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면 생각나는 노래
긴 겨울의 시간이 지나 어느덧 4월이 되었다. 메말라 있던 가지에 초록색이 보이기 시작하고, 하나둘씩 꽃을 피우며 향기를 뿜어낸다. 그리고 그 향기는 내 코를 간지럽힌다. 내가 봄이 왔다는 것을 크게 느끼는 부분은 새싹도, 꽃도, 온도도 아닌 '코'다. 우선 '봄 냄새'가 난다. 바람을 타고 콧속으로 들어오는 풀 냄새와 꽃향기는 마치 식물원의 온실에서 맡을 수 있는 냄새 비슷하다. 그리고 '콧물'을 통해 봄을 느낀다. 비염과 함께 살아온 지 20년이 넘은 나에게, 봄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시간이다. 많은 이들에게는 꽃이 피어나는 계절, 향기로운 계절이지만 그 아름다운 것들로 인해 내 코는 마치 꽃을 피우는 듯 항상 붉게 물들어있다. 하지만 이 고통을 잊을 만큼 봄은 참 아름다운 것들을 선물한다.
봄이 선물하는 '향기', '따뜻함', '설렘'의 단어들은 노래, 그림, 글, 영화 등 다양한 형태로 이 세상에 등장한다. 특히 봄만 되면 거리마다 울려 퍼지는 '벚꽃엔딩'이나 '봄봄봄'과 같은 노래들이 그러하다. 이 외에도 이제 막 시작하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노래들이 참 많은데, 오늘 내가 소개하고자 하는 노래는 약간 성격이 다르다. 봄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지만 두근거림보다는 아련함이 더 어울리는 곡, 시작의 봄이 아닌 추억의 봄을 담은 노래,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스물다섯 스물하나
이 곡의 원곡자인 '자우림'의 보컬 '김윤아'는 이 곡을 쓴 배경에 대해 밝힌 적이 있었다.
'3월 말에서 4월 초 정도에 아들과 유치원 버스를 타러 가는 길이었다. 집 근처에 가로수가 많아 꽃이 만개해 아름다웠는데, 그날 꽃 사이로 비친 햇빛이 너무 아름다웠다. 그리고 바람에 꽃이 떨어지는데 갑자기 이 곡의 후렴구가 생각이 났다.'
이야기를 들으며 그녀의 그 순간을 상상해 보았다. 꽃내음이 은은하게 퍼지는 나무 사이를 지나가며 하늘을 바라봤을 때 꽃잎 사이로 비친 따사로운 햇빛과 따뜻함을 머금은 바람, 그리고 그 바람에 휘날리는 꽃잎을 말이다. 흔히 '영감'이라고 하는 것은 참 다양하고 갑작스럽게 머릿속을 향해 곤두박질친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글을 쓰고 있는 사람으로서 글의 영감, 즉 글의 주제와 흐름, 심지어는 글의 첫 문장까지 갑작스럽게 생각날 때가 많다. 특히 아름다운 것 앞에서 사고가 정지했을 때 그런 경우가 많다. 아마 그녀도 비슷한 경험이지 않았을까?
이 곡을 처음 듣게 된 계기는 바로 대학교 '밴드'였다. 이 곡을 공연 때 연주하게 되었고, 수없이 연습했다. 처음 곡을 들었을 때 나는 '21살과 25살이 연애를 하는 건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계속 연습하며 반복적으로 듣다 보니 이 곡은 '사랑'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사랑이야기가 아닌 '청춘'에 대한 이야기, 특히 '청춘을 추억하는 것'이 주제였다.
바람에 날려 꽃이 지는 계절엔
아직도 너의 손을 잡은 듯 그런 듯 해
그때는 아직 꽃이 아름다운 걸
지금처럼 사무치게 알지 못했어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며 과거를 회상하고, 추억할 때가 참 많은 것 같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20대 후반에 들어서고 있는 필자는 세상에서 제일 겁 없고, 다사다난했던 때를 골라보라고 한다면 20~25까지의 삶을 선택할 것이다. 20살이라는, 흔히 아이와 어른의 경계선에 있는 나이, 남들은 다 어른이라고 하지만 정작 본인은 본인이 어른이 아니라는 것을 가장 크게 느끼는 나이, 그리고 '사회'라는 큰 벽을 처음 마주하는 나이에 나는 참 많이 울기도 하고, 많이 웃기도 했다. 사실 생각해 보면 좋은 일보다는 힘들었던 일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를 그리워하는 이유는, 어떤 일을 선택함에 있어서 큰 고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이직을 준비하거나 대학을 다시 가는 등 경제적으로, 관계적으로의 소비가 발생하는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각오가 필요하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어깨에 얹어지는 '책임감'의 깊이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 책임감이 아직 깊어지기 전, 무엇이든 시도해도 '객기'가 아닌 '도전'으로 받아들여지던 그때가 참 그립고 예쁘다.
혼란의 스물다섯 스물하나
20대 초반의 나는 두려움이 많았다. 그 이유는 나는 그동안 '착한 아이'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나의 가장 큰 일이자 목표는 '엄마 말씀 잘 듣기', '선생님 말씀 잘 듣기'였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착한 어린이 상을 놓치지 않았고,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착하다'라는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이것이 대학에 왔을 때 나를 힘듦의 가장 큰 원인이 될 줄은 몰랐다. 대학에서는 모든 선택을 내가 해야 한다. 수업, 시간표, 동아리 등 모든 것들을 스스로 판단해서 선택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솔직히 많이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사실 친구를 따라가거나, 많은 학생이 모이는 곳으로 따라가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복수전공도 친구들이 많은 학과를 선택해 진로와 성적에 큰 어려움과 혼란이 생기기도 했다.
이런 나에게 가장 큰 변환점이 되었던 순간이 있었다. 때는 대학교 2학년, 흔히 '대2병'이라고 불리는 시기가 찾아왔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왜 이 큰돈을 들이면서 대학에 다니고 있는지, 결론적으로 무슨 일을 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이 많아지면서 행동에도 큰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부모님과 선생님 말씀을 잘 듣기 위해 내 의견보다는 그들의 의견에 따라갔던 나는 처음으로 수업을 땡땡이(무단결석)쳤다. 교수님께 너무 죄송했지만 '수업이 너무 가기 싫었다.' 그렇게 인생 첫 '방황'을 시작했다.
당장의 성적보다는 인생의 방향이 더욱 중요했던 나는 끝없이 혼란스러워하고 고민했다. 그렇게 2학년을 보내고 군대에 갔다. 그리고 군대에서 내 인생을 바꿀 결정을 하게 된다. 복수전공을 바꾼 것이다. 이 선택은 지금의 내 삶을 만드는 데에 있어 아주 큰 선택이자 최고의 선택이 되었다.
도전의 시기, 두려움 없던 그 시절이 그립다
우--- 그날의 노래가 바람에 실려 오네
우--- 영원할 줄 알았던 스물다섯 스물하나
나의 도전의 순간에 있어서 '두려움'은 없었다. 왜 없었을까에 대해 생각을 해보면, '나이가 어려서'라는 결론이 나오는 것 같다. 아직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 있고, 스스로 정한 취업 시기인 30대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있었다. '이게 안 되면 다른 거 하면 돼!'라는 마인드가 강하게 자리 잡을 수 있었고, 큰 도전을 감당할 수 있었다. 지금의 시기에 나는 이 순간이 참 그립다.
취업을 하고, 직장을 다니면서 그 누구보다 '깡'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깡'이 아닌 '객기'가 되어가고 있음을 크게 느끼고 있다. 점점 나를 감싸오는 '안정적인 삶'에 대한 부담과 '성공'에 대한 압박, 그리고 '책임' 져야하는 부분이 많아지면서 '도전'보다는 '정착'을 찾아가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영원할 줄 알았던 나의 '깡'과 '도전'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버린 이 순간, 참 많이 속상하다. 그래서 나는 한 번 더 도전을 하는 중이다.
노래 속 화자는 영원하지 않은 '청춘'을 향해 그리워하고 추억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추억하는 것에 그치지 않을 생각이다.
영원할 줄 알았던 그때의 순간을 '추억'으로만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아닌 '지금의 순간'으로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부딪히고 넘어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