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영화로 보는 케네스 맥밀란의 발레 '마농' [공연]

영국 로얄발레단 <마농> 메가박스 상영
글 입력 2024.04.09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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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 <마농>은 영국 로열 발레단의 케네스 맥밀란이 1974년 초연을 올린 작품으로, 아베 프레보의 소설 『마농 레스코』 (혹은 ‘기사 데 그리외와 마농 레스코’)를 원작으로 작곡된 쥘마스네의 오페라 <마농 레스코>를 기반으로 (같은 소설을 기반으로 푸치니 역시 오페라 <마농 레스코>를 만들었지만 둘은 다른 작품이다) 하고 있지만, 오페라 음악을 그대로 따오지 않고 오페라 음악과 쥘 마스네의 다른 음악을 조합하고 편곡해서 발레 음악을 구성했다. 줄거리 역시 발레에 맞게 각색하고 편집하여 전반적으로 유사한 흐름을 가지고 있지만 불필요한 부분은 삭제하고 구성했다. 2024년 현재, 발레 <마농>이 영국 로열 오페라 하우스에서 초연된지 50주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50주년 기념 공연이 2024년 2월 올라왔고, 여러 나라에 라이브 스트리밍 혹은 영상화된 작품이 상영되었다. 한국에서는 영화사 메가박스의 클래식 소사이어티 프로젝트의 일환인 <로열 오페라 스트리밍 시리즈> 중 일부로 상영되었다.

 

총 3막 7장으로 구성된 발레 <마농>의 캐릭터는 다음과 같다. 마농 (레스코), 그리고 그를 사랑하는 학생 데 그리외, 마농을 욕망하는 귀족인 무슈(Monsieur) G.M.(한국 자막에는 GM 혹은 GM 영감으로 등장), 마농의 사촌오빠인 레스코, 레스코의 정부(Mistress) 등이 주요 등장인물이다. 파리의 찬란하던 벨 에포크 시대를 배경으로 수녀가 되려고 파리의 수도원으로 향하던 소녀 마농은 나이든 귀족 GM의 눈에 들고, 잘생긴 청년이자 학생인 데 그리외와 사랑에 빠진다. 사촌 오빠 레스코의 출세욕망과 마농의 신분상승 욕망, 그리고 GM의 애욕의 공모로 마농은 애인 데 그리외를 외면하고 GM에게 향하지만, 마농과 데 그리외는 재회한 후 다시 사랑에 빠진다. 마농과 데 그리외의 계략으로 GM과 함께 하는 도박 게임에서 사기를 치다가 들키고, 그로 인해 싸움이 벌어진다. 모든 것을 알게 된 GM에 의해 마농의 사촌 레스코는 죽게 되고, 마농은 매춘죄로 머리카락이 깎여 다른 여성들과 함께 현재 미국의 영토인 루이지애나로 보내지게 된다. 루이지애나에서 간수에게 추행을 당하던 마농을 데 그리외가 간수를 칼로 찔러 죽임으로써 구하고, 결국 두 사람은 도망을 치다가 루이지애나의 늪지에서 마농이 죽게 되고 데 그리외가 오열하는 것이 전체적인 줄거리다. 이 과정 속에서 오페라나 원작 소설에서 나온 디테일한 내용, 예를 들어 데 그리외가 집안의 힘으로 혼자 풀려난 과정 등은 생략되었다.

 

 

 

드라마 발레라는 장르


 

발레 <마농>은 서사와 캐릭터의 감정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드라마 발레’다. 드라마 발레가 기존의 고전 발레와 다른 점은 고전 발레의 전통적인 형식을 탈피해 안무, 음악, 복장 등에서 전통적인 발레 작품과 차이가 있다. 주역 발레리나는 <백조의 호수> 같은 클래식 튀튀나 <지젤> 같은 로맨틱 튀튀가 아닌 하늘하늘한 재질의 의상을 입고, 3막에서 마농이 매춘죄로 인해 머리카락이 잘렸기 때문에 ‘숏컷’ 가발을 쓰고 나오는데 이 역시도 발레리나들이 헤어 망을 사용해 머리카락을 고정시키는 고전 발레 작품에서는 보기 어려운 스타일이다. 안무 역시 기존의 고전 발레의 기존의 질서를 엄격하게 지키기보다는 표현하고자 하는 장면에 따라 본능적인 몸의 언어에 충실하고, 발레리노가 발레리나를 들어 올리거나(‘리프트’) 지탱하는 동작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신선한 감상을 주기도 한다.

 

또한 아다지오 – 각 주역의 바리에이션 – 코다로 구성되는 그랑 파드되나 눈요기를 위한 조연들의 디베르티스망 같은 형식 없이 서사의 진행과 그 속의 서정성을 중심으로 줄거리가 흘러간다. 테크닉 자체도 중요하지만 감정과 심리 묘사 연기의 역량이 무용수들에게 요구되는 셈이다. 대표적인 드라마 발레로는 크랑코의 <오네긴>, 멕밀란을 포함하여 안무가들에 의해 안무된 <로미오와 줄리엣>, 케네스 맥밀란의 <마이얼링> 그리고 <마농>이 있다. 라이선스가 엄격하기 때문에 <오네긴>과 <로미오와 줄리엣>을 제외한다면 한국에서는 내한을 제외하고는 접할 기회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기 때문에 드라마 발레를 접할 수 있는 기회는 소중하다.

 

 

 

사랑과 탐욕 사이 감추어져 있는 것, 계급


 

파리의 화려한 벨 에포크 시대에는 항상 가난과 억압, 종속이 공존한다. 빈민과 죄수, 매춘죄로 인해 머리가 깎인 여성들의 모습은 1막의 무대에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동시에 이 억압은 젠더화된다. 레스코의 정부(Mistress)가 1막 초반에 다른 남성에게 추파를 던지다가 레스코에게 뺨을 맞고 밀쳐지는데, 무대 뒷편에 지나가고 있는 머리를 짧게 깎인 채 구속된 여성들 중 한 명을 알아보는 장면은 그 당시 사회상을 알려주면서 동시에 그 죄로 처벌받게 될 마농의 삶에 대한 암시로 읽을 수도 있다. 초반에 이어진 해설에서, 무대 장치인 검은 빛이 나는 붉은 천은 누더기(rag)에 가깝고, 이는 마농이 언제든 다시 가난(poverty)로 굴러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언급된다. 수녀원으로 가는 길에 만난 남자들로 인해 수녀-되기를 포기한 마농은 부귀하고 화려한 삶으로 갈 것인지 빈곤과 억압의 삶으로 갈 것인지를 결정하는 시작점에 있다. 결말 부근에서, 마농은 죽게 되면서 데 그리외와의 진정한 사랑은 지속되지 못하게 되고, GM을 통해 세속적 욕망을 성취할 길도 온전히 이루지 못한다. 사랑과 탐욕의 저울질을 능숙하게 해 모두 이루기에는 마농이 너무 어리거나 어리석었던 것일까?

 

 

 

이 영상화의 특이점


 

주목해야 할 지점은 영상화된 발레 <마농>이 상영되며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 대략적인 줄거리를 문외한도 다 이해할 수 있도록 두 명의 엠씨가 친절하게 다 설명해준다는 것이다. 또한, 본 공연이었으면 인터미션에 해당하는 1막과 2막, 2막과 3막 사이의 시간에 지난 줄거리를 잠깐 요약하고 관람 포인트를 소개해주고, 제작 비하인드와 무용수나 스태프들의 인터뷰를 보여준다. 인터뷰이는 주역 무용수부터 핵심 조연을 맡은 무용수, 오케스트라 지휘자, 연기 지도자, 의상 담당자, 무대 장치 담당자, 그리고 예술감독 등으로, 거의 전 영역에 있는 창작진들의 설명이 등장한다. 이 과정을 통해 한 공연이 무대에 오르기까지 어떠한 노력들이 필요하고, 어떠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지 그 창작의 과정을 청자가 알 수 있게 된다. 이러한 해설이 등장한다는 것은 로열 오페라 발레단이 선보이는 라이브 스트리밍만의 특징이다.

 

 

[이다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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