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안녕하세요, 다들 즐거운 상반기 보내고 계신가요? 저는 지금 1년 중 해가 가장 긴 하지의 오후에 기고문을 쓰고 있습니다. 오늘을 기점으로 낮은 서서히 짧아지고, 눈 깜짝할 사이에 가을과 겨울이 다가오겠죠. 영국은 써머타임이 종료되고 원래 시간으로 돌아가겠네요. 추위가 다가오기 전에, 우리 모두 신나는 여름을 보내봅시다!


저는 하지를 맞이하며 틈틈이 채워 온 일기장(을 가장한 스케줄러)를 다시 훑어봤는데요, 생각보다 새로 시작했던 크고 작은 경험들과 새로운 인연들이 제법 있어 신기했습니다. 이런것들이 차곡차곡 쌓여 서서히 성장하겠죠?


성장이라고하니 생각나는데, 저는 고등학교때부터 함께 한 친구들이 몇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며 현실적인 고민을 마주하면서도, 만나면 과거로 돌아간 듯 유치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그런 친구들입니다. 오늘은 그 중 저와 성향이 비슷하면서도,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배울 점이 많은 한 친구를 인터뷰로 소개하려 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기고문에 등장하는 주변 사람들의 이름을 거의 밝힌 적이 없습니다. 나름의 서술트릭인데요, 이름 대신 이니셜을 적으면 그 사람의 성별과 국적을 알 수 없기에 더 다양한 상상이 가능하다고 생각해서 만든 저만의 규칙입니다. 가령 제가 A라는 사람과 우연히 미술관에서 대화를 나누었다고 가정해봅시다. 여러분은 그 사람이 한국에서 온 아이돌 아현씨인지, 런던에서 나고 자란 미술관 직원 알리사인지, 콜롬비아에서 온 여행객 알리 아저씨인지 알 수 없겠죠.


이번 기고문에서는 처음으로 저의 주변 인물을 이름과 함께 소개하려 합니다.

 

지금부터 한 명의 오타쿠이자, 저의 고등학교 동창이자, 예술가의 길을 걷고 있는 이기효의 인터뷰를 시작하겠습니다.




그 친구, 이기효


 

우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소개될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가족, 친구, 지인으로서의 ‘나’, 학생이나 사업가같은 어떤 사회적 지위로서의 ‘나’처럼 말입니다. 그렇지만 그것들의 뒤에 언제나 존재하는 온전한 ‘나’도 있습니다. 우선, 지구상에 하나 뿐인 ‘사람’ 이기효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보겠습니다.


*정진형 에디터는 ‘정’으로 이기효는 ‘이’로 표기


정: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이: 안녕하세요, 저는 이기효라고 합니다. 대학원에서 현대미술을 공부하며 미술 학원에서 강사로 일하고 있어요. 자주 불리는 별명은 ‘얄롤리’입니다. 고등학생 때 열심히 했던 ‘오버워치’라는 게임의 ‘눔바니’라는 맵의 로딩 화면에서 ‘얄롤리~’처럼 들리는 효과음이 들리는데, 이 소리가 묘하게 마음에 들어서 닉네임으로 자주 쓰다보니 별명이 되었습니다.


정: 이기효를 정의하는 키워드 3가지를 알려주세요.

이: ’INFP’, ‘수집광’, ‘집순이’인 것 같아요. 우선 ‘INFP’는요, 저의 Mbti입니다. Mbti를 키워드로 잡은 것이 뻔하다고 느끼실 수도 있는데, 초면인 분들도 몇 번의 대화로 바로 맞추는 편이더라구요. 보통 맞추지 못할 법도 한데, 그만큼 제가 INFP의 성격이 강한 사람인 것 같아서 키워드로 고르게 되었습니다.


이: ’수집광’은 저의 취미와도 관련있어요. 제가 오타쿠라 굿즈를 자주 모아요. 꼭 그렇지 않더라도 미적으로 꽂힌 물건들이 있으면 그것들을 꼭 구입하거나 직접 만들어서 제 공간에 가져다놓습니다. 모아둔 것들을 보면 느낄 수 있는 특유의 뿌듯함이 있어요. 그리고 제가 물건을 쉽게 잘 못 버리는 성격이기도 한데, 이것도 ‘수집’이라는 행위에 두는 의미가 커서 그런 것 같습니다.


이: ’집순이’는 제 추구미라서 키워드로 골라봤습니다. 저도 진형씨처럼 쉬는 날 집에서 누워있는 것을 좋아하거든요. 요즘은 친구들도 만나고 사회생활을 하다보니 결국 밖으로 나갈 일들이 많이 생기긴 하지만 어쨌든 제 본능은 언제나 집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정: 자기소개와 키워드에서 오타쿠의 아우라가 느껴지시네요. 이기효씨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이: 이미 수년만 보셨듯 게임 ‘젤다의 전설’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아까 수집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는데, 굳이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굿즈가 아니더라도 귀엽고 예쁜 소품들을 좋아해요. 특히 투명한 물건 특유의 맑은 질감과 투광성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편이라 선물 받은 것들을 제외하면 컵, 접시, 조명같은 소품들은 다 유리로 마련합니다. 뜨거운 물도 내열 유리 제품으로 마셔요. 색깔은 핑크색과 보라색을 좋아해서 비슷한 색감의 물건들을 보면 소유욕이 솟아올라요. 이 외에도 수시로 새롭게 빠져드는 것들이 있는데, 최근에는 아날로그 감성이 있는 전자제품에 꽂혀서 CD 플레이어를 구입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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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효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고등학교 동창들과 함께 주문제작한 젤다 케이크. ‘젤다의 전설’의 그 젤다다.

출처: 직접 촬영

 

 

정: 좋아하는 것들이 다채롭네요. 이기효씨는 이것들을 어떻게 좋아하나요?

이: 게임 ‘젤다의 전설’ 같은 경우는 디페스타같은 서브컬쳐 행사에 부스를 내서 직접 그린 엽서를 팔기도 했어요. 행사에서 다른 분들이 그린 팬아트를 잔뜩 구입하기도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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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페스타에 참여한 이기효의 부스. 엽서를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고양이 그림은 정진형 에디터의 작품이다. 

출처: 직접 촬영

 

 

이: 소품들은 아까 얘기한 ‘수집광’ 성격이 작동하는데요, 제가 ‘젤다의 전설’ 외에는 좋아했다가 금방 식는 것들도 많았어요. 애정이 사라지기 전에 어떤 방법이든 ‘소유’해서 남기는 것 같습니다.


정: 좋아하는 것들을 좋아하는 방식도 이기효씨의 일부같네요. ’이기효’로서 살아가는 원동력과 이것을 위해 지키는 데일리 루틴이 있나요?

이: 당연히 덕질이죠. 그리고 앞으로도 다양한 물건들을 수집하며, 그 순간에서 오는 각각의 만족감을 탐험하는 것도 저의 원동력입니다. 덕질과 수집을 하기 위해서는 건강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비타민 먹기와 선크림 바르기를 꼭 실천하려고 노력해요. 아, 최근에는 ‘피크민 블룸’을 시작하면서 버섯 사냥 3회를 꼭 하고 있습니다.


정: 지금까지 이기효씨의 취향 잘 들었습니다. 덕질과 수집으로 취향을 형성하고 계신 이기효씨는 어떤 방식으로 세상과 연결되고 있나요?

이: 취향을 공유하는 것에서 연결이 시작되는 것 같아요. 꼭 친구나 가족이 아니더라도 주변에 저의 취향이나 가치관을 공유하면, 종종 그분들이 일상에서 저를 떠올리고는 해요. 진형씨가 런던의 서점에서 젤다의 전설 만화책을 볼때마다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는 것처럼요. 누군가가 자연스럽게 저를 떠올리고 이를 통해 어떠한 행동을 하는 것이 저에게 닿을 때, 연결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 친구, 정진형 에디터의 고등학교 동창


 

이기효씨는 오타쿠이자 수집광으로서 재미있는 개성을 지니고 있네요. 이 친구는 저와 고등학교 동창이기도 합니다. 약 9년 간, 친구로서 다양한 취향을 공유했습니다. 이번에는 ‘정진형 에디터의 동창’ 이기효는 어떤 사람일까요?


정: 우리 서로가 어떤 친구인지 얘기해볼까요? 

정: 우선 저부터 시작하겠습니다. 학교에서 이기효씨를 처음 봤을 때는 아직 좋아하는 재료나 전공은 없지만 본인만의 확고한 미감이 있는 친구처럼 보였어요. 미술 시간에 만든 작품들을 보면 기효만의 스타일이 느껴졌거든요. 친해지고나서 쭉 지켜보니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집요하게, 다양한 방법으로 즐기는 친구였죠. 이런 모습을 보면서 예술가라면 무엇인가에 집요하게 몰두하는 것이 하나쯤은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학부때는 이 집요함을 반이라도 따라가보려고 저 나름대로 이것저것 시도해본 적도 있습니다. 


정: 그리고 이 집요함이 여행을 가거나 어디 놀러갈때도 종종 느껴지고는 했습니다. 피크닉을 갔을 때 전구 소품을 가져와서 밤하늘도 더 낭만적으로 즐긴다거나, 맛집에 가면 추천하는 새로운 메뉴를 꼭 먹어본다거나 하는 모습들을 보고 주어진 순간을 열심히 즐기려는 태도도 배웠어요. 작년에 혼자 파리에 갔을 때 짧은 일정에도 집요하게 시간을 내어 센 강 근처에 앉아 크로와상을 잼에 발라 먹은 적이 있었는데, 저도 기효처럼 낭만을 즐겨보자는 생각으로 그랬던 것 같아요. 잼 냄새를 맡고 날아온 벌에게 습격당해서 결말은 안좋았지만요.


정: 전시 보는 취향도 비슷해서 좋아요. 제가 좋아하는 김아영 작가님의 전시도 기효씨가 먼저 발견하고 같이 방문한 것이었는데, 이 때 봤던 전시가 나비효과처럼 저의 취향에 영향을 미칠 줄은 몰랐습니다. 여러모로 저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는 친구이자, 예술가의 자질이 넘치는 친구입니다. 이 외에도 평소에 연락을 자주하다보니 말투나 제스쳐가 서로 닮아가는 것 같습니다.


이: 정진형씨는 비슷한 점이 많은 친구입니다. 인생의 곡선도 비슷한 것 같아요. 가까이서 보면 다르겠지만요. 아, 부모님의 나이차이와 생년월일이 똑같고 같은 외동이라는 점이 특히 신기해요. 그리고미술관이나 갤러리 전시를 함께 보러 다닌 적이 굉장이 많은데, 구경하는 속도도 비슷하고 전시에 대한 감상을 깊게 나눌 수 있는 몇 안되는 친구라는 점이 특별합니다. 


이: 사실 고등학교 때 처음 봤을 때는 조금 모범생 이미지에 살짝 날카롭다는 인상이 있었어요. 친해지고 나서 지내보니 애착 곰돌이(매돌)가 있다거나, 어딘가 기묘한 똘끼가 있더라구요. 


이: 그런 동시에 이성적인 면에서 장점을 많이 봤던 친구이기도 합니다. 기분 상한 일이 있어도 스스로 갈무리하고 이것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받아들이는 모습들을 종종 보고는 했어요. 어떤 대상이든 자기 나름대로 분석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조리있게 이야기하는 것도 잘하는 것 같아요. 일상에서도 분석력이 좋아서 누군가의 말투를 흉내내거나 패러디할때마다 정말 웃기더라구요.


이: 최근에는 대학원들 다니며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들을 저에게 공유해줘서 그것도 고맙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해외 주요 미술계 소식이나 외국 미대생들의 작업 방식같은 것들을 종종 이야기해줬거든요.


이: 제가 취향을 공유하듯, 진형씨의 취향에 제가 영향을 받기도 했죠. 최근에는 카카오톡으로 봉골레 파스타 얘기를 자주 해서 저도 요즘 파스타를 자주 먹고 있어요. 원래 규칙도 몰랐던 야구 경기를 챙겨보기도 하구요.


정: 지난 9년간 함께했던 시간 중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이: 2022년에 용산 아이파크몰에서 자정에 ‘탑건 매버릭’을 보고 새벽 택시로 함께 이동하던 날이 있었어요. 한강대로와 강변북로가 쭉 이어진 길이었는데, 새벽이니 차는 막힘없이 달리고, 한강이 보이는 야경은 예쁘고, 에어컨 대신 열어둔 창문에서는 시원한 바람이 불고 있었어요. 머리칼이 흩날리면서 얼굴을 간지럽히는데, 영화 속에서 톰 크루즈가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는 마지막 장면이 Ost와 함께 떠올랐죠. 차만 탔을 뿐인데 이상하게 기억에 남아요. 진형씨도 자주 이야기했잖아요.


정: 맞아요 제가 뜬금없이 5번은 넘게 얘기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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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에서 보이는 한강 야경. 

출처: 직접 촬영

 

 

이: 이 외에도 재밌는 순간들 많았죠. 코로나 19때 특별 이벤트로 영화관을 대관해서 콘솔게임을 했다거나 같이 갔던 야구장의 하늘이 예뻤다거나. 알고 지낸 시간이 짧지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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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9로 영화관 운영이 어려워지자 한시적으로 진행됐던 대관 이벤트였다. 우리의 사진을 올리기 부끄러워 함께갔던 정진형 에디터의 애착 곰돌이 매돌의 사진을 올린다. 

출처: 직접 촬영

 

 

정: 대학을 졸업하고 각자의 길을 가고자 고군분투하고 있죠. 그동안 이기효씨는 스스로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이: 저는 대학과 대학원이 같아서 일상에서 크게 달라진 점은 못 느꼈어요. 그렇지만 대학원은 예술가가 되고자 하는 소수 인원이 작업에 대해 많은 피드백을 주고 받을 수 있는 환경이에요. 그래서 이전보다 제가 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나고 있어요. 작가로서의 정체성이 더 확고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정: 이기효씨의 친구들에게도 크고 작은 변화가 있겠죠. 저뿐만 아니라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함께 각자의 인생을 지켜본 친구가 있다는 것은 어떤 느낌인가요?

이: 우선 저희도 내년이면 10년지기인데, 비슷한 기간 동안 알고 지낸 친구들은 대부분 성향을 잘 파악하고 있는 것 같아요. 어떻게 것들을 좋아하고 어떻게 소통하는 사람인지에 대한 확신이 생기니까 더 편한 느낌? 아까 얘기했듯이 같이 추억할 것들도 많이 생기구요. 이게 성인이 되고 나서 형성된 관계보다 더 크게 와닿아요.


이: 반면 서로 만나면 여전히 어릴 때처럼 노는데, 동시에 현실적인 얘기들도 하게 되니까 여기서 오는 어색함이나 안타까움도 있죠. 우리 나이대가 특히 더 그런 것 같아요. 미래에 대한 걱정이 많을 때니까요.


정: 이기효씨는 오랜 시간 함께한 친구들에게 어떤 친구가 되어주고 싶나요?

이: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 까지는..? 부담스러워요. 그렇지만 언제든 일상을 편하게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주고 싶어요.


정: 10년 후, 우리는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을까요?

이: 딱. 알겠습니다. 지금이랑. 똑같은. 대화. 나눌겁니다. 다른거? 우리의 소속이 직장이나 다른 사회가 되는 것이겠죠.




그 친구, 예술가


 

이기효씨는 정진형 에디터에게 친구로서 좋은 영향을 많이 미쳤네요. 특히, 역할은 다르지만 예술계의 현장에 몸담고 싶다는 공통의 꿈이 우리의 관계에서 특별한 점이 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기효씨는 제 주변에서 가장 예술가스러운 친구인데요, 마지막으로 이 ‘예술가’로서의 이기효를 소개해보겠습니다.


정: 이번에는 ‘예술가’ 이기효를 소개해주세요.

이: 안녕하세요, 예술가 이기효입니다. 


정: 그게 끝인가요?

이: 제 원래 성격이 작업과도 이어지기 때문에 크게 다른 점은 없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 쿠팡에서 재료를 많이 시켜서… 스스로를 쿠팡 아티스트라고 부르고 다니긴 했습니다.


정: 이기효씨는 어떻게 예술가의 길을 걷게 되었나요?

이: 대부분 비슷할 것 같아요. 그림 그리는 것 좋아했고, 잘그렸고, 그래서 미대에 갔죠. 사실 제가 학부 전공을 그대로 살려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기는 한데, 원래는 점수 맞춰서 입학한 전공이었어요. 그래서 2학년까지는 살짝 방황했죠.


이: 그런데 3학때쯤 미적인 ‘취향’이라는 것을 스스로 발견하게 됐어요. 입체가 재밌더라구요. 결과물을 기대하게 되고,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은 작업들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피드백을 받으면 다음에 어떻게 적용해볼지 열심히 고민하기도 하구요.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작업을 하는 삶으로 먼 미래를 그리기 시작했어요.


정: 생각보다 구체적인 과정이 있었군요. 예술가 이기효는 어떤 작업을 하시나요?

이: 크게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일상의 특정 오브제들을 용도나 상황에 맞지 않는 공간에 배치해서 생기는 새로운 서사를 이야기해 보는 것입니다. 예시로, 의료 보조 기구들을 수집해서 저만의 의자를 만드는 작업을 했어요. 그리고 이것들이 특정 시간이 되면 동시에 작동하도록 했습니다. 각각의 기구들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한데 모아 작동시키면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공포심만 불러일으키죠. 이런 작업들을 지속해서 다양한 이야기들을 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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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ke over” (2024), 이기효, 의자, 스탠드 거치대, 전구, 네뷸라이저, 스모그 머신, 가습기, 샤워기 헤드, 호스, 스테인리스 파이프, 가변크기. 

출처: 이기효 제공

 

 

이: 다른 하나는 디지털 공간에 대한 작업이에요. 우리가 현실에서는 어딘가로 이동하려면 시간을 들여서 A지점에서 출발하여 B지점을 거쳐 목적지에 도달하는데, 디지털 공간에서는 좌표만 있으면 시공간을 건너뛰어 바로 이동할 수 있잖아요? 이 전제를 시작으로 작업의 폭을 넓혀보고 있어요. 화면에서 단서를 찾아서 다음 좌표로 넘어가는 간단한 게임을 만들어본다든지, 2차원의 화면에 픽셀의 조합으로 구성된 게임 속 공간을 현실에 구현하는 작업이라든지 말이에요. 


정: 졸업 전시때 봤던 작업들이 떠오르네요. 영감을 얻기 위해 평소에 전시를 많이 보러 다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좋아하는 전시나 작가가 있나요?

이: 특별히 찾아다니는 전시나 작가님은 없고, 다양하게 영감을 받으려고 해요. 다만 일관된 취향은 있습니다. 우선 스케일이에요. 평면이든 입체든 봤을 때 압도되는 느낌의 작업이 좋아요. 평소에 예산이 있으면 압도적일 정도로 큰 작업을 해보고 싶거든요. 두번째는 스토리에요. “젤다의 전설”처럼 서사가 있는 문화콘텐츠를 좋아하다보니 이야기가 있는 작업에 흥미를 느낍니다. 이 두 가지가 합쳐져서 전시 공간에 들어섰을 때 다른 세계에 온 듯한 느낌을 받으면 기억에 오래 남는 것 같아요.


정: 예술가 이기효는 어떤 방식으로 영감을 얻으시나요?

이: 수업을 들을 때 딴짓을 하면 생각나요. 농담이고, 무언가를 떠올려야 한다고 노력할때보다 일상에서 갑자기 결과물의 형태가 번쩍 떠올라요. 결과물이 생각나면 스케치를 하고, 재료를 고르면서 달려가는거죠. 그래서 일상을 열심히 즐겨야돼요.


정: 예술가 이기효가 가장 중요시하는 작가로서의 연구는 무엇인가요?

이: 저는 특정 재료를 원하는 형태로 가공하는 작업보다 기존의 오브제를 활용하는 것을 더 좋아해요. 그래서 뻔하지 않는 새로운 것들을 찾으러 다니는 것이 저의 연구입니다. 그리고 아까 전시 취향에서 이야기했듯이 공간이 주는 분위기를 중요하게 생각해서 작품에 맞는 설치 방식도 지속적으로 찾아가고 있어요. 


정: 그렇다면 그 연구를 이어갈 작가로서의 소신이 있나요?

이: 노동력이든, 생각이든 뭐든 작가가 고민을 한 흔적이 보이는 작품을 하고 싶어요. 유행하는 소재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고유의 스타일을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정: 지금까지 작가로서의 이기효를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이기효씨에게 문화예술이란 무엇인가요?

이: 문화예술이요? 저한테 그 질문은 ‘우주란 무엇인가’에 가까워요. 사실 정의에 따라 제 방에 있는 모든 것이 문화예술이 될 수도 있죠. 동시에 제가 세상에 영향을 미치고 싶은 방식이기도 해요. 그래도 한 번 정의해보자면 ‘개인이 취향을 형성하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닐까요?


정: 이 답변도 저와는 다른게 재밌네요. 달라서 더 인상깊습니다. 나중에 또봐요!




앞으로의 10년을 함께하길 바라며


 

지금까지 오타쿠이자, 저의 고등학교 동창이자, 예술가인 이기효의 인터뷰를 진행해보았습니다. 한 사람이 여러 방식으로 소개될 수 있다는 점이 참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기효의 평소 취미였던 수집과 게임이 오브제들을 수집하고 디지털 공간을 탐구하는 작업으로 이어지는 모습도 흥미로웠습니다. 제가 본받고 싶었던 일상을 즐기는 태도도, 예술가의 영감으로 승화하고 있었네요. 인스타그램 kkkihyooo에 방문하면 이 친구의 더 많은 작업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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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on Knights”(2022), 이기효, 네온 와이어, 목조상, 용 장식품, 폴리에스터 천, 적삼목, 실, 스팽글, 플라스틱 체인, 금속 링, 비즈, 단추, 레이스, 가변크기. 

출처: 이기효 제공

 

 

인터뷰를 하며 친구로서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사실, 기고문에는 다 담지 못했지만 저도 질문에 함께 대답하며 대화에 가까운 인터뷰를 이어갔더니 3시간이 훌쩍 지나더라구요? 그 시간 동안 이번 인터뷰가 아니었다면 나눠보지 못했을 이야기들도 풀어가며 서로를 다시금 이해하기도 했습니다. 재미있었습니다!


내년이 되면 저는 이기효씨와 10년지기 친구가 됩니다. 앞으로 다가올 10년의 시간도 함께하기를 바라며, 예술가 이기효의 성장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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