이브' 손님, 그리고 항상 화가 나 있는 표정으로 들어와 아무 말 없이 긴 시간을 자고 가는 '사자' 손님.

 

필자는 어떤 사람에 대해 알게 될수록 그 사람에 대한 미련이 생긴다.

 

이번에는 책 속에서 들은 조각의 이야기로 그들에 대한 미련이 생겼다.  그저 이상한 사람이야,라고 말하며 넘길 수도 있는 사람들의 안부가 궁금했다. 지금 그 여성 손님은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가족에게서 온전히 도망친 걸까, 사자 손님은 아직 마사지샵을 찾아올까, 아직도 잠에 잘 들지 못하는 사람일까, 계속해서 그들을 생각했다.

 

나 자신이 생각보다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깨달았다.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가 궁금했고,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궁금했다.

 

사람을 감각한 이야기가 내가 놓치며 살아가던 부분을 건드려주었다.

 

이 책은 시각장애인의 이야기이기 이전에, 오히려 누구보다도 뚜렷한 감각으로 세상을 보는 한 사람의 기록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조승리라는 사람이 감각한 세상을, 그리고 사람들을 함께 즐겨보길 바란다.

 

그리고, 당신만의 감각으로, 당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감각해보길 바란다.

 

세상을 감각하다 보면 당신의 지랄맞음이 쌓여 언젠가 축제가 될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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