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좋아하는 유튜버의 ‘갓생’ 영상을 보았다. 꾸준히 유행하고 있는 ‘That girl‘ 챌린지였는데, 해외에서 언급한 언어 자체로서의 댓 걸은 어려웠지만, ‘내가 행복하면 됐지!’라며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는 영상이 멋지게 다가왔다. 그리고 내가 볼 때엔, 그 유튜버 역시 충분한 ‘댓 걸’이었다.
"That" girl?
다만 댓 걸 챌린지가 등장했던 이유와 현재의 유행성은 조금 동떨어진 것은 아닐까 우려되었다. 여기에서 칭하는 That girl이란 규칙적인 생활을 통해 외면과 내면의 나 둘 다를 가꾸어 진취적인 삶을 꾸려낸다는 데 의의를 두는 걸 뜻한다. 현대인들이 이 댓 걸을 꾸준히 이행하기엔 출퇴근이나 삶의 피로도 등의 이유가 있어, 댓 걸을 며칠만이라도 실행하는 게 ‘댓 걸 챌린지’인 것이다.
여러 챌린지를 보며 댓 걸에 도전한 사람들 대부분은 하지 않던 운동을 하고, 독서하거나 일기를 쓰며, 또 평소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기상했다. 이로 인해 새로운 피로를 얻었지만 주체적인 ’나‘를 알아갈 수 있어 뜻깊었다고도 한다. 물론 이 규칙성과 생활 속 ’낯섦‘을 통해 새로운 ’나‘를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엔 동의한다. 그렇지만 기존의 ‘나’다움과 다른 방향으로 진행된 챌린지여도 괜찮을까? 댓 걸을 추구하며 정작 나라는 자아를 놓칠 수 있겠다는 생각.
나 역시 댓 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내가 추구하던 삶의 어떠한 모습들이 현재의 ‘댓’에 꼭 들어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되고 싶었던 댓 걸은 이러했다. “6시 반에 기상하여, 아침 산책을 하고, 오전과 저녁에 독서하며, 개인 공부를 일곱 시간 이상 꾸준히 하는 것.” 물론 이 사이엔 나의 학교 생활과 여러 일도 포함이었다. 시간 상 여유가 없을 때를 제외한 휴일로서의 댓 걸이었고, 나는 이 나만의 댓 걸에 실패했다.
우선 나는 아침보다 밤이나 새벽의 효율이 더욱 좋은 사람이었다. 저혈압과 저혈당이 있어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 개운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독서의 경우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 여러 곳에서 전자책을 대출하여 읽고, 교보에서 정기적으로 도서를 주문하던 터였다. 이건 내 일상에 큰 반동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있었던 것에 규칙을 적용하니 나에겐 불규칙으로 느껴지는 아이러니함이 있었다.
챌린지는 실패, That은 성공!
이럼에도 내 댓 걸은 멈추지 않았다. 아침 기상도 실패, 아침 산책도 실패라면 개인 공부를 더 열심히 해보자! 였다. 하지만 내 평일과 주말은 이미 나만의 루틴이 형상화돼 있었다. 댓 걸 챌린지가 내게 맞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 건 토요일. 나는 아침에 일어나 애인을 만나기 전 한 입시생의 과외 파일을 들여다보고 있었고, 햇빛은 이미 따사롭게 방을 비추고 있었다. 이것으로 충분했다. 나는 확실히 나만의 댓 걸 챌린지에 실패했고, 내 삶의 루틴을 지키는 덴 성공했다. 이는 댓 걸 챌린지가 잘못되었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챌린지의 유형을 ‘나‘에 맞게 재구성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나는 새로운 댓 걸을 만들었다. 이전에 내가 되고 싶었던 댓 걸은 정말 ’되고 싶은 나‘였을까? 하는 의문에 의해. 새로운 내 댓 걸의 지표는 이러하다. ’매일 아침과 저녁, 다이어리를 사용하기.‘, ’일주일에 한 번씩 좋아하는 장미향 바디 스크럽을 사용해 샤워하기‘, ’일정이 너무 많은 날엔 20분 더 일찍 일어나기. 그리고 공복의 아침엔 커피 대신 애사비 마시기‘ 같이 정말 사소한 나만의 습관을 차용한 것들.
나만의 댓 걸은 점점 나 자체가 되고 있었다. 이런 나만의 습관을 유튜브 등의 SNS에서 말하는 댓 걸 챌린지라 할 수 있을까. 너무 개인적인 습관들의 정형화라 차마 그럴 수는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이런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댓 걸의 that의 의의 변형 없이 습관을 바꾼 나처럼, 정형화된 댓 걸을 실패했다고 해서 삶을 바꾸지 못했다는 슬픔을 겪지 않길 바란다는 것.
사실 댓 걸을 한국의 현대인들이 전체적으로 따라하기엔 어려움이 있다. 기본적으로 나인투식스나 그 이상의 일을 감당하는 사람들은 점심 도시락을 싸거나 퇴근 후 운동에 다녀오는 것만으로도 생산성 있는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가, 나는 생뚱맞게도 요즘 방울토마토를 키우고 싶어졌다. 현재의 나는 새로운 댓 걸에 도전하지도 않고, 여전한 루틴으로 일주일을 해내고 있지만, 내가 없는 반나절의 내 방을 방울토마토라는 세입자에게 무료로 내어주고 싶은 마음이 든 것이다. 내가 아는 댓 걸엔 방울토마토 키우기 같은 게 존재하진 않지만.
그럼에도 그 의의 속 내면 가꾸기가 있다면, 퇴근 후 집에 돌아가는 내게 방울토마토가 있다는 마음가짐을. 하교 후 지옥철을 타는 내게 방울토마토라는 걸음걸이를 건넬 수 있다. 그러니까, 방울토마토가 있어도 여전한 이야기.
여러분의 마음 속 댓 걸이나 댓 보이나, 일상적 루틴만큼 나 스스로를 돌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나는 내 내면을 방울토마토를 통해 꾸준히 가꾸고 싶다. 여러분이 꾸미고 싶은 ‘나’는 무엇인가? 중요한 것은 내 내면을 솔직하게 보수하고 지지하는 것. 어색하지만 점차 나를 사랑하는 시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