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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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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이유 없음! 눈부신 재능 없음! 거창한 목표 없음!

그래서 우린 스윙한다♬ 그 누구보다 재미있게♬

 

- 영화 '스윙걸즈' 시놉시스 中

 

 

혼자만의 생각일지는 모르겠지만, 영화가 끝난 후 기분이 상쾌하게 좋기란 쉽지 않다. 스토리나 연출이 마음에 차지 않으면 기분이 좋을 리가 없고, 전달하려는 메시지의 중요성과 이 영화의 의의에 대해서는 공감했더라도 마음 한쪽이 찜찜한 영화도 많다. 영화를 보는 이유는 제각각이겠다만, 그럴 때는 가끔 생각 없이 그저 기분 좋게 볼 수 있는 영화가 보고 싶어진다.


그리고 '스윙걸즈'는 바로 그런 영화였다. 여름방학 보충수업을 받던 여고생들이 난데없이 '빅밴드 재즈'의 세계에 빠지게 되는 이 이야기에는 큰 고난도, 역경도 없다. 하이틴과 음악 영화라는 점에서 연상되는 힘겹지만 감동적인 성장 스토리,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주인공, 그 가운데 발생하는 동료/친구 간의 갈등, 그 무엇도 스윙걸즈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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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윙걸즈에 있는 것은 그저 재미있게 음악을 하는 사람들뿐이다.

 

연주 실력이 처참해 마트 행사에서 실컷 불협화음을 내다가 쫓겨난 재즈 초보자들이 어느 시점부터는 수준급의 연주를 선보이지만, 그 사이에 있었을 수많은 연습의 시간은 이 영화의 관심사가 아니다. 악기를 살 돈이 없어 동생의 게임기를 비롯한 집안의 전자기기들을 팔아치우고, 연습할 곳을 찾지 못해 놀이터와 노래방을 전전하지만 그 장면들은 오히려 코믹하고 가볍게 지나간다.


음악 영화에서 아예 빠질 수는 없는 연습과 성장의 서사는 트럼펫을 연주하는 '요시에' 역의 칸지야 시호리가 담당하는데, 이 부분을 담아내는 영화의 방식 또한 독특하다. 트럼펫의 마지막 고음을 내지 못해서 고민하고 연습을 거듭하던 요시에는 뜻밖의 조력쥐(mouse) 덕분에 목표를 달성하고,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멋지게 그 음을 연주해 내며 감동을 준다.

 

하지만 이 과정 역시 길지 않고 산뜻하며, 하이틴 영화다운 귀여움을 가미한 연출로 영화의 유쾌함을 배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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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영화가 보여주고 싶은 것은 재즈의, 그리고 재즈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즐거움과 낭만이다.

 

주인공인 '토모코' 역의 우에노 주리가 낡아 빠진 중고 색소폰을 들고 어색하게 시작한 연주가 시냇물 건너의 건반과 함께 조화를 이루는 순간, 재즈의 본질인 '엇박자'를 건널목의 신호등의 리듬과 주차장의 호루라기 소리에서 느끼며 몸을 들썩이는 그 순간이 이 영화의 본질이다. 그렇게 순간순간을 따라가다가 마지막 공연까지 감상하고 나면, 관객 역시 재즈에 흠뻑 빠지게 되는 것이다.


영화가 끝나고 난 후 스윙걸즈는 어떻게 되었을까.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시점이었을 텐데 계속해서 재즈를 했을까. 이런 질문이 잠깐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이런 얘기 역시 스윙걸즈에는 필요하지 않다(애초에 학생들도 선생님도 크게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저 100여 분의 시간 동안 그들과 함께 즐겁게 재즈를 했으면 그만이다.


토모코나 요시에가 그랬듯, 무언가에 이처럼 깊게 빠지게 되는 경험은 쉽게 찾아오지 않고, 거기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더욱이 어려운 일이다. 스윙걸즈는 충분히 내놓을 수 있는 내외부적 갈등의 서사를 철저하게 배제한 채, 다른 고민 없이 재즈의 즐거움에만 집중함으로써 그러한 경험을 대리 체험하게 해주는 영화다.


엔딩 크레딧이 끝나고 영화관을 나서며 기분이 이처럼 좋을 수가 없었다. 후련할 정도로 상쾌하고 깔끔했다. 그리고 내 플레이리스트에는 재즈가 추가되었다.

 

대책 없이 스윙하는 주인공들처럼, 나도 대책 없이 즐거울 수 있을 무언가를 찾게 되길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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