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자들이 자신만의 ‘영감의 공간’을 소개한다. 저자들 대부분이 ‘창작’이라 일컫는 일을 하고 있기에 영감이 예술과 밀접한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지만, 오히려 책을 읽고서는 창작자 (책의 표현을 빌리면 작업자)를 더 넓게 느끼고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감이 비단 창작자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쉼과 함께 사람이기에 필요한 것이라 명명하며 이에 대한 다양한 시야를 앤솔로지로 모아냈다.
가장 일상적인 공간에서 영감 찾기
소개된 공간은 각자의 사정과 성향에 따라 사람이 많거나 홀로 있는 공간으로 나뉜다. 성질은 다르지만 힘을 채울 공간보다 숨을 한번 고를 자신만의 비빌 언덕에 가까운 공통점이 있다. 비교적 붐비는 공간 또한 방해받지 않는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점은 다르지 않다. 일상에서 영감을 얻거나 짧은 환기를 하는 공간은 많겠지만 꼭 하나를 뽑자면 의외의 장소들이 튀어나온다. 작가 원도는 꼼꼼하고 이해되는 이유로 올리브영을 소개한다.
["소리에 예민한 나에겐 카페에서 울리는 식기의 소음조차 전기톱 소리만큼이나 크게 들렸다. 길거리는 정처 없이 계속 걷는 게 싫어서 탈락. 난 심한 평발이라 오래 걷기가 어렵다는 그럴싸한 핑계도 있다. 다이소는 생활에서 미묘하게 부족한 부분을 채울 만한 물건이 뭐가 있는지 불을 켜고 찾는 분위기가 팽배한 탓에 나까지 괜히 긴장되니까 후보에서 제외. 그리하여 내 선택은 올리브영이 되었다는 다소 엉성한 결말이다."]
일상에서 뭐가 꼭 마음에 드는 것은 찾기 어렵더라도 신경을 애매하게 흩트리는 것을 찾기는 꽤 쉽다. 하지만 그게 너무 사소하기에 딱 꼬집어 무엇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하기가 애매할 뿐이다. 그렇기에 우리의 영감을 찾아가는 여정은 종종 귀찮고 까탈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원도 작가의 올리브영처럼 아주 일상적이고 왠지 공감되는 지점에서 웃음이 비집고 나온다. 지하철역 앞 올리브영에서 살 것이 없는데 한 번씩 들어가 구경하는 시간. 새하얀 조명 아래 일상적인 물건을 사고, 일상적인 생각을 하며 자잘한 것들은 잠시 튕겨내는 공간이 종종 있지 않은가.
정지한 공간에서 변화하는
영감을 주는 공간에서 진공 상태의 일시적인 모습을 띠고 있기도 하지만 그 공간에서 변화하는 모습에 새로운 시야를 얻을지도 모른다. 윤이나 작가가 소개한 폴대가 그렇다. ‘계속하면 잘하게 되지는 않더라도 할 수는 있게 된다는 것’을 확인하고자 좋지도 재밌지도 않던 폴댄스를 계속한다는 건 마음은 충분히 이해해도 하기는 쉽지 않게 들린다. 하지만 못하고, 재미가 없더라도 꾸준히만 한다면 조금씩 하게 된다는 것을 스스로 보여준다. 당연한 사실인데 돌이켜보면 그 못함과 재미없는 중 한 가지도 견디지 못해 읽어보지 않은 세계가 얼마나 많을까. 그다지 좋아하지 않던 공간을 좋아하게 되는 건 어렵다. 더군다나 그곳에서 무언가를 해야 한다면 더 그렇다. 그렇지만 윤이나 작가의 폴대는 반전의 공간이다. 그저 그렇고 좌절을 주던 공간이 나만의 무대가 되는 순간. 오히려 더 큰 애착과 미래가 함께하는 공간이 된다.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에서 여성의 독립과 예술을 위해 연 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했다. 여성의 독립성과 주체성을 강조하였지만, 이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잘’ 살아보려는 이들에게도 물론 필요한 것들이다. 자기만의 방, 그보다도 나를 채울 수 있는 장소가 있다는 것. 그게 현대사회에서 가장 사소하고도 사치스러운 순간 아닐까. 붐비는 지하철과 버스, 어디를 가도 많은 사람 혹은 비어 있더라도 마음 한편 뉠 수 없는 공간에는 정이 붙지 않는다. 금방 이 장소를 떠나 나를 촉촉하고 따뜻하게, 시원하고 산뜻하게 품어줄 어딘가를 찾게 된다. 그래서인지 책에서 소개하는 공간은 영감을 떠나 잘살아 보려는 노력과도 궤를 같이한다. 공간이 주는 영감은 그런 성질과는 전혀 비례하지 않기에 각자의 기준과 마음은 더욱 정교해져 길을 찾으려는지 모른다. 혹시 아는가. 다이소에서 예상치 못한 영감을 받을지.
당신은 어디서 영감을 얻나요? 라는 질문은 당신은 어떻게 살아가나요? 라는 질문에 가닿는 수많은 길 중 하나같다. 어디서 어떻게 충전하는지, 자신을 얼마나 알고자 애쓰는지. 그 수많은 가능성과 공간이 한 사람의 세계로 향한다. 책을 읽으며 나는 어디서 영감을 얻고 있나. 스스로 질문을 던졌다. 그 답을 알기 위해서는 일단 밖으로 나가봐야 한다. 직접 느껴보면서 내가 어떤 작업자가 되고 싶은지 더듬더듬 찾아갈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책에서 다루는 작업자는 창작자나 직업인 등 다양한 단어로도 설명이 된다. 하지만 나는 유독 말하는 ‘작업’이라는 단어의 감이 좋다. 무언가를 만들고, 정리하고, 움직일 그 모든 가능성을 포괄하는 세계를 상상하게 되기 때문이다. <영감의 공간>을 읽을 독자들에게도 이 힘이 전달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