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잘 읽고, 더 좋아하게 되는 방법은 생각을 갈음하고 소개하는 방법이 최고인 듯하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내게 첫 서평이란 학교 숙제로 꾸역꾸역 써낸 이 시작이었고 책을 좋아하는 것과 별개로 서평을 쓰고 읽는 일과는 멀게 느껴졌다. 이후 글을 조금씩 쓰기 시작하고서 정말 좋아서 기억 속에 오래 두고 싶은 책들을 잘 남겨두고 싶었다. 여러 번 시도를 해보기는 했지만, 서평의 형식에 자꾸 맞추려는 무의식이 <서평가 되는 법>에서 정의하는 서평과는 영 딴판인 글들을 썼지 않았는지 생각한다. 이 책에서 정의하는 것은 서평의 개념뿐 아니라 서평가가 되는 자질, 서평을 쓰는 태도 같은 직업인으로의 접근이다. 오랜 기간 서평을 쓸 뿐 아니라 출판인들을 '비평 연대' 를 통해 연결하가고 있는 저자 김성신이 자신의 경험을 써내려갔다.
서평가 되는 법
많은 사람들이 서평과 평론을 혼동하기도 한다. 아마 그 기저에는 서평 또한 자격이 필요하고 전문적인 분야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 아닐까 싶다. 또 서평이라는 단어가 독후감과 달리 주는 가볍지만은 않은 느낌이 있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나 역시 내가 쓰는 서평은 '진짜' 서평은 아니지 않나 하며 소극적이고 멋쩍어했다. 그러면 '진짜' 서평은 무엇일까. 책을 읽으며 그 편견과 모순을 찾아낼 수 있었다. 저자가 내내 강조하는 건 서평에는 절대 자격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서평은 누구나 할 수 있는 활동이며 다양한 경로로 서평가가 된 이들을 조명한다. 하지만 동시에 강조하는 것은 책과 서평을 존중하는 마음 자체이다. 그의 말처럼 서평의 본질은 책에 대한 사랑과 공공성 유지이다. 끊임없이 자기 검증을 하고 책을 소개한다는 신선한 마음을 유지한다는 것. 그게 서평가가 되는 유일한 관문이지 않나 싶다. 그래서 이번 유유 출판사의 신간 “서평가 되는 법”을 받아 읽었을 때 참 반가웠다. 서평가의 일과 업계의 흐름을 냉철하게 보면서도 책에 대한 이야기에서만큼은 사랑이 중요하다 단번에 정의하는 모습이 무엇보다 강렬했다.
직업으로 책을 권하는 일은 어떨지 궁금해하며 책을 읽던 중 머릿속을 강하게 내리친 문장이 있었다. “좋은 글은 좋은 표현이기보다 좋은 생각이다.” 그동안 서툴게 써낸 몇몇 글들이 문득 떠올랐다. 보통 할 말이 없으면 말이 길어지고 구태여 화려한 표현을 쓰면서 텅 빈 속을 숨기기에 급급했다. 개인적으로 좋아한 글은 머릿속에 자리 잡힌 문장을 시작으로 비교적 생각의 폭을 빠르게 넓혀갔던 것들이었다. 충분히 정리된 생각이 있다면 좋은 표현은 자연히 따라오고, 그렇지 않아도 좋은 글임은 충분히 느껴진다. 이 당연한 사실을 문장 하나를 만나고서야 떠올렸다.
독자를 허무하지 않게 하는 용기
저자 김명신과 남정미 서평가의 채팅 형식의 서평 시리즈 "북톡카톡" 연재의 과정이 소개된다. 요즘에는 채팅 형식으로 여러 사람의 대화와 생각을 담는 인터뷰, 대담 등이 많지만 서평이라는 당시라면 조금은 모험적이고 너무 가벼워 보이는 우려가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코미디언 출신인 남정미 서평가 특유의 유쾌하고 신랄한 특성을 '카톡'이라는 형식에 담아낸 결과물은 무척 시원했다. 도서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에 대한 두 사람의 대화 중 인상 깊었던 부분이다.
정미: 이제 얘기해 줘야 하잖아? 너희가 차별에 찬성할 수밖에 없게 된 건 자기 계발을 제대로 하지 않은 너희의 잘못이 아니라고. 사회의 잘못이라고. 그리고 '인류는 세상을 바꾸면서 진보해 왔다'고. 그러니 이제 그대들이 바꿔 볼 수도 있을 거라고…. 그렇게 우리가 말해 줘야 하지 않을까?
정미: 나는 지방대 다니면서 먹고 노는 게 전부였지만, 명문대 졸업한 후로 줄곧 놀고 있는 친구한테 밥 살 정도는 되는 거 같아. 그렇다면 이건 건방진 하위 계급의 하극상인 겐가?
성신: ^^ 내 나이쯤 되니까 세상에서 제일 한심한 놈들이라면 그건 '세상에 태어나서 제일 잘한 일이 좋은 대학 들어간 일' 달랑 그거 하나뿐인 것들이더라고. 바로 그런 놈들이 세상을 망치지. 참 예외 없이 무능한 놈들인데 어찌 된 건지 세상 망치는 일에는 엄청 유능하더라고.
독자를 김 새게 만드는 글은 생략하는 글이다. 특히 사회현상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너무 정치적으로 되고 싶지 않고, 누구의 비위도 상하게 하지 않고 싶어 하는 글을 만나면 아무리 좋은 의도라 해도 마음에 남지는 않는다.저자는 이 서평 시리즈의 반응이 기대보다 긍정적임에 놀란 듯하지만, 형식만 익숙하고 가벼워 보일 뿐 담는 메시지는 충분히 강력하게 전달됐다. 솔직하고 유쾌한 서평을 만날 때마다 좋은 글의 효과를 톡톡히 누린다. 마치 뜨끈한 보양식을 먹은 것처럼 그 때만큼은 두려움은 잦아든 채, 생생하고 솔직하게 쓸 힘을 얻는다. 서평에게도 이런 효능이 있다.
모두에게 연대와 연결이 필요하다.
여덟 번째 장에서는 "서평으로 양성한 1990년대생 지식인 연대"라는 제목으로 저자가 구성한 비평 연대 프로젝트가 소개된다. 직업 서평가들은 어떤 소속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인지 나는 서평가란 무조건 혼자 일하는 고독한 직업으로 인식해 왔다. 책 앞뒤로 서평가들의 글을 읽으면서도 서평가는 늘 한 명의 단독자로 시각화되었다. 하지만 비평 연대는 서로 간의 경쟁 없이 서로의 든든한 편이 되어주는 단어 그대로 '연대' 모임이다. 서평을 쓰는 기술은 형태와 방법이 정해져 있지 않다. 하지만 나만의 방식을 찾아가고 배우는 과정에서 충분히 헤매고 타인의 경험을 들을 수 있는 자리는 서평가뿐 아니라 모든 사회인에게 필요한 경험 아닐까 싶다. 나만의 것이 뺏긴다기보다는 점점 융화되고 알아가는 그 과정 자체를 책에 담긴 프로젝트와 여러 서평가에 대한 글로 느낀 듯하다. 그래서인지 그가 소개하는 여러 서평가의 모습은 서평가라는 명사보다 동사와 형용사로 더 잘 설명된다. “책 읽는 북한 작가 김주성” “서평가로 데뷔한 명랑한 독자 김윤정"처럼 각자 특화된 부문이 있다는 건 비교의 대상이 아닌 공통된 정체성을 가진 동료의 느낌으로 다가온다. 경쟁과 비교에 더 익숙한 사회에서 무언가 연대한다는 마음은 경력이 꽤 있는 서평가의 너른 마음 같기도 책을 사랑해야 할 수 있는 서평가의 둥그런 모양 같기도 했다. 결국 모든 일에는 서로 편이 되어줄 수 있는 동료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생각으로 나누는 이야기는 즐겁지만, 그것을 소개하는 일이 쉽지는 않다. <서평가 되는 법>에서 강조하는 서평가 정신은 화려한 글과 영업이 아니라 책에 대한 존중과 애정이다. 저자의 그 진심이 독자를 서평가 정신으로 서서히 동화시킨다. 궁극적으로 서평가라는 직업과 한 사람이 혼자 쓰는 서평은 결코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좋은 책을 소개하고 싶다는 마음, 그 기초가 있다면 너도, 나도 서평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처음 책을 시작했을 때는 서평가의 입장에서 기술된 좀 더 직업의 면모를 예상했다. 하지만 오히려 돋보인 건 진심으로 좋은 책을 추천하고 함께 공명하고자 하는, 깔끔한 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