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도 지브리 오케스트라 공연을 관람한 적이 있다. 스크린 위에 펼쳐진 애니메이션 영상과 함께 귀에 익은 멜로디가 흘러나왔던 그 시간은 단순한 추억의 소환을 넘어,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한 마법 같은 경험이었다.
하지만 이번 공연은 그 때와는 또 다른 깊이의 감동이 있었다.
이번 공연의 중심은 ‘클래식’ 스타일로 새롭게 편곡된 지브리 음악이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영상 위에 배경음악을 더하는 방식이 아니라, 지브리의 선율을 클래식 교향곡처럼 재구성했다. 클래식 음악에 대한 깊은 애정과 지브리 작품에 대한 존중이 느껴졌다.
공연은 두 개의 파트로 나누어 진행되었다. 첫 번째 파트는 다양한 클래식 작곡가들의 스타일로 재탄생한 지브리 OST로 구성되었다. 드뷔시, 리스트, 비발디, 쇼팽 등 유명 클래식 작곡가들의 음악적 특징을 빌려와 지브리의 멜로디를 재해석했다.
이 과정에서 피아니스트 겸 해설자인 송영민 연주자는 지브리 음악이 클래식 음악의 문턱을 낮추고 관객과의 거리를 좁힐 수 있는 훌륭한 소재라고 설명했다. 그는 단순한 연주에 그치지 않고, 곡마다 해당 작곡가가 속했던 시대적 배경과 음악 사조를 상세히 설명했다.
이로 인해 관객은 단순히 음악을 듣는 것을 넘어, 시대와 예술적 흐름 속에서 음악을 이해하는 깊이 있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특히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언제나 몇 번이라도'는 비발디 특유의 바로크 음악 스타일로 재구성되어 절제된 감정과 반복적인 리듬 속에서 새로운 감각을 불어넣었고, <이웃집 토토로>의 '산책'은 리스트의 화려한 테크닉이 더해져 생동감과 역동성을 극대화했다.
또한 <원령공주>의 테마곡은 드뷔시의 인상주의적 특성을 살려 신비롭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공연 중간에는 짧게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영상이 스크린에 등장했다.
하지만 이 영상은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짧은 환기 장치일 뿐, 이내 사라져 관객이 음악 자체에 더욱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한 기획이었다.
두 번째 파트는 원곡 그대로의 지브리 OST만으로 꾸며져 있었다.
특히 마지막으로 연주된 <천공의 성 라퓨타>의 주제곡은 지브리 음악이 품고 있는 정체성과 향수를 고스란히 전달해 깊은 울림을 주었다. 앵콜로 연주된 '이웃집 토토로'의 익숙한 선율은 공연장을 밝은 웃음과 따뜻한 미소로 가득 채웠다.
공연의 마무리에서는 지휘자님이 무대 위 오케스트라 단원 한 명 한 명을 일으켜 세우며 관객이 모두에게 박수를 보내도록 했다. 무대를 채운 음악이 한 사람의 작품이 아니라 수많은 연주자들이 협력해 이룬 결과물이라는 점을 상기시키는 순간이었다.
이날의 공연은 음악을 귀로 듣는 것을 넘어 ‘눈으로 보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활이 하나의 춤처럼 일제히 움직이는 모습은 음악이 시각적으로 구현된 듯한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춤추듯 움직이는 연주자들의 모습은 마치 음악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역동감을 전해주었다.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리면서 익숙한 음악을 새로운 방식으로 재발견하는 소중한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