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아스포라, 본래 살던 곳을 자의적 혹은 타의적으로 떠나 집단을 형성하는 것.
첫 이야기 <보선>은 근거지 없는 사람의 삶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보선은 회사 업무에 휘말려 복역하게 된다. 출소 후에는 교도소에서 알게 된 로저가 살았던 마을로 간다. 거처를 구하고 일거리를 찾고 동료가 생기고 아는 사람을 만들게 된다.
모처럼 이미지화가 잘 되는 이야기를 만나서 이야기보다 묘사가 더 눈에 들어왔다. 작은 마을, 자전거를 타고 가는 길, 카지노, 격납고가 눈에 쉽게 그려지는 부분에 감탄하며 읽었다. 역자는 이를 두고 "이 작가는 문장으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 같았"다고 했다. 그렇다. 사진보다는 그림 같은 글이었다.
두 번째 이야기인 <코마로프>에는 여러 설정이 등장하는데 한국 사람이 해외에 나간 한국 사람을 찾아가는 장면 때문일까, 우리나라를 외부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느낌이 언뜻 들었다. 남북 분단과 사상, 고려인과 과거사, 국제 관계 등 한국을 설정으로 두었을 때 나오는 것들을 보고 있자니 익숙하면서 어색했다. 배경지식이 많아서 오히려 생각이 많아진 탓일까. 저 사람들은 뭘까, 중정일까, 주연의 이동에는 무슨 이유가 있을까.
이야기에 나오는 사람은 저마다의 이유로 떠나온 사람들이니 발을 붙이고 사는 것과는 다른 삶이겠지. 그리고 거기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 오래전 잃어버린 사람을 찾는다. 그 사람을 찾기 위해 다른 사람들이 동원된다. 찾아야 하는 이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만 삶은 모르고 있었다. 그런 것은 기록되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 주연은 자신을 찾아온 이에게 기록되지 않고 전해지지 않은 어떤 사실을 알려주었다. 진실은 그제야 이곳에서 저곳으로 넘어갔다.
세 번째 이야기 <역참에서>는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일본인 야마시타 도시오의 시점에서 진행된다. 전쟁 후 한국에서 데려온 유난히 활을 잘 쏘는 아이. 주군의 아이에게 괴롭힘을 당하며 자란 말수 없는 아이는 어느 날 자신을 돌봐주던 사람들을 떠나 조선인에게 보내진다. 아이는 먼 길을 떠나 역참에 자리 잡을 때까지도, 조선인을 만나게 되는 순간에도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자신의 의지는 없는 이동과 이동이었다. 전쟁통에 부모를 잃은 갓난아이는 타국으로, 타지에서 모국어도 모른 채 살아온 아이에게 모국을 돌려주는 일.
<크로머>는 뉴몰든에 사는 한인 이야기였다. 북에서 탈출한 두 남자는 각각 남한 출신의 여자를 만나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다. 해리와 그레이스 두 아이는 같이 자라며 함께하며 부부가 되었다. 상점을 운영하는 두 사람 앞에 어느 날 코피를 흘린 한인 아이가 나타난다. 어디서 사고라도 당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했지만 이내 엄마의 전화번호를 기억해 낸다. 가게에는 경찰이 오고 아이는 병원으로 가고 아이의 엄마는 멀리서부터 아이를 찾으러 왔다.
아이가 어째서 해안가 마을 크로머에서 뉴몰든까지 오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해리는 그레이스와 함께 신혼여행지였던 크로머에 다시 방문하기로 한다. 그리고 벤치에서 어느 아이를 보고 그때 그 애를 떠올린다.
<벌집과 꿀>, <고려인>은 고려인의 이야기로 하나는 비현실적이고 하나는 누군가의 일화인 것처럼 현실적이었다. 아마 우리가 디아스포라의 사례로 이해하기 적합한 건 아무래도 고려인 아닐까.
꿀이 든 찻잔을 들고 있으면 벌이 왔다가 어디론가 간다. 자리를 바꿔서 다시 잔을 들고 있으면 또다시 벌이 왔다 간다. 이를 반복하면 꿀을 들고 벌집으로 가는 길이 된다고 한다. 이야기에서 벌집을 찾지 못했기에 길을 만드는 게 맞는지, 길을 잃는 건 아닌지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마지막은 <달의 골짜기>로 판타지가 깃든 것 같은 제목과 달리 어느 산골 마을 이야기였다.
매일 밤 여기서 달이 뜨고, 기울고, 부서졌단다. 그러고는 스스로를 다시 만들어냈지.
태어났던 마을로 돌아온 동수는 교회를 통해 고아를 둘 데려온다. 집안일과 심부름을 맡아서 하던 두 아이는 어느 날 한 사건으로 각각 집을 떠나게 된다. 은혜는 동수의 집 전화번호를 기억해두었다가 연락하기 시작했다. 오래간만에 찾아갔을 때 동수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동수는 지냈던 곳으로 돌아와 마지막을 맞이했다. 은혜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사람일까.
나에게는 타지의 경험이 없다. 학교도 집에서 통학했고 취직 때문에 거처를 옮긴 적도 없다. 어떤 의미에서는 우물 안 개구리인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치열하게 했더라도 이주민 가정에서 자란 작가의 이야기를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그래서 책을 읽었지만 좋은 독자는 되지 못한 것 같다.
어렴풋하게라도 그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는 미래가 있을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