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방을 구경하는 일은 흥미로운 일이다. 그 사람이 어떤 취향의 옷을 즐겨 입는지, 어떤 로션을 바르고 어떤 화장품으로 얼굴을 가꾸는지, 무슨 책을 읽고 있으며 쉬는 시간에는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지를 알게 되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바깥에서 보았을 때만으로는 결코 알 수 없는, 좀 더 내밀하고 세세한 것들을 알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본다면 그 사람의 공간을 구경한다는 건 다른 말로는 그 사람의 깊은 마음을 구경한다는 뜻이 될 수도 있겠다.
그런 의미에서 타샤 튜터의 집을 구경할 수 있는 이 책, <타샤의 집>은 무척이나 반가운 책이였다. 타샤가 직접 무언가를 만들어 자신의 집을 꾸미는 것을 즐겨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우리는 생생한 묘사와 감각적인 사진이 함께 첨부 되어 있는 이 책을 읽으며, 타샤의 집 안을 구경하고, 그녀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삶을 살아갔는지를 느낄 수 있다.
“타샤는 유용한 쓰임새가 없는 장신구나 물건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바구니가 야채를 부엌으로 옮기거나 빨래를 빨랫줄로 내가는 데 쓰이지 않는다면, 바구니를 짜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늘 용도에 맞게 바구니를 사용하고, 따라서 바구니를 소중히 여긴다.”
타샤의 집을 구경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지점은, 그녀의 집을 이루고 있는 물건들이 모두 제 기능을 똑똑히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 집 안의 모든 물건들에게 쓰임이 있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물건은 그저 관상용일 수도 있고, 필요 없지만 버리기에는 아까워서 둔 물건이 있거나, 그냥 예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툭 던져 놓은 물건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타샤는 아무 이유도 없이 물건을 만들거나 집을 꾸미지 않는다. 그녀에게는 이 물건을 어느 용도로 사용할 것인지에 관한 생각이 확실하게 있다. 물건들은 단순히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라, 실용적인 면을 생각해서 디자인되고 제조된다.
나는 타샤 튜터의 이러한 태도가 좋았다. 내 공간을 꾸미는 것에는 그 무엇보다도 내 생각이 가장 주요하게 작용한다. 만약 내가 확실한 주체성과 취향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 방은 혼란스러워 보일 것이다. 방 안에서 내 모습을 찾을 수 없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처럼 자신의 가치관대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골라 공간을 채운다면 어떠한가. 그 공간이야말로 나를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장소가 되는 것이다. 타샤는 그것을 잘 알고 실천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타샤는 어둠이 내린 후에는 수채화를 그리지 않는다. 그녀는 해가 지면, 난롯가에 앉아 장난감을 만든다. 근처에 놓인 베틀에는 작업 중인 파란색과 흰색 담요가 걸쳐져 있고, 물레도 타샤가 짬을 내주기를 기다린다. 새로 만든 옷 한두 벌은 찬사를 받을 만한 자리에 의기양양하게 놓여 있다.”
타샤에게는 일 년의 계절마다, 하루의 시간마다 하는 일이 정해져 있다. 타샤는 가을이 되면 사람들을 불러모아 애플사이다를 만들고, 9월이 되면 감자밭에서 감자를 캐고, 아마를 수확할 때가 되면 섬유를 길들여 직접 천을 짠다. 무엇을 어느 시간에 해야 가장 마음에 드는 결과물을 받을 수 있는지 아주 잘 알고 있다. 이것은 타샤가 오랜 세월 동안 모아 온 지혜이자, 자신이 사랑하는 것으로 자신의 공간을 채우기 위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타샤 튜터의 집 안을 구경하며 자신이 사랑하는 것으로 집을 가득 채우는 것에 대한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언젠가 나도 내가 좋아하는 꽃이 심어진 화단을 바라보며, 포근한 소재의 담요를 둘러싸고 따뜻한 허브차를 한 잔 마시고 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한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상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