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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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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 7일 수요일부터 11일 일요일까지, 국립발레단의 <카멜리아 레이디> 한국 라이선스 초연이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막이 올랐다. <카멜리아 레이디>는 작년 라이선스 초연을 올렸던 <인어공주>의 안무가 존 노이마이어의 작품으로, 아시아 기준으로도 초연이다. 발레 <카멜리아 레이디>는 『삼총사』와 『몬테크리스토 백작』으로 유명한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의 아들인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fils, 프랑스어로 아들)의 『춘희』(1848)(La Dame aux Camélias, 직역하자면 ‘동백꽃 여인’)를 원작으로 하며, 원작의 내용과 결말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설정을 추가하고 압축한 것이 특징이다. 소설과 이를 바탕으로 한 발레의 제목은 이 작품의 주인공인 마르그리트의 별명이다.

 

쇼팽의 피아노 음악을 바탕으로, 3막으로 구성된 <카멜리아 레이디>는 코르티잔 마르그리트가 결핵으로 죽은 뒤 집 안의 모든 물건들이 경매에 부쳐진 이후 그 곳을 찾아온 귀족 청년 아르망이 등장하는 현재 시점과 아르망의 과거 회상을 넘나드는 구성으로, 마르그리트 고티에의 유품으로 남은 소설 『마농 레스코』를 샀던 서술자 ‘나’에게 찾아온 청년 아르망 뒤발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원작 소설의 다양한 시점 전환과 선형적이지 않은 시간의 흐름을 반영한다. (아르망의 이야기를 듣는 주체인 원작 소설의 서술자 ‘나’는 발레에서 등장하지 않는다.) 실제로 국립발레단이 공식적으로 발표한 <카멜리아 레이디> 시놉시스에도 따로 현재와 과거 시점이 표기되기도 한다.

 

반주 역시 기존의 오케스트라의 조화로 이루어지는 다른 발레와 달리 쇼팽의 피아노 곡 위주로 구성되어, 피아노 연주가 주가 되고 2막에서는 다른 오케스트라 악기 구성이 사용되지 않기도 한다. 또한 공연의 주된 선율이 되는 피아노는 무대 위와 오케스트라 피트의 메인 피아노로 이원화되어 있는데, 1막과 2막에서는 군무진과 같은 의상을 입은 피아니스트가 무대 하수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기도 한다.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피아노 소나타, 프렐류드, 왈츠 등 다양한 곡이 알맞게 활용되어 쇼팽의 곡을 듣는 즐거움과 쇼팽의 곡과 발레의 어울림을 보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드라마 발레의 근대적 개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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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발레는 고전 발레의 전형적인 아름다움이나 동작, 형식에서 자유로우며, 서사와 서정성이 서로 끈끈하게 연결되며 캐릭터의 내면 세계가 드러나야 하는 것이 중점이 된다. 드라마 발레인 존 노이마이어의 <카멜리아 레이디>는 기존의 드라마 발레의 거장들인 존 크랑코와 케네스 맥밀란이 시도하지 않았던 모던한 무대 세트와 무대 배경, 현대적인 기법과 연출을 활용한 작품이며 작품을 구성하는 철학 역시 기존의 드라마 발레 작품들이 전제했던 인간관을 넘어서려는 시도가 나타난다. 이는 작년에 한국 초연된 작품인 노이마이어의 <인어공주>가 기존의 디즈니 식의 희망찬 결말이나 가공된 동화와 달리 현실에 대한 부정성과 보편적 인간성(인류애)에 대한 불신을 기반으로 시인과 시인의 분신으로 재현되는 인어공주라는 취약한 이의 삶의 조건을 탐구한 것과 연관된다고 볼 수도 있다.

 

<카멜리아 레이디> 속에서 유일하게 깊은 내면을 지닌 존재는 아르망과 마르그리트인데, 이는 어느 서사에서든 주연의 특권이기도 하다. 이러한 내면이 있는 존재, 내적 갈등을 하는 주체로서 마르그리트와 아르망은 드라마 발레의 현대적인 면모를 보증한다. 그들이 사랑을 확인하는 1막 ‘퍼플 파드되’의 시작 전 거울을 보는 마르그리트의 모습에서 거울이라는 소재는 자신을 성찰하는 매개체이자 외면과 구별되는 내면적 자아의 탄생을 반영한다.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퍼플 파드되는 마르그리트의 내면과 유일하게 소통하는 존재로서 아르망의 등장과 왜 마르그리트가 아르망을 순수하게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인지 그 개연성을 낭만적으로 풀어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외적 조건들이 변하며 이어지는 서사의 전개 속에서 그들의 내면의 갈등과 속단, 오해는 그들의 운명을 비극으로 몰고 간다. 마르그리트의 치열한 고민을 고려하면, 3막 무도회에서 아르망이 마르그리트에게 지난 날의 댓가라고 돈을 주는 행위가 왜 마르그리트의 죽음을 가속화시키는 큰 상처로 남았는지 알 수 있다. 또한 전반적인 과정 속에서 마르그리트의 편지와 일기장 같은 요소로 남겨진 ‘기록’은 마르그리트의 내적 갈등의 부산물이다. 극이 암전되지 않은 채로 마르그리트의 일기장을 가진 하녀 나니나의 등장으로 시작하고, 하녀 나니나가 아르망에게 마르그리트의 일기장을 주는 장면이 작품의 끝인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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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극 내에서 마르그리트와 대비되는 존재는 극 속 마르그리트의 친구이자 같은 코르티잔인, 가스통 리외의 정부인 프뤼당스 뒤베르누아다. ‘코르티잔’이라는 겉보기에는 화려한 외양 속에 있지만 후원을 통해 살아가는 삶의 취약성을 지닌 위치 속에서, 프뤼당스는 친구 마르그리트가 죽은 뒤 경매로 나온 물건을 몰래 가져가기도 하는 속물성을 지녔다. 단순히 마르그리트의 지인이자 세속적인 캐릭터인 뒤마의 원작 속 중년 여성이었던 프뤼당스(prudence, 신중함이라는 본래의 뜻과는 언어적 아이러니다)는 <카멜리아 레이디> 속에서 내면과 외면의 일치라는 강력한 속물성이라는 본질을 유지한 채 가스통 리외의 정부라는 설정과 매력적인 외모, 그리고 (마르그리트의 임종을 지켰던 친구인 원작 속 줄리 뒤프라의 캐릭터성이 결합하며) 마르그리트를 향한 우정이라는 설정이 붙어 더욱 입체적인 캐릭터로 주조되었다. 결핵에 걸려 죽음이 가까워져 온 마르그리트를 염려하고 진심으로 걱정하면서 동시에 그가 죽은 이후 타인을 의식해 눈물을 닦는 척하고 찻잔을 가져가는 프뤼당스의 모순된 캐릭터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원작 속 프뤼당스의 속물성이 단순히 여성의 부도덕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세속성/속물성과 물질적 요건은 생존과 연결된 주요 키워드이기도 하다. 따라서 ‘내면이 있는 존재’이자 취약한 존재인 마르그리트가 세속적 삶과 정신적 삶의 모순을 이기지 못하고 죽은 것과 달리, 코르티잔 여성으로서의 취약성을 공유하고 있지만 그러한 모순을 인지함에도 이를 전략적으로 수용하는 프뤼당스는 죽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프뤼당스의 모습이 극 중에서 매력적으로 그려지며 마르그리트와의 공통 조건과 차이 속에서, 도덕성의 판단에 개입하는 물질성, 즉 계급(신분)의 질서를 은폐했던 기존의 부르주아 도덕을 의문시하며 그 위선을 폭로하는 효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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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그리트와 대비되는 존재가 프뤼당스라면, 마르그리트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아르망과 대비되는 존재이자 그 둘의 관계에 개입하는 두 주체는 마르그리트를 후원하는 공작과 마르그리트에게 이별을 요구하는 아르망의 아버지 무슈 뒤발이다. 공작은 (마르그리트를 순수하게 짝사랑하는 식으로 극 중 재현되는 N백작을 제외하고) 원작 속 많은 후원자의 캐릭터성을 압축한 캐릭터라고 볼 수 있는데, 마르그리트를 자신의 ‘트로피’로서 전시하고자 하는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똑같이 결핵에 걸린 여주인공이 등장하는 오페라 <라 보엠>과 (이 발레와 원작을 공유하는)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영향을 동시에 받은 뮤지컬 <물랑 루즈>의 몬 로스 공작이 생각나는 이 캐릭터는 권위적이며 자연스럽게 체화된 귀족의 특권을 행사하는 존재다. 마르그리트에게 아르망과 헤어져 달라고 간청했던 아르망의 아버지 무슈 뒤발의 경우 실제 마르그리트의 모델이 된 마리 뒤플레시스와 뒤마 피스의 만남을 반대했던 원작 작가의 아버지를 연상시킨다. 아르망의 여동생의 결혼(상승혼)으로 인해 집안의 평판을 염려했던 원작의 구체적인 이야기는 극에서 나타나지 않았지만, 무슈 뒤발은 아들의 미래를 염려해 코르티잔과의 교제를 반대한 것이다. 무슈 뒤발은 마르그리트의 죽음 이후에 과거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카멜리아 레이디>의 결말은 마르그리트가 아르망과 만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원작의 결말을 그대로 살리면서, 고독과 허무함 속 비극성을 강조했다. 같은 원작 소설(「춘희」)을 배경으로 하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가 여주인공 비올레타(원작의 마르그리트)가 죽기 직전 알프레도(원작의 아르망)과 그 아버지를 만나 대화를 나누며 용서한 뒤 죽음을 맞이하고, <고집쟁이 딸>의 안무가로 유명한 프레드릭 애쉬튼의 단막 발레 <마르그리트와 아르망> 역시 마르그리트는 아르망의 품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반면 극 중에서 그의 곁을 지켰던 하녀 나니나도 부재한 상태에서 홀로 죽음을 감당하는 마르그리트의 마지막 모습은 크랑코 혹은 맥밀란의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의 죽음 속 숭고함도, 육체성을 초월한 영혼의 낭만성도 상실된 자리에서 존재하며 기존의 고전과는 구별된다.

 

 

 

강력한 상호 텍스트성, 극중극으로서의 마농 레스코와 데 그리외의 이야기


 

* <마농>의 줄거리 및 함의를 파악하고 싶다면 아베 프레보의 원작 소설 『마농 레스코』를 배경으로 하는 맥밀란의 발레 <마농>에 관한 기사를 참고하길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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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마 피스의 원작 소설에서는 아르망이 마르그리트에게 소설 『마농 레스코』를 선물로 주고 나중에 이 소설은 경매에 나오지만, 발레 <카멜리아 레이디>에서는 아르망과 마르그리트를 포함한 등장인물들이 발레극 <마농 레스코>를 보는 것으로 각색되었다. 마농 레스코의 이야기를 단순히 극으로 대하며 무용수에게 찬사를 보내는 다른 이들과 달리 마르그리트와 아르망은 그 이야기가 자신의 운명을 지시하는 텍스트인 것처럼 느낀다. 특히 마르그리트는 흠모자들에게 둘러싸인 마농의 모습을 보고 그의 삶을 경멸하는데, 마르그리트의 마농을 향한 혐오의 맥락은 바로 마농과 마르그리트가 닮았기 때문이다. 마르그리트가 마농이 자신의 다른 자아처럼 느끼고 마농을 통해 사치스러운 삶에 적응한 자신을 보고 있기에 자신의 취약성에 관한 방어기제로 마농에 대한 혐오를 표출하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점차 마농의 삶이 마르그리트의 삶에 침투하며 마르그리트가 무슈 뒤발을 만나거나 블랙 파드되 이후 아르망을 떠나야 할지 갈등할 때마다 상상의 존재로서의 마농이 등장한다. 즉, 마르그리트는 마농과 자신의 운명이 같다는 것을 예감하고 불안에 떠는 것이다. 실제로 발레 <마농>에서 매춘죄를 선고받아 머리카락이 잘린 채 끌려가는 여인들과 레스코의 정부가 마농의 운명을 암시하는 불안 기제인 것처럼, 마농은 마르그리트의 미래를 암시하는 존재로서 가부장적 연쇄의 구도가 성립한다. 실제로 죽음을 앞둔 마르그리트가 마농과 데 그리외의 환상을 본 뒤 추는 파 드 트루아에서 마농과 마르그리트는 강력하게 연결되어 있다. 마농과 마르그리트의 유사성 뿐만 아니라 데 그리외를 보고 불행한 운명을 직감하는 아르망 역시 마찬가지다. 결말 부근에는 마농이 죽고 홀로 남은 데 그리외처럼 마르그리트는 죽고 아르망 혼자 남겨지고 슬픔에 잠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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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그리트에게 코르티잔으로 표현되는 물질적으로 화려한 삶과, 아르망과 함께하는 순수한 삶이라는 두 갈래의 선택지가 있고, 그 속에서 고민하고 갈등하는 것 자체가 근대적인 것이다. 마농은 귀족 무슈 GM과 진정한 사랑 데 그리외라는 두 가지 표상 사이에서 줄타기하다 실패한 대표적인 존재인데, 마르그리트는 그러한 마농을 경멸하며 내면적 자아의 진정성을 원하지만 삶의 조건과 외적 삶이 그러한 마르그리트의 추구와 지향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마르그리트와 아르망의 행복은 무슈 뒤발과 공작의 개입으로 인해 일시적인 것이 되어버린다. 루이지애나의 늪지에서 도망자로서 방황하다 죽음이라는 비극적인 운명을 맞게 된 마농이 적어도 사랑하는 데 그리외의 품에서 죽은 것과 비교해보면 혼자 외롭게 죽은 마르그리트와, 마르그리트의 상처받은 모습을 마지막으로 그녀를 기억하고 마르그리트의 마지막을 지키지 못한 아르망의 삶이 더 비극적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마르그리트의 이야기와 마농의 이야기는 프랑스라는 배경 외에도 닮은 점이 많다. 질병으로 인한 죽음, 귀족과 어울리지만 귀족이 아닌 코르티잔 혹은 정부라는 삶의 불안함, 두 남자로 표상되는 삶의 두 선택지 등 마르그리트의 이야기 속에 문학적 표상으로서의 마농이 등장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마농>의 귀족인 무슈 GM처럼 <카멜리아 레이디> 속 다른 귀족들이 N 백작과 공작(마르그리트를 딸처럼 염려한 원작의 공작과는 차이가 있다) 등 이니셜로 표기되었거나 전체 이름이 나오지 않는 익명적인 존재로서 등장하는 것 역시 그 대표적인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다.

 

 

 

주목해야 할 안무와 새로운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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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멜리아 레이디>는 드라마 발레의 계보 속에서도 비교적 동시대성과 현대성을 지닌 드라마 발레다. 이 작품에서 존 노이마이어는 안무가이기도 하지만 연출가로서의 역량을 발휘해 고전 발레에서는 시도되지 않았던 여러 기법과 연출을 사용하며 원작 소설의 내용을 활용함과 동시에 자신만의 철학을 녹여 냈다. 현재 시점과 과거 시점을 넘나드는 플래시백 기법의 연출, 하수 앞쪽에 앉아있는 아르망의 아버지를 기준으로 한 현재와 과거라는 공간의 분할, 같은 ‘극중극’이어도 디베르티스망의 역할을 하는 고전 발레 <에스메랄다> 속 ‘다이아나와 악테온’, <파리의 불꽃> 속 궁중극으로 등장하는 신화 이야기와 달리 마농의 이야기가 담긴 극중극은 마르그리트를 비추는 거울의 역할을 하며, 마르그리트의 삶에 개입한다.

 

<카멜리아 레이디>는 드라마의 서정성과 서사성 속에서 펼쳐지는 감각적인 안무 역시 주목할만하다. 각각의 막에서 마르그리트가 입고 있는 드레스의 색상에서 붙여진 세 파드되가 대표적이다. 외로움과 불안을 느낀 마르그리트와 아르망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1막의 퍼플 파드되, 공작과의 관계를 끊고 아르망과의 관계를 공표한 마르그리트의 마음이 담긴 2막의 파드되, 이별 이후 마르그리트를 오해한 아르망이 자신을 찾아온 마르그리트에게 다시 마음이 넘어간 3막의 블랙 파드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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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의 감정선 외에도 1막과 3막의 복잡한 군무 동선과 무도회 장면의 연출 역시 돋보인다. 마르그리트와 아르망이 서로를 향해 감정을 쌓거나 분출할 때 다른 이들의 군무가 겹쳐지는 연출과 다양한 사건들이 병치되는 양상은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게 한다. 1막 무도회에서는 사람들 속에서 마르그리트와 아르망의 사랑이 발전되는 양상이, 3막 초반과 무도회에서는 아르망이 마르그리트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 선택한 올랭피아와 마르그리트를 후원하는 공작이라는 캐릭터 속에서 마르그리트와 아르망의 관계가 절정으로 치닫는 양상이 화려한 분위기 속에서 펼쳐지기에 대조의 효과를 느낄 수 있다.

 

무도회 장면과 극중극이 등장하고 오케스트라 반주가 활용되는 1막과 3막 대신 피트의 피아노와 무대 위의 피아노만 사용되는 2막은 무대 배경이 없고 세트만 활용됨에도 불구하고 그 정취를 느낄 수 있다. 특히, 목가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컨트리(country) 별장 장면에서는 무대 위 피아노와 함께 다양한 춤을 즐길 수 있다. 이 장면에서는 군무를 포함하여 마르그리트의 친구인 프뤼당스 뒤베르누아와 아르망의 친구인 가스통 리외의 춤이 분위기를 더욱 유쾌하게 만든다. 메인 피아니스트의 밀짚 모자를 가져가서 쓰거나 피아노 위에 올라 앉는 프뤼당스와 마편을 돌리는 가스통 리외의 춤, 베게 싸움과 말타기 놀이로 나타나는 흥겨운 분위기는 이 작품에서 유일하게 걱정과 불안 없이 행복한 마르그리트와 아르망의 모습과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의 드라마 발레, 국립발레단의 역량의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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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발레단의 레퍼토리 중 최근 공연되지 않은 마이요의 <로미오와 줄리엣>이나 혹평을 받았던 <마타하리>, 그리고 모호했던 크리스티안 슈푹의 <안나 카레니나>를 제외하면 공연될 수 있는 드라마 발레로는 존 노이마이어의 <인어공주>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처럼 드라마 발레가 오랫동안 공연되지 않고 고전 및 모던 발레로만 주요 레퍼토리가 구성되어 있던 상황 속에서 <카멜리아 레이디>의 공연은 현재 국립발레단의 행정과 역량을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라고 볼 수 있다. 수석 무용수들 중 대부분이 부상, 임신 등의 이슈로 무대를 떠나 있었던 상황 속, <카멜리아 레이디>에서는 드라마 발레의 필수 요소인 테크닉과 연기력의 균형이 충분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발레 <카멜리아 레이디>는 유니버설발레단의 <오네긴>(존 크랑코) 만큼 장기 레퍼토리가 될 수 있을까? 전 회차의 실질적 매진이라는 상황적 조건은 국립발레단이 세금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티켓 가격이 굉장히 저렴하다는 변수 속에서 가능했다. 그리고 외국인 무용수가 많은 유니버설발레단과 달리 가끔 오는 객원 주역을 제외하면 한국인만으로 조건이 제한되는 국립발레단의 특성 역시 또 하나의 차이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몸담았던 강수진 단장의 ‘인맥’에 의존한 초연 속 의상과 무대 세트 역시 대여로 이루어진 상황 속에서 <카멜리아 레이디>와 <인어공주>가 안정적으로 지속되는 장기 레퍼토리로 자리잡을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여러 조건들 속에서 가능했던 ‘아시아 초연’이라는 타이틀에 안주하지 말고 이번 공연을 기점으로 국립발레단의 단점과 장점을 정확히 판단하여 예술성과 대중적 수요 모두를 만족시키는 역량 개발과 안정적인 레퍼토리 구성을 위한 조건을 충족시키는 현명한 행정 운영이 요구된다.

 

 

* 사진 출처: 국립발레단 인스타그램,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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