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의 나라'를 표방하지만 양반에게만 시조가 허용되는 시대, 자유를 되찾기 위한 이들의 여정을 유쾌하게 그려낸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이 6월 20일 개막 후 성황리에 공연 중이다.
제목에서 특히 눈에 띄는 단어 '스웨그(Swag)'. 한동안은 온갖 상황에서 이 단어가 남발되곤 했는데, 과연 무엇이 '스웩 있는' 것일까. 스웨그는 스웨그를 가지겠다 결심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나답게, 자유롭게 본인을 드러낼 때 자연스레 따라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의 인물들은 모두 자기만의 스웨그를 가지고 있다. 자유를 되찾아 나답게 살고 싶은 사람들과 이를 저지하는 시조대판서 간의 갈등이 이야기의 뼈대를 이루기 때문이다. 개성 넘치는 인물들의 '스웨그'를 넘버와 함께 살펴보자.
매력적인 아웃사이더 단
너무 답답해 시키는 대로 하라는 대로 사는 건
정말 갑갑해 평범한 시조 평범한 생각 그런 건
하고 싶은 말을 뭐든 시조에 담아보는 거야
그게 바로 조선 수액
'조선 수액' 중
가족 없이 저잣거리에서 자란 단은 어떤 규율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 싶은 인물로 관객 앞에 등장한다. 단이 어떤 사람인지 관객에게 확실하게 각인시키는 넘버가 바로 첫 등장과 함께하는 '조선수액'이다. 후레자식이라는 남들의 평가에 기죽지 않고 오히려 "후레자식 내가 바로 망할 자식"이라며 스스로를 소개하는 사람, 딱딱 맞는 각운을 유쾌한 어조로 선보이는 자가 바로 단이다. "조선에서 제일 씩씩"이라며 혼자 웃는 모습은 세상 무서울 것 없어 보이는 단이 사실 외롭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골빈당과 어울리게 된 것도 처음부터 그들의 이념에 진심으로 공감해서라기보다는 비슷한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을 것이다.
그랬던 단이 크게 각성하는 넘버가 바로 '새로운 세상'이다. 아버지의 비밀을 알게 되고 시조대판서에 맞서겠다고 결심하는 모습은 개인적인 욕망이 사회를 바꾸겠다는 의지로 확장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때 결심했던 것들은 2부 말미에 나오는 '운명'에서 화려하게 꽃핀다. 단이 시조대판서 홍국과 전면으로 대립하는 이 넘버는 단의 가장 처절한 모습을 만날 수 있으면서 단 역할을 맡은 배우들의 연기력이 돋보이는 넘버이다. 특히 랩처럼 전개되는 대목은 단의 매력을 아낌없이 보여준다.
올곧은 마음을 따라가는 진
옳다고 믿는 일에 주저해선 안 돼
머물러 서 있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더 이상 운명이란 거짓말에 속지 않아
나의 길은 내가 선택해
내 운명을 거부하겠어
'나의 길' 중
철없는 아웃사이더인 단과 달리 진은 국봉관을 이끄는 어엿한 시조꾼이자 골빈당의 모든 활동을 계획하는 베테랑이다. 진은 자신의 첫 넘버인 '놀아보세'에서 고된 일과를 마치고 국봉관을 찾은 사람들의 흥을 돋운다. 진의 대표 시조라는 '욜로가'는 국봉관이 어떤 장소인지를 보여준다. 밖에선 함부로 못하는 말도 자유롭게 내뱉을 수 있는 곳, 잠시나마 시름을 잊고 삶을 즐길 수 있는 곳이 국봉관이다. 이곳에서 진은 단과 시조 대결을 벌이기도 한다. "장단 주세요!"를 외치며 랩 배틀을 연상시키는 장면은 웃음을 자아내면서도 진의 당당한 성격을 잘 보여준다.
매사에 똑부러지는 진에게도 비밀이 하나 있다. 바로 아버지가 일반 백성으로부터 시조의 자유를 빼앗은 장본인, 시조대판서 홍국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진은 다른 누구보다도 내적 갈등이 큰 인물로 그려진다. 골빈당의 주요 멤버이지만 자신만 신분이 다르다는 사실에 자괴감을 갖고 있고, 아버지에게 맞서는 일에도 다른 멤버들과는 결이 다른 부담을 느낀다. 하지만 '나의 길'에서 진은 마음을 다잡는다. "옳다고 믿는 일에 주저해선 안 돼 / 머물러 서 있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라고. 이 가사는 2부에서 아버지와 맞서는 '운명의 길'에서 다시 나오며 진이라는 인물의 서사를 완성시킨다.
죽어서도 뼈까지 빛나는 골빈당원
난세에 악행을 벌하고 행복한 세상을 만들리라 골빈당
'골빈당' 중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은 유독 조연들이 돋보이는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골빈당의 멤버들 십주, 호로쇠, 기선, 순수가 대표적이다. 뼈 골, 빛날 빈을 써서 뼛속까지 빛난다는 뜻이라지만 어쩐지 다른 의미(골이 비었다)로도 읽히는 이 조직은 아무도 못 말리는 각오와 실행력으로 똘똘 뭉쳤다.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을 위해 싸우는 이들의 무기는 막강한 군사력이나 치밀한 조직력이 아닌 '흥'이다. 실제로 말끝마다 추임새로 '흥'을 붙이기도 하고, 슬픈 내용의 가사도 이들이 부르면 어쩐지 리듬을 타게 된다.
이 흥이란 시조대판서에게는 없는 덕목이기도 하다. 무엇이든 법으로 만들어 강제하는 시조대판서와 달리 골빈당원들은 춤과 노래로 하고 싶은 말을 전한다. 일반 백성들의 삶 속으로 뛰어들어 그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든다. 골빈당의 활약은 1부 마지막 곡인 '이것이 양반놀음'에서 하이라이트를 이룬다. 저잣거리에서 춤판을 벌이고 함께하자고 손을 내밀자 쭈뼛거리던 사람들도 어느새 동참해 즐긴다. 이들은 양반을 풍자하고 "이것이 당연한 일인가" 질문을 던지며 양반 중심의 사회에 균열을 낸다.
2부 '난 말이야'에서는 골빈당원들의 뒷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호로쇠는 경상도 출신의 종놈으로 대감댁에서 일을 했지만 아무 대가도 못 받고 쫓겨났다. 골빈당 재주꾼이라는 기선은 집안의 반대와 신분의 격차로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했던 과거가 있고, 유독 말이 없던 골빈당의 경호원 순수는 백정의 딸로 말 한마디 잘못해서 아버지가 죽었다는 죄책감에 말을 잘 하지 않게 되었다는 사연이 있다. 이러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골빈당원들을 살아 있는 캐릭터로 만드는 동시에 시조대판서가 주창하는 '강성한 나라'라는 실체 없는 이념과 대비되며 작품이 전하려는 바를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매력적인 악역인 시조대판서 홍국
강성한 나라 위해 필요한 국법을
비난하는 무례한 족속들
시조를 통해서 전해지는 소문이
조정과 왕권을 위협합니다
'이런들 어떠하리' 중
작품을 완성시키고 주연들을 더 돋보이게 하는 건 매력적인 악역이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이 작품의 큰 악역 시조대판서 홍국을 소개한다. 15년 전 자모에게 역적이라는 누명을 씌우고 그 대신 시조대판서 자리에 오른 그는 나이 어린 왕을 쥐락펴락하며 자신의 뜻대로 나라를 이끌어 가려 한다. 강성한 나라를 위해 백성들의 시조를 금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는 진지한 분위기의 넘버로 성격을 드러낸다. '이런들 어떠하리', '꿈꾸는 세상은 오지 않네'가 대표적이다. 골빈당이 작품 전체에 걸쳐 흥을 발산하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에게는 전쟁 때 아내를 잃고 그다음부터 시조에 집착하게 되었다는 사연이 있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하나뿐인 딸이 골빈당원이기에 끝까지 진을 설득하려 애써 보기도 한다. 그가 마지막에 무너지는 것도 결국엔 딸을 자기 손으로 해하는 것까지는 차마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악역의 특성상 홍국의 서사가 자세히 풀리지는 않지만, 이러한 홍국의 입체적인 면모는 무대 위에서 다 드러나지 않는 이야기를 상상하게끔 만들며 극 전체를 흥미롭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