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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볼 때면 박하사탕의 오프닝 장면이 떠오른다. 기차가 터널을 지날 때 보이는 그 희미한 빛.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일본 감독 중에서도 가장 많이 필모를 본 감독일 것이다. 워낙에 낸 작품이 많기도 하거니와 그의 작품 중 아쉬웠던 작품이 있을지라도 모든 작품이 하나같이 마음에 와닿은 순간이 있기에 정말 애정하는 감독이다.

 

그 감독의 데뷔작이라. 아마 같은 초창기 작품이라 그런지 원더풀 라이프와 상당히 닮아 있다. 삶과 죽음을 다룬 주제도 그렇고 그 영화의 시각적 톤이 매우 유사하다. 내가 굉장히 좋아하는 그 특유의 톤이다. 요즘 일본 영화에선 도저히 느끼기 힘든, 마치 이는 옛날 한국 영화 특유의 필름과 유사하게 느껴진다.

 

최근작들과 이 초기작을 비교해 보니 상당히 영화의 분위기가 달라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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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영화가 필름에서 디지털로 바뀐 점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지는 거겠지만. 이는 마치 봉준호의 살인의 추억과 기생충을 비교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다.

 

그들이 영화를 대하는 태도, 스타일은 여전히 남아있겠지만 그 초기작의 향수가 마음속을 사무치듯 휘저어놓는다. 이런 감독들이 한 번만 더 예전의 환경 속에서 영화를 찍는다면 무언가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는 일을 상상해 본다.

 

이 작품은 상실의 아픔을 다루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하마구치 류스케의 드라이브 마이 카가 상당히 많이 떠올랐다. 그 역시 아내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많은 혼란을 겪는다.

 

‘그럼에도 살아야 한다.’

 

결국 그들은 그렇게 남겨진 채로 살아가야만 한다. 그들의 죽음에 명백한 이유라도 있으면 차라리 찝찝함이 덜 할 텐데 하루아침에 어제와 같은 일상을 보내던 이가 오늘 자살을 택했다면.  직접 그 이유를 물어보고 싶어도 죽은 자이기에 물어볼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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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여태껏 봐온 고레에다 영화 중 가장 톤이 정제되어 있고 차갑게 느껴진다.  그 특유의 푸르스름한 색감도 그렇고 대사가 거의 없고 원경에서 단지 등장인물들을 바라만 볼 뿐이다.

 

그래서 그런지 다케시의 영화가 유독 많이 떠올랐다. 하나비라던가 키즈리턴. 그 피아노 선율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서도 바흐의 음악이 나오지만, 이 영화에선 아마 기존에 있는 곡이 아닌 새롭게 작곡된 곡이 나온 거 같은데 모든 곡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렇게 절제된 작품에선 음악이 갖는 힘이 다른 영화보다 매우 큰 것 같고 그래서 필요성 또한 큰 것 같다. 내용은 정반대이지만 다카시 감독의 오디션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 주인공이 오디션 속 가녀리고 참한 여성의 실루엣과 닮아 보여서였을까. 영화 특유의 냉담한 톤도 비슷하게 느껴졌다.

 

이 영화는 어떤 결론을 내는 영화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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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브 마이 카는 그나마 마지막 엔딩은 이 영화에 비하면 희망적이라 볼 수 있다. 힘차게 앞으로 나아간다는 느낌을 받았으니까. 그러나 이 영화는 일상에 적응하는 듯 보이는 주인공을 초중반 부에 배치하고 중후반부부터는 다시 마치 옛 생각에 잠긴 듯 여전히 과거 속에서 헤메이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뒤 가장 절정인 장면은 바다 앞에서 주인공이 재혼한 남편에게 왜 아직도 자신의 남편이 자살했는지 모르겠다며 여전히 과거의 그 미결된 기억은 끄집어내 영화가 끝나기 직전에 관객으로 하여금 그 찝찝함을 증폭시키게 한다.

 

그 말에 남편은 자신의 아버지 이야기를 하며 모호하면서도 어떤 의미가 담긴 말을 하지만 그 말이 과연 도움이 되었을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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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어떤 말을 해도 결국은 죽을 때까지 그 의문은 해결되지 못한 채 그냥 살아갈 뿐이다. 그게 가장 남겨진 이의 고통이자 슬픔일 터. 비슷한 주제를 다뤘지만, 드라이브 마이 카와 이 작품의 차이는 그런 남겨진 이의 남은 삶에 대해 다루는 태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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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작품을 그렇다고 마냥 비관적으로 보긴 그렇다. 결국 아내는 재혼해서 다른 남편과 살아가고 있고 엔딩 또한 그들의 가정, 아이들을 바라보는 두 아내와 남편의 뒷모습으로 끝나기에.  이 역시 앞으로 남겨진 삶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에 가까울지 모른다.

 

다만 큰 차이는 드라이브 마이 카의 그 희망은 마치 차를 몰고 화창한 날 드라이브 할 때의 그 희망차고 산뜻한 듯한 엔딩이었다면 이 영화의 엔딩은 주변이 어두컴컴하고 그 가운데 문틈으로 햇살이 들어와 어둠 속 빛이라는 희미한 희망의 느낌이 강하게 든다.

 

이 영화에선 그런 빛이 상당히 많이 나온다. 터널 입구를 통해 들어오는 빛, 어두운 방 안에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빛, 캄캄한 도롯가에 켜진 가로등 불빛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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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이와 달리 유독 희망찬 느낌이다. 결국 이 영화 역시 희망을 말하는 듯한데 그 희망은 결국 어둠 속에서도 꿋꿋이 희미하게나마 빛을 발하는 희망의 불빛인 것 같고, 그 불빛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남겨진 이들의 이야기인 듯하다.

 

희망과 슬픔은 어쩌면 평생의 동반자인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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