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의 확산이 완화되며 느꼈던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관광객들이 급증했다는 점이다.
길거리를 지나다니면 중국어와 일본어를 쉽게 들을 수 있다. 우리도 그들과 다를 바 없이, 관광을 위해 해외로 향한다. 특히 중국과 일본은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가까워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다. 그러면서도 가깝기에 문화적 차이를 좀 더 자세하게, 섬세하게 느낄 수 있기도 하다.
국경과 이념을 넘나들며 서로의 문화를 향유하고 새로운 감각을 경험하는 관광객은 유동성을 강하게 지닌 존재다. 일민미술관에서 진행중인 임민욱 작가의 개인전 《하이퍼 옐로우》는 관람자를 이러한 관광객으로 만든다. 그리고 전시장을 어디에도 없지만 익숙하고도 낯선 장소로 탈바꿈하여 우리로 하여금 거닐도록 한다.
1전시실에 입장하면 지구에 외딴 곳, 혹은 다른 행성에 온 것 같은 공간을 마주한다. 울퉁불퉁한 둔덕엔 읽을 수 없는 형상의 문자들이 그려져 있고, 일정한 간격으로 서서 빛을 내는 전구들, 부표 같은 오브제들이 놓여 있어 신비로운 느낌을 자아낸다.
특히나 신발을 벗고 들어가게 되면 코르크 소재의 바닥이 주는 감각이 더해져 새로운 장소에 당도하게 된다. 대형 설치 작업 〈솔라리스〉(2025)는 20세기 영향력있는 SF 소설가 스타니스와프 렘(Stanisław Lem)의 동명의 소설을 모티프로 한다.
사막 혹은 바다와 같은 풍경 너머로 전시장 벽면에는 솔라리스의 태양이 움직인다. 양 끝에서 서로를 향해 다가간 태양들은 마치 종말의 날을 선언하듯, 혹은 절대자의 강림을 암시하듯 하나로 합쳐지게 되고, 다시 멀어지기를 반복한다. 소설 속에서 이러한 태양의 움직임은 인간의 이해 밖의 일이었기에 예측, 계산이 불가능했다.
이는 작가가 주목하는 우연성을 가리킨다. 전시 서문에서 밝히듯, 작가는 지역과 국가, 과거와 미래를 넘나드는 관념과 이미지들을 통해 현실의 임계를 넘고자 한다. 전시의 제목 중 “하이퍼”가 말하는 바이다.
〈솔라리스〉는 관람객을 초대함과 동시에, 바닥의 검은 선으로 경계를 만든다. 이 선은 일본 나라에 위치한 사찰 도다이지(東大寺) 법당의 도면을 나타낸 것으로, 도다이지의 사찰과 내부의 불상은 신라계, 백재계, 중국계 도래인들이 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다이지 승려들은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민중을 대신해 십일면관음보살에게 참회와 구세를 기원했다고 한다. 십일면관음과 그곳에서 행해지는 제식 중 하나인 오타이마츠(大松明)는 2전시실에서 상영중인 〈동해사〉(2024)로 연결된다.
3채널 영상 작업 〈동해사〉는 언뜻 보면 서로 연관성이 없는 세 영상이 독자적으로 재생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각 영상은 일본의 전통적인 제례 및 의식으로 연결되며 관광객, 그리고 ‘하이퍼 옐로우’의 개념을 제시한다.
왼쪽 영상은 ‘물의 축제’에서 신을 모시는 가마에 정화수를 뿌리는 장면과 함께 스미다강변의 현대적인 풍경을 보여줌으로써 유동하는 물의 속성을 비춘다.
반면 오른쪽 영상은 ‘불의 축제’에서 거대한 횃불을 든 채 사찰 난간을 달리며 끊임없이 움직이며 다른 것의 형태도 변화시키는 불의 성질을 보여준다. 그리고 가운데 현대적으로 번안된 십일면관음은 관광객으로서 도시와 사찰을 달려나간다.
2024년 3월 도쿄 스키미다강(隅田川)에선 진행된 퍼포먼스 〈S.O.S-달려라 신신〉과도 연결되는 이 작업은 지리적, 역사적 경계를 초월하며 유동하는 존재와 그 특징을 함축하고 있으며, 사회적 실천과 정치적 권력의 구조와 방향성, 아름다움에 대한 사유와 같은 질문에 대한 작가의 미학적인 답변이 현현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