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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정동극장의 2025년도 K-컬처시리즈 두 번째 작품 <단심(單沈)>은 고전 설화 ‘심청’을 모티브로 심청의 내면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일전에 관람했던 무용극은 스토리 이해가 어렵거나 연출이 난해한 작품이 대다수였다. 그 때문에 전통연희극이라는 익숙지 않은 장르의 공연을 관람하는 것은 도전이었지만, <단심(單沈)>(이하 <단심>)은 장르의 이해도가 매우 낮은 관객이 보아도 아주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1. 움직임이 언어가 되는 순간


 

<단심>은 판소리의 아니리를 듣듯 말로써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내 하얀 한복을 입은 심청과 검은 한복을 입은 심청이 차례로 등장한다. 특별한 무대 장치 없이 오로지 음악과 움직임만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무용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으로서는 대번에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것들이 이어진다.

 

흔히 봐오던 연극과 뮤지컬과는 달리 배우가 내뱉는 대사 즉, 언어라고 칭할 것이 없기에 모든 내용이 동작으로 표현된다. 이에 관객은 심청의 동작을 하나하나 뜯어보게 되는데, 동작 하나에 의미 하나씩 대응하도록 생각하기란 역부족이다. 그러한 이유에서 무용수들이 무엇을 표현하는지 명확하게 알 수 없는 찰나에 심학규가 등장한다.

 

심학규의 눈을 뜨게 해주고픈 심청의 마음과 그 고민의 소용돌이가 격한 움직임으로 표현된다. 이때 자꾸만 시선이 닿는 것은 무용수가 착용한 풀치마다. 정확히는 풀치마가 만드는 찰나의 곡선에 시선을 뗄 수 없다. 크게 움직일수록 치맛자락이 퍼지거나 휘날리는 정도가 커진다. 단순히 시각적으로 더욱 화려하게 만들어 줄 뿐만이 아니다.

 

무용수의 동작은 배역의 감정에 기반하고 그 움직임에 따라서 치마가 펄럭인다. 그 과정을 거치며 움직이는 치맛자락의 모양새가 마치 감정의 파장을 담고 있는 듯하다. 이에 관객은 대사가 없이도 전해지는 감정을 느낀다. 국악기가 쓰여 한국적인 소리를 담은 음악과 그에 맞춘 움직임, 그리고 치맛자락이 만드는 우아한 선이 한데 모여 ‘심청’의 이야기를 채운다. 대사가 존재하지 않는 부분을 채우고도 남을 전달력을 갖추어 관객에게 전한다.

 

또한, 그것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동작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짐작하게 된다. 이어지는 움직임 사이에 직관적인 동작을 찾을 수 있다. 마치 보디랭귀지만으로 소통하듯 관객은 무대 위 무용수가 건네는 말을 보게 된다. 시각장애인들의 잔치가 열리던 장면에서 무용수가 관객을 향해 손뼉 치라며 호응을 유도한다. 이해하기 쉬운 몸짓언어로 객석의 관람객과 무대 위의 무용수(혹은 그들이 맡은 역할)와 상호작용을 한다.

 

이러한 과정은 관객이 극을 더욱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대사라는 언어적 표현이 없는 극에서도 충분히 서사를 이해하고 인물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움직임이 말이 되고 언어가 되는 작품임을 체감하게 된다.

 

 


2. 작품을 완성하는 시노그래피


 

음악과 무용을 제외하고 <단심>을 이루는 가장 큰 요소는 ‘무대’이다.

 

무대 벽과 바닥을 채우는 영상과 이따금 등장하는 소품, 장치 등이 심청의 이야기를 완성한다. <단심>의 매력을 논할 때 ‘영상’을 빼놓을 수 없을 만큼 벽과 바닥을 메운 영상은 <단심>을 시각적으로 충만한 작품으로 만들었다.

 

<단심>은 바닥면의 연꽃 하나와 뒤쪽 벽면의 꽃나무 한 그루를 띄운 채 시작한다. 그것은 단순히 작품의 배경이며 극을 채워가는 것은 음악과 무용뿐일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심청이 인당수에 몸을 던지기 직전 벽과 바닥이 새카만 바다와 같이 변했고 일렁이는 파도에 생동감이 전해졌다. 파도가 마치 심청의 무거운 마음을 대변하듯 사납게 몰아친다.

 

이후에는 분홍빛으로 가득하고 해파리가 유영하는 영상이 벽과 바닥에 영사되듯 나타난다. 심청이 분홍빛의 화려한 용궁으로 오게 됐음을 알게 되는 것과 동시에 그 화려함 자체에 매료된다. 밝은 색채가 이루는 긍정적인 분위기에 따라 심청의 감정 변화를 예측할 수도 있다.

 

이렇듯 무대를 채운 영상은 단순한 배경을 넘어서 서사를 완성하는 필수 요소가 된다. 더불어 영상 속 흑백으로 표현되었던 물건들이 심학규가 눈을 뜨는 찰나에 색채 가득하게 변화하는 등 연출적 요소로 활용되기도 하며, 서사를 더욱 효과적으로 전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단심(單沈)>은 대사의 공백이 느껴지지 않는 작품이다. ‘무용극’이라는 것이 어떻게 서사를 담아내고 전할 수 있는지 알게 해주며 ‘전통연희극’이라는 정체성이 무엇인지 내포하고 있다. 무용수들이 끊임없이 보여주는 동작과 풀치마가 이루는 찰나의 곡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체감할 수 있다.

 

화려하면서도 적절한 시노그래피로 서사를 완성하고, 아름다운 무용의 진면모를 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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