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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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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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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아버린 단어 '청춘'

 

청춘이란 단어엔 고루한 면이 있다. 청춘에 부여되는 일관된 이미지 때문이다. 갖고 있을 땐 전혀 알아차릴 수 없으나 알아차리는 순간 손에서 떠나가는 단 한 장의 티켓, 영원히 그리워해야 할 과거의 어느 좌표, 어느새 나를 지나쳐서는 저 멀리서 간절히 구조를 기다리며 타오르는 분홍빛 신호탄.


그러나 불꽃처럼 타오르는 빛과 코 끝을 시큰거리게 하는 향을 내뿜는 청춘이란 향초엔 진실된 기억보다 미화된 기억이 더 많이 함유되어 있다. 현재를 뒷받침하기 위해 헐거운 과거에 윤활제를 바르고 기억을 채우는 게 인간의 방어기제라고 할지라도, 청춘에 내재된 노스탤지어라는 호르몬은 결국 뒤로 시선을 던지게 해, 최종적으로 보호하려는 현재를 소홀히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현대적인 청춘, 해피엔드

 

영화 <해피엔드>는 청춘 영화의 흔한 주제-사랑, 고뇌, 꿈, 저항, 우정-를 답습하지 않기 위해 새로운 요소를 하나 추가했다. ‘근미래’ 배경의 청춘. 영원히 과거여야 할 이미지가, 뒤에 놓일 이미지가 미래에, 앞에 놓이는 순간. 과거와 미래가 혼합되면서 청춘에서 노스탤지어의 잉크가 빠져나간다. 그렇게 청춘은 아름답지만은 않은 어느 한 시절이 되고, 이로써 청춘에 대한 적절한 응시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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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서 음악 동아리를 하는 우타, 코우, 아타, 밍, 톰(위 사진은 왼쪽부터 우타, 코우다). 그들이 다니는 학교는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들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톰은 미국의 피가, 코우는 한국의 피가, 밍은 중국의 피가 섞여 있고, 남학생 아타는 치마를 리폼한 하의를 입고 다닌다. 과거를 지향하는 청춘 영화와는 달리 <해피엔드>는 구성원부터가 현대적이다.


반면 학교 밖 사회(혹은 학교를 포함하는 사회)는 혼란스럽다. 지진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시기에, 이를 계기로 총리에 당선되려는 인물에 관한 뉴스가 떠돈다.

 

 

변화하는 시스템에 대한 그들의 저항

 

청춘 영화의 또 하나의 특성은 저항인데, 이 영화 속 청춘들은 사회가 견고하게 유지해온 낡은 규칙이 아니라, 변해가는 세상을 통제하기 위해 권력자들이 새롭게 만든 규칙들에 불응하고 저항한다. 경찰이 저마다 지참하고 있는 핸드폰의 얼굴 인식 기능으로 학생들을 검문하는 세상. 학교에 ai 감시 시스템이 도입되어 학교 중앙에 커다란 스크린이 걸리고, 교칙을 어기는 게 포착되면 자동으로 벌점이 부과되는 세상. 겪어본 적 없는 새로운 규칙에, 관객들은 영화 속 인물들의 저항의식에-굳이 청춘이란 필터를 거치지 않더라도-동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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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친구들의 우정은 음악으로 이어져 있지만, 그들은 음악으로 저항하지 못한다. 음악은 그들이 세상을 견디기 위한 하나의 임시방편, 그들만의 방처럼 보인다. 그들은 음악이란 방에서 잠시 쉬었다가 다시 사회에 내던져진다.

 

영화에서 주요하게 다뤄지는 인물은 불안 속에서 사회의 변화를 예리하게 포착하는 코우다. 코우의 그런 인식에는 동급생 후미의 영향이 적지 않다. 후미는 무서운 게 없는 사람처럼, 아니 잃을 게 없는 사람처럼 학교의 규칙과 사회의 규칙에 적극적으로 저항하며 총리 반대 시위도 나간다. 후미와 함께 선생들의 회식에 참석해서 사회문제를 알게 된 코우는 후미와 시위에 동참하는데, 지진이 일어난 순간 돌변한 경찰들에게 폭행 당하고 체포까지 당한다.


그들 부모가 호출되었을 때, 후미의 엄마와 코우의 엄마가 보이는 상반된 태도가 인상적이다. 후미의 엄마는 아이 편을 들지만 코우의 엄마는 무조건 애가 잘못했다며 사과하기 때문이다. 코우가 재일한국인으로 일본에서 신분이 명확하지 못해 대학 장학금 문제에 있어 교장에게 신세를 지고 있다는 사실이 두드러진다. 비일본계 사람들이 겪는 차별이 두드러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학생들을 감시하는 카메라.jpg

 

 

영화는 이처럼 새로운 시스템과 정책을 성급하게 도입한 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문제들을 정직하게 보여준다. 야구부 학생이 사각지대에 서 있던 코우가 내던진 담배꽁초를 줍다가 버렸다가 하며 감시카메라에 노출돼 벌점을 무더기로 얻어가는 장면은 시스템의 허점을, 자위대 군인의 특별 강연 때문에 교사의 지시로 다른 반으로 이동하게 된 비일본계 아이들이 수업시간에 교실 밖을 돌아다닌 걸로 감시카메라에 포착돼 단체로 벌점을 받는 장면은 시스템의 허점과 다양성의 함정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반(反)선택과 선택의 잔인한 공존

 

변화하는 사회에서 음악 동아리 친구들은 불응하고 저항하지만(음악 동아리실이 폐쇄되며 창고에 들어간 음악장비를 몰래 훔친다든지 하는 식이지만) 졸업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결국 이 사회 속에서 자신이 갈 길을 찾아가야 한다. 저항과 선택, 반(反)선택과 선택의 잔인한 공존. 그것은 청춘에서 미화를 걷어내면 드러나는 진실이기도 하지만, 갈등으로 점철된 생의 근본, 진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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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동아리 친구들은 각자 저항하다가 하나하나 선택을 하기 시작한다. 그중 선택을 가장 꺼리는 듯한 인물, 가장 내면을 들여다보기 어려운 인물이 우타다. 우타는 주위 친구들이 적극적으로 대항할 때 말리지는 않지만 거기에 동참하지도 않는다. 코우는 음악만 고집하는 우타에게 자신이 경험한 걸 이야기하면서 변화를 유도하지만 먹히는 것 같지가 않다. 그러나 자기 차를 망가뜨린 학생의 자수를 조건으로 학교 ai 시스템 폐지를 내건 교장의 발언에 뜻밖에도 우타가 자수함으로써 그 또한 선택을 내렸음을 친구들을 포함한 학교 구성원 모두가 알게 된다.


사실 이 마지막이 찜찜했는데, 코우가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어서다. 교장의 차에 장난을 치자고 제안한 건 우타지만 코우도 같이 모의했기 때문이다. 우타가 코우의 미래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한 이 선택(우타는 퇴학당하고 집에서도 쫓겨난다)이 정말 이들의 우정을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것일지.

 

 

우타를 불안하게 바라보는 코우.jpg

 

 

영화를 볼 때는 별 생각 없이 덤덤하게 봤던 것 같고, 감정이 고조되고 폭발할 만한 장면들을 보여주지 않는 연출이 신기하다는 생각만 했다. 총리는 어떻게 됐는지, 시위는 어떻게 되었는지 하는-학교 밖 사회의 모습이 나오지 않아서 조금 심심하다고도 느꼈던 것 같은데, 영화가 끝나고 난 후 영화 전반에 깔린 청춘 영화라기엔 장엄하고 혼란스러운 음악들, 망망대해 같은 미래에 빙하 같은 과거가 잠겨 녹아가는 모습을 연상케하는 음악들을 반복해 들으면서 생각이 조금씩 바뀌었다.

 

 

청춘을 정직하게 바라보는 태도란


청춘은 사람이 겪는 시절 중에 한 시절일 뿐이다. 단지 다른 시절과 다른 건, 청춘이라고 명명하는 건, 가능성이 가장 충만하면서도 모호성이 가장 짙은 시기여서다. 세상에 자신의 고유한 색을 처음으로 내보이는 시기, 세상에 자신의 향기를 퍼뜨리면서도 세상에 천천히 물들기 시작하는 시기. 그 시기는 겉보기엔 아름다울지라도 자세히 보면 그리 아름답지 않다. 지나갔기 때문에 더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고 더 그리운 것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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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나갔다는 특성, 가능성과 모호성을 제외하더라도 청춘은 사람이 겪는 모든 시절 중에 가장 특색 있다.

 

청춘의 재정의는 그 시절이 왜 특색이 있는지를 따져보면서 시작된다. 그때와 지금의 나, 나를 둘러싼 세상의 변화를 비교하고, 정확히 무엇이 지나갔고 무엇이 가능했으며 무엇이 모호했는지를 짚어나가면서.


이때, 과거의 감성에 젖어들기만 해서는 안 된다. 기억의 미화에 승복해서도 안 된다. 과거는 언제나 현재에 지는 것이다. 어떤 과거를 청춘이라 명명하고 되새기는 건 결국 그 과거로 현재를 돕기 위해서이므로, 잠시 뒤를 봤다가 다시 앞을 보기 위해서이므로, 현재의 나를 과거로 끌어당기는 감성과 미화의 침전물을 침착하게 걷어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뿐만 아니라 지금 누군가는 청춘을 그 시기의 어려움까지 포함해서 겪고 있다는 걸, 나 자신도 청춘이라 명명할 순 없더라도 감각하지 않으면 여지없이 지나가고 말 소중한 어느 한 시기를 지금 이 사회에서 보내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이런 태도로 임해야 청춘에 대한 적절한 향유가 가능하다.


한마디로 청춘을 아름답게 박제된 과거가 아니라 지금의 내가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고 나의 경로를 검토하기 위한 초심의 의미로 다시 써야 한다. 근미래 배경의 청춘 영화 <해피엔드>는 거기서 더 나아가, 과거로 고착되기 쉬운 청춘의 이미지를 근미래에 던져놓음으로써 청춘과 사회 전반까지 고찰하는, 청춘 고쳐 쓰기의 작지만 거대한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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