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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선뜻 관심을 가지지 못했을 공연이다.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원체 선호하지 않고, 삼국지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벽>은 이러한 내적 장벽을 근사하게 무너뜨렸다. 배우들의 옷자락과 부채가 시원하게 펼쳐지듯, 이 공연도 보는 이의 마음속에 성큼 들어왔다.

 

아직 이 공연에 거리감을 지니고 있을 사람들을 위해 그 과정을 상세히 이야기해 보겠다.

 

 

[국립정동극장] 판소리 뮤지컬_적벽 poster.png

 

 

 

상상 그 이상, 판소리와 뮤지컬


 

나처럼 연극은 좋아하지만 뮤지컬은 잘 못 보는 관객들이 있다. 인물들이 대화하다가 갑자기 노래를 시작하는, 그 순간의 이질감에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판소리는 본래 성격 자체가 음악적이기에 뮤지컬과의 조화가 상상 이상으로 훌륭했다.

 

창(노래)은 물론이고 아니리(말)도 오늘날의 일상 대화에 비하면 높낮이가 강해서 마치 음악처럼 들렸고, 뮤지컬 넘버와의 연결이 더없이 자연스러웠다. 기존에 뮤지컬을 좋아하지 않던 관객들도 문제없이 녹아들어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그 외에도, 우리의 전통 판소리와 서양의 현대 뮤지컬이라는 전혀 다른 두 문화가 서로의 장점을 살리는 방향으로 완벽하게 어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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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공부했다 보니 판소리에 관심이 생겨, 통영국제음악제를 방문해 김일구 선생님의 <적벽가>를 관람한 경험이 있다.

 

소리꾼과 고수, 북 장단만으로 큰 무대를 채워내고 이끌어가는 멋이 감탄스러웠다. 하지만 화려한 볼거리가 있는 것은 아니기에, 오늘날 대중들에게는 쉽게 도전하거나 집중하기 어려운 문화가 되었음도 사실이었다.

 

 

[크기변환]적벽무대.jpg

 

 

1년여 후 보게 된 <적벽>은 판소리의 틀과 우리 고유의 가락, 흥은 그대로 살리면서, 뮤지컬 특유의 다채로움을 더했다. 여러 배우, 여러 악기의 소리가 합쳐지니 훨씬 풍성하고 대중적인 판소리가 펼쳐졌다. 전통 악기뿐 아니라 기타, 드럼의 사운드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판소리의 발림(몸짓)을 극대화한 듯한 압도적인 군무 역시 시선을 잡아끈다. 판소리가 새로운 형태로 살아남을 수 있는 길, 동시에 이색적이고 깊이 있는 뮤지컬을 관람할 수 있는 길을 만난 것만 같았다.

 

 

 

21세기에도, 삼국지


 

앞서 말한 <적벽가> 공연을 보았을 때 어려움을 겪은 또 하나의 요인은 내가 '적벽대전'을 포함해 삼국지의 자세한 내용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특별히 관심이 있지 않는 한 아마 20대 초반 세대는 비슷한 정도의 배경지식을 가졌으리라 짐작한다.


하지만 <적벽>을 보며 걱정은 점차 사라졌다. 우선 실제 옛 문학 어투를 그대로 대사에 쓴 것은 맞지만, 한영 자막을 실시간으로 제공해 이해를 돕는다. 또, 빔프로젝터로 인물이 등장할 때나 새로운 막이 시작될 때 이름, 제목을 알려주기도 했다.

 

대체로 진중한 분위기로 흘러가는 중간중간 유머러스한 요소도 많다. '얼쑤!' 추임새를 넣던 조선시대 사람들만큼은 아니지만, 관객석에서도 웃음소리가 연신 들려왔다. 삼국지를 몰라도 충분히 흥미롭게 따라갈 수 있을 것이다.


내용 측면에서 보더라도, 새롭고 자극적인 이야기가 넘쳐나는 이 시대에 왜 여전히 삼국지가 필요한가를 느낄 수 있었다. 고전은 가장 본질적인 가치를 담은 작품들이다. 엔딩과 커튼콜에서 울려 퍼진 '영원토록 기억되리 뜨거운 맹세 / 나라와 정의 위한 형제의 맹세'라는 가사가 그토록 심장을 울릴 줄이야. 정의와 우애를 향한 여정은 언제 어디서나 통하는 법이다.

 

공연이 끝나자마자 터져 나온 진심 어린 박수와 환호가 이를 증명한다.

 


[국립정동극장]적벽_공연사진_10.jpg

 

 

한국은 수입 뮤지컬도 많지만, 주변국에 비해 창작 뮤지컬 시장이 굉장히 활발한 편이다. 그중에서도 <적벽>은 세계 어디에 선보여도 자랑스러울 만한 한국적 뮤지컬이었다. 이러한 성공적인 시도를 이어 다른 작품들도 많이 나오길 바라본다.

 

이번 시즌 <적벽>은 오는 4월 20일까지 국립정동극장에서 관람할 수 있으며, 이후 고양, 대구 등 전국 곳곳에서도 공연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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