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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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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6월이다. 2025년 6월이 되었다. 내가 시간을 시간으로서 받아들이지 않아도, 추상적으로 따지자면 햇살이 흘러가는 그림자라거나 쉬지 않고 넘어가는 일력 등 나는 계속 시간과 함께 흐르고 있었다. 이 사실이 조금 무서울 때도, 기쁠 때도 있었다. 시간은 계속해서 흐르고 있는데 나는 제자리인 것 같기도, 혹은 시간의 흐름보다 더 빨리 뛰어야 하는 압박을 받기도 했다.

 

성인이 된 후의 내 시간에는 대학이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평일에 학교를 다니는 게 익숙했던 내게는 이십 대 초반엔 십 대의 연장선을 느끼게 해주었고, 중반에는 학습의 견고함과 혼란을 느끼게 해주었다. 대학에서는 사람들이 한 살만 차이나도 젊음의 척도를 날카롭게 다지니까.

 

같은 학과를 연달아 전공한 나에게 ‘왜 대학원이 아닌 대학교를 다시 온 건가요?’, ‘왜 같은 학과를 지망했나요?’는 단골 질문이 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모두가 짐작하는 그 답변이다. 동시에, 나는 울타리가 없는 사회인이 되는 게 두려웠던 것 같다.

 

이게 나의 성인으로서 첫 번째 알까기.

 

 

 

끈끈한 질림과 놓기 싫다는 두려움


 

본래대로라면 나는 올해 하반기에 4학년 2학기가 되어 학교를 다니지만, 공교롭게도 이번 학기가 나의 막학기가 되었다. 3학년까지 학점을 당겨 들은 덕분에 학점이 많이 남는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마음가짐에 작은 흔들림이 있었다. 내가 정말 이대로 졸업을 한다고?

 

내게 대학은 당연한 것, 그리고 막연히 졸업할 것이란 생각과 끈끈한 질림이 있었다. 동시에 대학교의 타이틀은 나를 보호해주는 견고한 울타리이자 대학교에서의 만남은 감사한 배움이었다. 감사한 인연도 많이 맺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생각이 있다. ‘나 이대로 졸업해도 되는 거야?’

 

이미 1학기 종강 시즌이기에 조금씩 강의의 마무리를 느끼고 있다. 극작이나 소설 등 수업마다 열심히 발화하고 있지만 마음 속 자리한 두려움은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인식한 대학교의 의미는 사람이 사회인이 되기 전 마지막으로 울타리 속에서 마음껏 혼나기를 결정한 공간이었다. 왠지 졸업하고 나면 영영 제대로 혼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이나 일상 속 잘못과 성장이 있더라도 그것을 나의 내면적인 성장까지 이끌어가기는 어려울 것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대학교는 내게 있어 하나의 여행이었다. 이기고 지는 승부를 할 수 없는 주제의 토론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공간, 이 사람의 친분에 관계 없이 그의 순수한 글만을 보고 비평하고 비평받을 수 있는 시간, 틀린 것과 다른 것을 인정하고 지식을 받아들이는 순간이었다. 8년이라는 긴 인연의 끝맺음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에 실감이 나지 않는다.

 

 

 

올바르게 잘 사는 법을 알려준 울타리


 

고등학교에서 삼 년 내내 배웠던 두 개의 질의응답이 있다. 한 국어 선생님을 복도에서 마주치면 두 가지 중 하나의 질의를 듣고 답변을 드려야 했는데, 학생들은 그 순간을 상당히 좋아했다. “너 지금 뭐하고 있니?”라는 질문을 받을 때면 나는 “죽어가는 중입니다”라고 답변해야 했다. 혹은 “부모님 어디 계시니?”라는 질문이 들어오면 “제 마음 속에 계십니다”라는 답변을 드렸다.

 

처음 이 일화를 접하는 주변인들은 신기하다거나 하나의 종교 같아 두렵다는 마음을 비췄다. 확실히 오해하기 쉬운 상황이었고, 이 선생님의 수업을 듣기 전의 학생들은 무서운 이미지라며 두려움에 떨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수업을 받게 되면 선생님께는 국문법뿐만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며 필요한 생각이나 마음 속 철학 등을 배울 수 있었다.

 

지금 뭐하고 있니, 에 관한 답변은 언어의 길이에 비해 꽤나 깊은데,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은 유한하니 그 시간을 헛되이 쓰지 않기로 다짐하는 의의가 숨어 있다. 마찬가지로 부모님에 관한 것은 늘 마음 속에 모시고 잇으니, 낳고 길러 주신 부모님이 보고 계신다는 생각으로 항상 행동과 생각을 올바르게 가꾸자는 데 의의가 있다.

 

이후로 이 두 질문에 불만을 가지는 학생들은 없었다. 이 국어 선생님은 ‘종례 시간’이라는 도서를 집필한 김권섭 선생님이시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10년이 되어가는 지금, 선생님께 자주 연락을 드리지는 못하지만 그 가르침은 현재의 나와 맞닿아 있다. 매년 뵙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과도 이야기를 할 때면 고등학생 때의 감사한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고등학교와 대학교의 은사님들 덕분에 알게 된 것들. 그 중 하나는 마음이 풍족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무엇이든 결과가 단순할수록 어렵게 다가가는 학자나 사람들이 있지만, 나는 단순하게 살고 싶기에 이렇게 이야기한다. 학교에서 배운 성품 덕분에 잘 사는 법을 올바르게 일깨우는 중이라고.

 

 

 

20년짜리 챕터, 그 이후


 

나의 학교라는 20년짜리 챕터 하나는 이렇게 끝이 난다. 나는 이제 온전한 사회인이 되어 불안정한 사회 속 두 발로 버텨내야 할 것이다. 주변의 사람이 있어 괜찮다는 이야기는 무겁다. 그들 역시 불안정한 흐름 속 시간을 무게로 느끼는 중일 테니까.

 

그래도 나는 사회라는 넓고 삭막한 환경에서 나라는 사람의 시공간을 개척하고 싶다. 여기에선 시간이 조금 가벼워요, 충분히 고민하고 삶의 순간적인 답을 정하세요. 라 할 수 있는 공간. 여행이 끝났다는 건 삶 속 새로운 여행을 시작했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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