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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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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도리안 그레이’가 지난 3월 30일부터 오는 6월 8일까지 서울 종로구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하고 있다. 오스카 와일드의 장편소설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을 기반으로 새로 만들어진 창작 뮤지컬이며 이지나 예술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이 작품은 도리안의 아름다움에 매혹됐던 배질과 도리안을 통해 인간의 욕망 및 아름다움을 탐구하려 했던 헨리, 그리고 그들을 따라 쾌락을 추구하며 타락해버린 도리안의 삶을 담은 작품이다.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세 사람은 각자의 자리에서 파멸로 미끄러져 내려가며 고뇌하고 후회하면서도 아름다움과 쾌락의 마성에 빠져 허우적댄다.


배질은 도리안의 아름다움을 탐닉한다. 그의 아름다움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던 베질은 도리안에게 초상화를 그려 선물하고, 아직 순수했던 도리안의 영혼을 담아낸 초상화는 그의 아름다움을 담아 빛난다.


어느날 젊음과 아름다움이 한순간에 불과하다고 깨달은 도리안은 그림 속 자신이 본인 대신 추해지면 좋겠다는 소원을 빈다. 그는 정말로 늙지 않고 변하지 않는 외적인 아름다움을 갖게 되지만 그의 내면은 점점 타락해가며 오염된다.


배질은 도리안을 그의 친구였던 헨리에게 소개시켜준다. 죄의식 없는 쾌락을 이상으로 생각하며 아름다움과 미학을 탐구하는 헨리는 도리안을 쾌락의 세계로 이끈다. 술과 담배, 여자와 마약 등 금기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도덕적 속박에서 벗어난 삶을 가르친다. 그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욕망만 아니라면 쾌락을 추구해도 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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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도리안은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계획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도리안이 한때 사랑했던 한 배우 시빌 베인이 죽음에 빠진 후부터다. 도리안을 사랑했던 그녀는 그에게 외면을 받기 시작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고 충격을 받은 도리안은 이를 계기로 점점 더 추하게 타락해간다.


도리안은 각종 범죄와 페이퍼컴퍼니를 통한 사기나 불륜까지 가리지 않게 되고, 자살한 시빌 베인의 복수를 하려했던 샬롯 베인까지 죽이게 되면서 그의 영혼은 끝도 없이 타락해간다. 그의 내면에 존재했던 순진함과 아름다움은 온데간데 없고 그럴듯한 겉모습만 껍데기로 남는다.


불안정한 정서로 흔들리는 도리안은 그의 아름다움을 사랑했던 배질과 동성애에 빠지고,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본인의 추악함을 마주한 그는 배질과 함께 죽음을 택한다. 헨리는 망가진 그를 보며 죄책감을 느끼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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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을 둘러싼 욕망과 인간 존재의 면면들을 다루는 이 작품은 화려한 무대와 인터랙티브 영상 등 다양한 기술들이 어우러져 시각적인 만족감을 준다. 사교계의 화려한 파티 모습을 담은 배우들의 의상과 춤, 퍼포먼스는 작품의 배경을 부족함 없이 담아내고 작품의 서사와 감정선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


시빌의 동생 샬롯이 복수를 꿈꾸는 부분은 다소 설명이 부족해보였으나 서사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화려하면서도 화려함에만 치우치지 않고 인물의 감정선이나 인물의 동기를 충분히 담아냈기 때문이다.


특히 무대를 가득채운 조명과 장면에 맞게 시시각각 변하는 영상들은 압도적인 경험을 선사했다. 인터랙티브 전시에 가면 흔히 경험해볼 수 있는 방식이었는데 공연 안에 녹아들어 서사와 결합되니 시너지가 컸다. 과장을 조금 보태 살아있듯이 움직이고 상황에 따라 변하는 인터랙티브 영상이 마치 이 공연을 위해 개발됐다해도 납득할 수 있을 정도였다.


호불호가 있을 수 있으나 배우들의 노출이나 퇴폐적인 연출도 작품을 보는 별미였다. 다소 진지하고 어두운 측면이 있으나 풍부하고 화려한 연출과 무대장치, 인간의 본성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캐릭터와 서사, 그리고 공연에서의 기술의 적절한 활용방식까지 모두 경험하며 누릴 수 있는 공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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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도리안의 풀네임이 ‘도리안 그레이’라는 점에 주목해본다. 도리안은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다. 그저 타인의 영향을 크게 받으며 주변의 색에 쉽게 물들어버리는 ‘그레이’일 뿐이다. 그가 헨리에 의해 쾌락에 물들지 않았다면, 배질 말고 안정적인 기반이 되어줄 수 있는 인물들이 주변에 있었다면, 시빌이 죽음을 선택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그저 아름다운 모습으로 충실히 자신의 삶을 살아냈을지도 모른다.


그는 결국 환경에 쉽게 지배받는, 불안하고 불안정한 한 명의 인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가 가진 아름다움에 인간을 욕망으로 이끄는 마성이 존재했을지 몰라도 그것은 인간 삶의 한 단면에 불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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