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북부에 위치한 캠든 아트 센터(Camden Art Centre)에서 전시 지킴이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도서관으로 사용되던 빅토리아식 건물을 개조한 이 곳은 아기자기하지만 근사한 정원과 커피가 맛있는 카페가 있다.
봉사자 교육 후 정원에서 작은 환영회가 있었다. 새로운 인연들을 만날 좋은 기회다. 출처: 직접 촬영
나를 포함한 이번 기수의 봉사자들이 담당할 전시는 2009년 터너상*을 수상한 리처드 라이트(Richard Wright)의 개인전으로, 터너상 수상 이후 미술 시장이 아닌** 제도권 기관에서 개최되는 런던에서의 첫 전시다.
본격적인 봉사 활동을 시작하기에 앞서, 방문객들이 작품에 질문할 경우를 대비하여 진행된 아트 센터의 관장님이자 큐레이터인 M의 사전 큐레이터 투어에 참석하여 전시를 둘러보았다. 집요한 정교함으로 만들어 낸 기하학적 패턴과 수작업으로 대칭을 구현한 추상 회화는 ‘그리는 행위’ 그 자체에 대한 그의 장인정신이 느껴졌다.
데칼코마니를 연상시키는 금박 드로잉 무제 작업 수작업으로 이 대칭을 구현했다는 것이 놀랍다, 2008. 출처: 직접 촬영
*영국의 ‘올해의 작가상’ 같은 상으로, 국내외적 활동으로 영국 미술의 위상을 높인 영국인 작가, 혹은 외국인이지만 영국 기반으로 활동하며 영국 미술계의 발전에 기여한 작가를 매 해 선정하여 상을 수여한다. 2016년까지 만 50세 미만의 작가들로 후보자 범위를 제한했으나 예술적 성장에 정해진 시기는 없다는 의견이 대두되며 2017년부터 이 조건은 폐지되었다.
**그가 전속 계약을 맺은 가고시안 갤러리와는 런던에서 수 차례 개인전을 개최한 바 있다.
드로잉: 리처드의 작업 세계를 구성하는 행위
“드로잉이야말로 제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가 하는 전부일 것입니다.”***
리처드는 종이 위에 과슈로 기하학적 패턴***을 표현하거나, 물감과 금박을 활용해 식물이나 종교적 도상을 연상시키는 추상 드로잉을 선보여왔다. 청중을 압도하는 그의 드로잉은 어떠한 형태를 완성한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에게 내러티브란 그리는 행위 그 자체에 있다.
토트넘 코트 로드 역 천장에 리처드의 금박 드로잉이 보인다, 2018, 출처: Gagosian
터너 상을 수상했던 테이트 브리튼(Tate Britain), 그리니치 왕립 박물관 퀸즈 하우스(Queen’s House), 런던의 지하철역 토트넘 코트 로드역(Tottenham Court Road station), 그리고 캠든 아트 센터까지. 그의 폭넓은 조형 실험은 다양한 공간에서 구현되었다.
작가는 자신이 축적해 온 생각이 공간과 조응하며 적합한 순간에 그 형태가 드러난다고 여긴다. 이러한 형태는 마치 오래 전 그를 스쳐 간 생각들이 자신에게 돌아올 자리를 찾아 나타나는 듯한 방식으로 구현된다. 그는 그 구현을 위해 스튜디오에서 화폭 위에 다양한 조형 실험을 생산한다. 마치 소설가가 머리 속에 떠오른 문장을 메모하듯, 머리 속에 떠다니는 상상 속의 형태들을 현실로 꺼내는 것이다.
그는 작업의 근간이 되는 모든 요소들이 결국 드로잉으로 귀결된다고 말한다. 드로잉은 단지 결과물을 위한 밑그림이 아니라, 그 자체가 사유이자 실천이며, 때로는 물질로 구현된 작품보다 더 근본적인 그의 예술 그 자체일 수 있다. 이러한 리처드의 관점은 그가 재료와 공간을 다루는 방식, 그리고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들과의 관계 맺는 방식에 대한 가치관으로 확장된다.
***2020년 전속 갤러리 가고시안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Drawing is what I do. It might be all I do.”라고 말한 것을 번역한 문장이다.
소멸하는 드로잉이 선사하는 현장에서의 감동, 사유와 현실 세계의 연결
2009년, 테이트 브리튼에서 터너상 전시가 개최되었을 당시, 그는 전시장의 화이트큐브에 금박으로 그려진 정교한 대칭의 벽화를 그려넣었다. 기계가 그린 것은 아닐지 의심될 정도로 섬세했던 수작업은 전시가 끝난 후 다시 하얀 페인트로 뒤덮였다.
터너상 수상 당시 작업했던 금박 무제 벽화, 2009. 출처: Gagosian
장기간에 걸친 그의 수작업은 그렇게 소멸했다. 이 소멸은 현장에서의 고유한 감상을 강조한다. 그는 자신의 회화를 음악에 비유하며, 아카이빙, 전시, 시장에서 소장품으로 기록되는 회화가 아닌 ‘감각으로서 남는 회화’를 구현하고자 했다.
재료는 리처드에게 시간이 흐르며 점차 퇴색하고 변형되는 것이며, 작품을 바라본 사람들의 감각과 기억이 축적되는 과정까지도 그의 예술의 일부로 포함하는 도구들이다. 과슈, 은박, 금박, 유리를 투과하는 빛은 시간에 따라 흐려지거나, 산화되거나, 흩어지거나 혹은 완전히 지워진다. 리처드의 머리 속에 떠다니는 형태들은 이 재료들을 통해 공간의 벽, 천장, 바닥에 가변적으로 얹어지고, 관객들은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물감과 은박이 옅어진 정도, 금박의 반사광과 유리에 투과된 빛들의 변화를 통해 각자의 감상 경험을 얻게 된다. 이를 통해 감상자들이 마주하는 리처드의 조형은 같은 것인 동시에 다른 것이 된다.
작가의 드로잉이 지닌 가변성은 그에게 주어진 시간과도 관련이 깊다. 그는 벽화 작업을 진행했던 전시마다 마감 기한에 임박하여 작업을 마무리한다. 이 때문에 시간이 더 주어진다면 여유있게 작업을 완료할 수 있었냐는 질문을 받고는 하는데, 그는 자신에게 더 많은 시간이 있었다면 보다 많은 형태를 생산했을 것이기 때문에 큰 차이는 없었을 것이라고 답변한다.
시간에 따라 다른 형태를 생산하는 작업 방식. 이것은 그에게 주어졌던 과거의 시간을 그의 작품을 느끼게 될 관객들의 시간과 잇는 동시에, 특정 형태를 구현하는 것이 아닌 행위 자체에 드로잉의 의미를 두는 그의 가치관을 반영하고 있었다.
리처드의 사유는 드로잉을 매개로 현실에 구현된 후 소멸 이후의 과정까지 의미가 부여되며 비로소 현실 세계와 이어진다. 이 일련의 과정은 시공간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 관객들에게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각을 제공하는 동시에 그의 드로잉을 보이지 않는 영역까지 확장한다.
그는 이번 캠든 아트센터에서도 비교적 최근 시도하고 있는 기하학적 조형 언어로 수작업과 소멸의 과정을 반복하여 감각적 회화를 선보인다. 실제로 방문객들은 한 면을 가득 채운 벽화가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는 점에 놀랐으며, 전시 후 모든 형태가 사라진다는 사실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러나 그의 그림이 지닌 현장성은 관객들에게 소멸 이후에도 여운을 주며 캠든 아트센터에서의 시간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들 것이다.
캠든 아트 센터 벽면에 그려진 무제 벽화 작업. 한 벽면을 꽉 채우는 기하학적 벽화가 공간을 압도하고 있다, 2025. 출처: 직접 촬영
30년의 작가 경력이 빚어낸 재료과 기법에 대한 철학
입시 학원이나 대학에서 정교하고 집요한 수작업 정신이 돋보이는 동료들이 종종 있다. 우리는 이들을 ‘변태같다’고 한다. 기고문에서 사용할 단어로는 다소 부적절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말만큼 정확한 표현이 없다. 미술 실기 전공자로서 리처드의 그림을 보자마자 느꼈다. 그는 변태다. 리처드는 변태다. 최근 가디언 인터뷰에서 그는 스스로의 드로잉을 “고문”이라고 표현하지만, 고요한 화폭과 벽면의 정교한 형태들, 그 붓질들은 즐기지 않는 자에게 나올 수 없는 것들이었다.
내가 감탄했던 것은 그의 변태적인 수작업 정신에 그치지 않는다. 리처드는 그의 ‘그리기 활동’에 예술적 의미를 부여했다. 재료의 물성에서 포착한 서사, 드로잉을 하는 이유, 그 결과물이 관객에게 전하는 가치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와 통찰은 그의 작업 세계를 확장시키는 발판이 되었고, 그의 터너상 수상과 30년의 명망 있는 작가 경력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미대에서 졸업 전시를 앞두고, 나는 상당한 슬럼프에 빠져 있었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섬유, 판화, 도예 등 재료별로 전공이 세분화되어 있었다. 때문에 도예유리를 전공하던 나에게 도자기로 창작을 하는 것은 관성처럼 당연한 것이었다. 슬럼프는 여기서 왔던 것 같다. 내가 졸업 작품을 통해 전달하려는 주제가 왜 ‘흙’으로, ‘도예로’ 구현되어야 하는지 스스로 정의할 수 없었던 순간이 오고야 만 것이다.
대학생 때의 작은 경험을 터너상 수상 작가와 빗대고 있는 것이 조금 우습지만 나의 극복 방법은 리처드와 상당히 비슷했다. 흙을 쌓아가는 과정, 가마 속에서 그림이 영구적으로 표면에 새겨지는 과정. 이 일련의 과정이 나의 주제에 어떤 깊이를 더하는지 다시 되새겼고, 전시를 오픈할 무렵에는 제법 자신 있게 나의 작업을 사람들 앞에서 설명할 만한 의미를 찾게 되었다. 이 경험을 통해 작가로서의 발전은 매너리즘에 머물지 않고 스스로의 관행을 지속적으로 반성하고 탐구하는 자세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 같다.
자신이 현재 추구하는 작업에 대한 근거를 지속적으로 찾아가고, 그 과정에서 발견하는 철학과 서사를 연결지어 작가로서의 세계관을 확장해나가는 것은 장르, 기법, 재료를 불문하고 모든 작가들에게 필요한 자세가 아닐까 한다. 리처드 라이트는 동시대의 화려한 미디어나 설치 작업을 선보이는 작가는 아니지만, 그가 행하는 ‘드로잉’에 대한 탄탄한 예술적 근거를 쌓아 온 작가다. 이미 30년 이상의 경력을 보유한 작가이지만, 앞으로도 그가 생각하는 형태의 구현과 소멸의 서사를 지켜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