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런칭 포스터03_여름, 2007 꿈.jpg

 

 

<보이 인 더 풀>은 청소년기 꿈과 감정을 마치 물 한 방울에도 금방 흐트러질 수 있는 고요한 수면을 보이듯 담담히 지켜보는 영화다. 여기서 수영을 좋아하는 소녀인 석영은 원치 않게 도시에서 지방으로 이사를 가게 된다. 거기서 발에 물갈퀴를 가진 내성적인 소년 우주를 만나게 되고, 이 둘은 서로의 비밀과 꿈을 공유하며 가까워지며 유년 시절을 보내다 고등학생이 되어 다시 마주하며 다시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된다.

 

 

06.jpg

 

 

영화 상영 후 GV에서 알게 된 사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물갈퀴’가 원고 마감 직전에 기적적으로 떠오른 소재라는 것이었다. 이 영화는 원래 감독의 단편영화에서 시작되었다. 단편영화 시절에는 아직 물갈퀴라는 아이디어가 나오기 전이었으므로, 당연히 원래 우주에게는 물갈퀴가 없었을 것이다.

 

이 사실을 알고 적잖이 놀랐는데, 물갈퀴라는 소재가 이 영화에서 정말 중요한 상징을 의미하고 그렇기 때문에 영화의 핵심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GV의 내용을 곱씹어 보니 어쩌면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물갈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왜 그럴까?

 

그것은 이 영화가 물갈퀴를 가진 우주보다는 그것을 가지지 않은 석영에 무게를 두고 움직이기 때문이다. 해서, 이 글에서는 ‘가장 보통의 존재’인 석영의 박탈감과 그로 인한 상처, 그리고 환상을 통한 상처의 봉합을 그리고자 한다. 상당히 담담하고 서정적인 이야기다.

 

 

01.jpg

 

 

석영은 부모님의 이혼으로 도시에서 시골로 들어왔다. 처음부터 시골 생활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던 석영이지만, 석영은 그곳에서 우주라는 새로운 존재를 만나게 된다.

 

웬 숫기 없고 괴짜 같은 쪼그만 남자애인 줄 알았더니만 갑자기 물에 빠진 자신을 구해주어 깊은 인상을 남기더니, 갑자기 자기의 비밀을 지킬 수 있겠냐며 딱 한 번만 보여주겠다고 한다. 그렇게 석영은 우주의 비밀을 알게 되고, 이 특별한 비밀을 가진 우주에 매료된다.

 

우주에 매료된 것은 그의 수영 능력 때문이기도 하고, 또 우주가 낯선 곳에서 유일하게 자신이 말을 걸고 싶어지는 존재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석영은 우주에 집착하다시피 한다. 타고난 물갈퀴 때문에 사람과도 어울리기를 잘하지 못하는 우주를 굳이 끄집어내 수영장으로 불러내기도 하고, 수영장에서 우주를 찾을 수 없는 날이면 그의 집까지 찾아가기도 한다.

 

그렇게 석영은 점차 아쿠아리움과도 같은 시골 생활에 발을 붙이게 된다.

 


03.jpg

 

 

석영은 아쿠아리움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물고기와도 같은 우주를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세계인 수영장으로 계속 끌어들인다. 그러나 ‘한 세계의 인도자’가 된다는 것의 달콤함은 머지않아 외부 세계로 인해 방해를 받게 된다.

 

그것은 우주가 예의 괴물 같은 실력으로 수영 코치의 ‘간택’을 받는 순간에 나타난다. 석영이 수영을 정말 좋아하는 것을 아는 수영 선생님의 추천에도 석영은 코치의 간택을 받을 수 없다. 사실 코치와 수영 선생님 간의 대화는 석영이 들을 수 없는 곳에서 진행된다. 그런 곳에서 그것도 물 밖에서, 조용히 진행된 대화를 석영이 듣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석영은 집에 와서 운다. 자신은 수영을 그만하겠다며. 어쩌면 석영 역시 자신의 실력이 ‘아주 훌륭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석영은 그렇게 우주의 능력에 박탈감을 느끼고, 유일한 꿈이나 마찬가지였던 수영과 멀어지게 된다.

 

 

09.jpg

 

 

그렇지만 수영을 포기한 후에도 석영의 삶은 계속된다. 석영은 작은 동네에서의 생활에 익숙해지고, 피아노 치는 동생을 둔 채로 그냥 그렇게 살아간다. 소소하게 흥미로운 점이 있다면 석영이 계속 선수가 된 우주의 모습을 찾아보기는 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 둘에게는 어릴 때부터 형성된 묘한 협력적인 관계가 아닌 듯 유지되고 있었다.

 

석영과 우주는 각각의 서로가 이해할 수 없는 고독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에게서 특별함을 찾을 수 없는 석영은 우주의 비밀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 됨으로써 특별한 존재가 되었고, 우주 역시 자신의 비밀을 오직 석영에게만 털어놓음으로써 존재에 대한 고독을 조금이라도 털어놓을 수 있는 것이었다.

 

이 둘의 관계를 구원이나 사랑, 우정과 같은 단어를 놔두고 ‘협력 관계’로 표현한 것은, 두 사람의 관계가 각자의 고독이 가장 심각해졌을 때 쉽게 부서졌기 때문이다. 우주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슬럼프가 찾아와 갈 곳이 없어 석영을 찾아왔지만, 석영은 퉁명스레 우주를 내친다. 이미 청소년기를 지나며 ‘자신은 포기자’라는 우울한 명제가 석영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었다. 여기서 자신이 원하는 꿈을 가진 듯했던 우주가 ‘물갈퀴가 예전 같지 않아’라며 자신을 찾아온 것은 석영의 역린을 건드는 사건이다. 석영은 홧김에 우주를 내치는 한편 우주의 비밀을 밝히게 된다.

 

 

11.jpg

 


우주는 결국 수영을 계속하기 위해 갈퀴를 없애기를 다짐한다. 이로써 우주의 비밀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는 석영의 일종의 특권 아닌 특권도 사라진다. 두 사람은 미지근하게 만났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냥 그렇게 헤어지고, 각자의 길을 가게 된다.

 

아니, 사실 석영은 자신으로 인해 우주가 선수 생활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되었음을 알게 되고, 괴로움은 더욱 커진다. 그러는 한편 피아노를 치던 자신의 동생은 도시로 나가 보다 전문적인 교육을 받고, 자신만 아쿠아리움에 남았음에 씁쓸한 감정을 느낀다.

 

그리고 영화 마지막에 홀로 방문한 아쿠아리움에서 석영은 우주의 환상을 본다. 경쟁하지 않고 물고기들과 교감하는, 우주와 정말 닮은 환영이다. 나는 이 부분을 석영의 환상이라 생각하는데, 우주의 날개를 부쉈다는 후회와 죄책감, 그리고 자신이 무언가에 뛰어나지는 않지만 다른 평범한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면 된다는 해방감이 섞였을 것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석영은 이제 우주의 비밀을 아는 유일한 사람도 아니고, 피아노를 공부하는 동생이 작곡한 곡을 엄마에게 무뚝뚝하게 넘겨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석영의 고민이 끝난 것은 아니지만 석영은 이제 자신을 위한 여정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10.jpg

 

 

한편 우주라는 존재에 관해 생각한다. 선천적인, 혹은 남들과 다른 무언가로 인해 고독하게 살아온 인물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여전히 헤엄을 치고 있을 우주들에 관해 생각한다. 우주는 계속 수영을 할 수 있을까? 우주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류나윤_컬쳐리스트.jpg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