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일을 하는, 돈을 버는 나에 취해 있던 시기가 있었다. 전업 노동자가 아니었지만, 시간을 쪼개 2~3개의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간 내내 브레이크가 없는 채로 계속 달리고 있었던 것 같다. 빨간 광역버스에 술 취한 아저씨, 야근한 직장인, 집에 가는 청소년과 한데 앉아 있는 내가 왜 이러는지 이해할 수 없는 한편, 돈을 번다는 사실에 뿌듯함을 과하게 쫓았다. 과로와 수면 부족을 왜 갓생의 기준으로 여기는지 종종 의문을 가졌지만 쓰러져 잠들고 일어나면 다시 생활을 이어 나가느라 그 답을 생각해 볼 시간을 지나쳤다. 그래서 "일의 말들'을 읽으며 그때와 지금, 완전히 달라진 일에 대한 관점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번아웃이 진짜 무서운 건, 일하느라 자신을 태워 없애면서도 일만이 나의 쓸모를 증명하는 방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예전의 내가 일을 스스로 멈추지 못하고 무언가가 강제로 나를 멈춰 주길 간절히 바랬던 이유 또한 ‘일하지 않는 나’라는 정체성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쓰임을 하고 싶다는 욕망에 기대어 어느 순간부터는 과로조차 관성적으로 해나가게 된다. 몸이 축나고 나서야 반강제적으로 일을 멈추고서야 저자의 말처럼 일하지 않는 나에 대한 가능성을 인정할 수 있었다. 한 사람만큼의 몫이 곧 일을 하고 돈을 버는 것으로 결부시켜 버리는 단순한 사고회로가 이제는 무섭기도 하다. 경제 활동을 하지 않으면 쓸모없고 도태된다는 우리 안의 인식은 결국 나에게로 돌아온다. 노동자가 아닌 나를 받아들이지 못한 것처럼 말이다. 시간이 흐르고 이전과 다른 생각으로 살기 시작하면서 일은 너무 중요하면서도 짜증 나는, 애증의 화두가 되었다.
일의 모순
책의 부제는 가뿐한 퇴근길을 만드는 감각이다. 드라마 세브란스의 설정처럼 일과 나의 경계가 반짝하고 바뀌었으면 할 정도로 우리의 노동은 쉬이 끝나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을 하고 돈을 벌지만, 그 “일하기” 자체에 대해서는 잘 말하지 않는 것 같다. 일을 빨리, 잘하는 방법은 공유하지만 정작 일과 나를 잘 양립하는 방법과 제도는 여전히 부족하다. 안전하게 삶을 살아갈 자유를 우리 사회에 조금 더 많이 요구하고 싶다. 그래서인지 일과 노동을 크게 가려 말하지 않으며, 내재된 차별을 그렇게라도 지우지 않는 지점이 책을 읽는 마음을 한결 가볍게 만들어 줬다.
일의 말들에서 저자가 말하는 일 또한 그렇다. 저자는 파트타이머, 정규직, 파견계약직, 프리랜서, 개인사업자를 모두 경험하면서 다양한 고용의 형태를 설명한다. 그가 일의 기쁨과 슬픔에 엮인 이야기를 풀어내는 모습은 부제 그대로 '가뿐한 퇴근길을 만드는 감각' 자체이다. 하루의 가장 긴 시간동안 일하는 사람들 중 일을 못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이왕 하면 잘하고, 최소한 피해는 끼치지 않겠다는 다짐을 체득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출근도, 일도 힘든 순간은 자주 있다. 고민에 고민을, 모순을 거듭하며 일과 부수적인 것들에 모순을 피할 수가 없다. 입에 풀칠하며 살자 하다가도 돈을 많이 벌고 싶기도 하고, 노동 환경에 대한 근본적인 분노가 차오르다가도 인생 지사 마음대로 되는가 하며 담담해지기도 하는 모든 충돌이 오히려 책의 중요한 지점이다. 모두의 인생이 다르지 않음에서 오는 위로와 작은 공감이 모여 우리는 더 나은 퇴근을, 궁극적으로는 더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게 된다.
그런 건강하고 정당한 노동으로써의 의미에서 저자는 가짜 노동에는 선을 긋는다. 계속해서 무언가를 업데이트하고 업무 외 시간에 일을 생각하고, 할 일을 끝내도 동료와 상사의 눈치를 보느라 일하는 퍼포먼스를 하는 것 말이다. 실제로 일하는 것 외에도 사회생활이라는 말로 들어가는 힘들 또한 일에서 빼먹을 수 없는 요소이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 효율적이고 싶어서 오히려 비효율적으로 변하고 있는지 모른다.
일의 기쁨과 슬픔
그리 넓지 않은 주방에서 떡볶이 집 사장님이 자신만의 리듬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주문이 들어오면 조리를 시작하고, 동료들에게 필요한 작업을 부탁하고, 길 쪽으로 열린 창을 통해 아는 얼굴들에게 반가운 인사를 건네고, 완성된 음식을 담아 손님들에게 경쾌하게 날랐다. 그가 고유한 방식으로 일하고 움직이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덩달하 기분이 좋아졌다. 누군가 하는 일이 그의 몸에 새겨지고, 일과 사람이 하나가 되어 특정한 리듬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는 것이 신비로웠다.
일을 말하면 서글프고 답답한 말들이 우수수 튀어나오지만, 분명 일에서 오는 긍정적인 순간들도 말하고 싶다. 함께 일하면서 긍정적인 힘을 뿜어내는 사람들을 보면 늘 궁금하고 부러웠다. 자신을 잘 갈무리하다 못해 주변 사람들에게조차 좋은 힘을 새겨주는 이들은 볼 때마다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그들의 노동환경은 무언가 다를리가 있을까, 비슷하게 힘들고 오히려 고될지도 모른다. 책 속에서 소개된 동네 떡볶이집 사장님의 모습도 그렇다. 고유한 방식이 자연스럽게 배어나오는 모습, 사실 정말 원했던 일의 모양이었다. 저자가 보여주는 일들도 그렇다.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의 가치를 알고 또한 본인의 일상 속 소중함 또한 알고 있다. 일을 하고 동시에 일상 또한 잘 꾸리고 싶은 마음, 그걸 욕심보다는 건강함이라고 부르자.
책을 끝날 무렵 결국 노동의 범주가 더욱 넓게 인정되고, 어떤 일을 하는 누구나 안전함과 가뿐한 퇴근을 빌어주는 모두의 일을 응원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런 사회가 되기 위해 수많은 일의 말들을 떠들고 손잡아야 함을 실감한다. 노동이 다루는 문장과 이야기는 일을 하지 않아도 공감할 수 있다. 모든 매체에서 모두가 일을 하고 그것에 대해 말한다. 아이들이 회사=힘든 것이라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일이 힘들지만, 오히려 사회적 효능감을 얻기도 했던 내게는 일찍이 너무 많이 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고, 결국 그 편견이 굳어져 노동에 계급을 따지게 되는 것이 아닐지 우려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이렇게 솔직담백한 한탄과 생각이 소중하다.
불과 며칠 전인 5월 19일, SPC삼립 시화 공장에서 한 노동자가 끼 사고로 사망했다. 잇따른 사망사고를 마주하며 우리는 정말 건강한 사회와 일터로 나아가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그들을 지킬 수 있는, 지킬 수 있었던 방법을 무수히 생각하고 추모하고 싶다. 그리고 소비자이자 노동자로서 분노하며 안전을 요구하는 것이 응당 받아들여지기를. 연대하고 추모하고 정말 건강한 일의 말들이 넘쳐나기를 소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